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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 - 진은영 (2019.11.09. 적음)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밖에서 웃고 떠들고 신나게 놀던 어린 나는, 집에 돌아가면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있어야 했다.집에서는 웃어서도, 밥을 먹을 때 말을 해서도, 밥을 남겨서도 안 됐다.밥을 빨리 먹어야 했고, 어린 나이에 생마늘을 먹어야 했다.하품을 해서도 안 됐으며, 실눈을 떠서도 안 됐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도 안 됐다.옆으로 누워서 자도 안 됐고, 마음대로 양치도 할 수 없었고, 이웃들에게 인사를 해도 안 됐다.아버지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나 맞았다.집으로 들어가기 싫었다.엄마의 글이 생각난다. 인생에 행복이란... (2012.08.16.)인생에 행복이란...어느 정도로 얼마만큼 흡족하고 만족하면 행복이 꽉 찬 거라고생각 할까요?위.. 2025. 4. 22.
[#2] 바위에 쏟아진 우유처럼 - 예이츠 (2019.10.26. 적음) 쏟아진 우유 행동하고 생각하며 생각하고 행동해 온 우리는 여기저기 거닐다희미하게 사라져야 한다바위에 쏟아진 우유처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영국계 아일랜드 시인이다.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시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예이츠는 김소월의 [진댤래꽃]에 영향을 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2025. 4. 22.
[#1] 임진강에서 - 정호승 (2019.10.26. 적음) ​임진강에서​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임진강 샛강가로 저를 찾지 마세요 찬 강바람이 아버지의 야윈 옷깃을 스치면 오히려 제 가슴이 춥고 서럽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같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 아버지 이제 그만 발걸음을 돌리세요 삶이란 마침내 강물 같은 것이라고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 같은 것이라고 아버지도 저만치 강물이 되어 뒤돌아보지 말고 흘러가세요 이곳에도 그리움 때문에 꽃은 피고 기다리는 자의 새벽도 밝아옵니다 길 잃은 임진강의 왜가리들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길 되어 어둠의 그림자로 햇살이 되어 저도 이제 어디론가 길 떠납니다 찬 겨울 밤하늘에 초승달 뜨고 초승달 비껴가며 흰기러기떼 날면 그 어디쯤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도 샛.. 2025. 4. 22.
오늘의 대화 #휴식오늘은 연차를 쓰고 쉬었어.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어.하지 않아도 괜찮았어. 하루쯤은 쉬어가야지.방 안의 불을 끄고책상만을 비추는 노란 스탠드에 의지한 채타닥 타닥 탁 탁 키보드를 두드렸어.스탠드가 비추는 책상 주변은 어두웠어.그 모습은 마치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아.내 방 안의 어두운 곳들에서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한 뼘 정도로 열린 창가 사이로서늘한 밤공기가 새어 들어오네.가까운 곳에서 희미하게 웅웅거리는냉장고 소리가 들려오네.오늘은 더웠나? 아니, 덥지 않았지.아침 늦게 일어나 열어본 창문 너머로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어.어제는 말라 있던 아스팔트 바닥이오늘은 더욱 짙은 우주빛이 되었어.우리가 매일 밟는 땅도 우주를 품고 있기 때문일까?하늘은 짙은 회색이었어.깨끗한 도화지 같.. 2025. 4. 22.
[파란색 잠바] 형은 파란색 잠바를 아버지 몰래 사서 입고 다녔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덕분에 파란 플라스틱 청소도구함이 가득 차 버렸다. 형은 그 잠바를 무척 좋아했다. 형이 돈을 모아 사게 된 첫 외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이 가득한, 신체에 비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유행을 타지도 않을 평범한 파란색 패딩을 형은 매일 입고 다녔다. * 여느 날처럼 학교에서 돌아와 동생과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기 전 아빠가 잠깐 일을 보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형이랑 같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입에서는 욕들이 튀어나왔다. 형은 그 파란 패딩과 통이 넓지 않은 교복 바지를 입은 채로 아버지에게 멱살이 잡혀 끌리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거 벗어서 바.. 2025. 4. 22.
[교복 바지] 집 앞 골목을 나서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쌈지마당. 쌈지마당의 끝에는 세 개가 붙어 있는 공용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형과 나는 학교를 가기 전에 그 화장실을 들렀다. 화장실 바깥 좌측으로는 여러 청소도구가 담긴 허리 높이의 파란색 물통 다라이가 하나 있었다. 형은 그 다라이의 뚜껑을 열어 청소도구 아래에 깔려있는 묵직한 검정 비닐봉지를 꺼냈다. 단단히 묶인 비닐봉지를 풀자 가지런히 접힌 잿빛 교복 바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교복 바지를 바꿔 입고 나왔다. 공중화장실을 나올 때 머리만 빼꼼 내밀어 집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다행히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형은 벗은 바지를 비닐 안에 도로 넣어 플라스틱 다라이 안 청소도구 아래에 두었다. 뚜껑을 덮고 우리는 다시 한번 뒤를 확인한다... 2025. 4. 22.
#31 사랑한다는 말에 대한 고찰 #이해한다는 말내가 '사랑한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나에게 '사랑한다'는 '이해한다'라는 말과 비슷한 이유였다.너의 사정을 이해한다.너의 마음을 이해한다.너의 가족, 너의 직업, 너의 일상, 너의 취미를 이해한다.하지만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납득하기 조금 어려운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그 '사랑한다'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부모의 사랑'을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아이가 부모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는 나이에도부모는 아이를 돌보고 사랑한다.무조건적인 사랑. 대가 없는 사랑.나는 아직 그런 사랑을 할 자신이 없다.미래에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부모가 되어야만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겠지.그제서야 '부모의 사랑'.. 2025. 4. 22.
몸살감기 #몸살온몸이 근육통으로 아프다.기침도 나오고 목도 아프다.열도 나고 두통도 생겼다.어디에서 온 바이러스일까.내일은 연차를 쓰고 쉴까- 생각하는 중이다.배가 고프다.하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그냥. 그냥 그렇다. #사랑사랑 참 어렵다.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괜찮을 텐데.너는 나와 다르구나, 나 또한 너와 다르구나.그렇게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나는 그게 쉽지만, 많은 이들은 그게 어려운 것 같다.내가 사람에게 기대가 없어서 그런 걸까.사랑을 받고 싶다는 기대.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는 기대.내가 이만큼 사랑하니까, 너도 이만큼 해주길 바라는 기대.내가 그런 기대가 없기 때문일까.연인과 부부, 친구는 그 단어 자체로 약속이라고 생각했다.신뢰는 그런 약속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 신뢰를 굳건히 믿고.. 2025. 4. 22.
아프다 #아픔오늘은 괜찮았는데.오전까지 괜찮았는데.지금은 너무 아프다.어디가 아프냐고, 마음이.내 몸 어딘가에, 아니 어쩌면 내 몸 밖에 있을 내 마음이참 아픈 밤이다. 밤... 밤이라서 그런 걸까.목이 매어온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마음이 너무 아프다.왜일까. 왜 갑자기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아니, 아픈 것이 내 마음은 맞을까.이전과는 다른 답답함과 아픔이다.예전에는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어버린 아픔이었는데오늘 나를 찾아온 아픔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픔이다.어떻게 이 아이를 맞아주어야 할까.목이 살살 조여온다. 조여오는 느낌이 목을 넘어 귀까지 이어진다.하아- 하아-가슴을 내밀며 천천히 숨을 쉰다.창문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본다.아, 더워서 그랬던 것일까.책상의 밝은 스탠드 때문.. 2025.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