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유소시15 [수학문제집] 아홉 살의 어느 날이었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날에 담임선생님께서는 책 표지가 빳빳한 새 문제집들을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 수학, 영어, 국어 등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무료로 배급되는 문제집이었다. 하지만 그 수가 넉넉하지 않아 희망하는 학생들만 받을 수 있었다. 반 친구들은 그 문제집들을 가져가려고 하지 않았다. 긴 겨울방학 동안 공부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겠지. 작년 겨울방학 때 나는 수학문제집 이백 쪽짜리를 삼일만에 풀었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수학 문제집에 달라붙어있었을 정도로 문제풀이가 무척 재미있었다. 문제집을 받아와 올 겨울 방학동안에 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받을 수 없었다. 남이 주는 것은 절대 받지 말라던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단념하고 빈 앞자리 책상 위에 .. 2025. 2. 24. [방학] 가을의 끝자락. 구절초도 서서히 제 힘이 다하여 하나둘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할 때, 우리 삼 형제의 방학도 시작되었다. 방학이 시작되면 우리 삼 형제는 집 밖을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다. 방학수업만이 우리들을 집밖으로 나가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워드프로세서 2급] 필기시험반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수요일에 한 시간 삼십 분씩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형제들과 함께 곧장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방학수업은 언제냐? 월, 수, 금, 오전 열 시부터 열한 시 삼십 분까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라. 응. 신청서에 사인은 내가 할게. 그래라.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는 방학수업 시간표를 보여주지 않은 채 아버지의 서명을 대신 하고 재단용 쇠.. 2025. 2. 22. [복지회관 운동장] 이따금씩 주말마다 복지회관 운동장으로 공을 차러 갔다. 그 운동장은 집에서 걸어서 십오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쌈지마당을 지나 불암산 둘레길을 넘어가면 넓다란 운동장이 나오는데, 그곳이 복지회관 운동장이다. 형이랑 동생이랑 팀을 바꿔가며 축구를 했다. 그렇게 놀고 있을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볼 수 있는 먼 거리에서 천천히 방황하듯 걸어 다녔다. 한적한 복지회관 운동장에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아버지는 더욱 경계하며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복지회관에서 놀 때는 유일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맘 놓고 깔깔대며 웃어서는 안됐다. 그렇게 웃으면 멀리서 아버지가 웃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럼 우리 셋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아버지의 말이 끝날 때까지 땅을 바라.. 2025. 2. 21. [역물구나무] 다리 올려라. 아버지가 말씀하신 뒤 우리 삼 형제는 일제히 큰 방과 작은 방 사이의 벽을 바라보았다. 벽을 마주 보고 가까이 앉아 다리를 거꾸로 든다. 어깨는 차가운 바닥에 닿아 몸을 지지하고 손바닥은 골반을 받친다. 발끝은 하늘을 향해 올리니 마침내 역물구나무 자세가 되었다. 균형을 잃어 휘청거릴 때는 재빨리 발바닥으로 벽을 짚어 균형을 되찾는다. 우리는 컴퓨터를 하기 전에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컴퓨터 의자'를 폈다.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접이식 장의자였다. 그 의자의 가로는 내 키를 넘도록 길어 혼자서는 접고 펼칠 수가 없었다. 항상 삼 형제가 함께 펴고 접었다. 그 의자에 장시간 앉아있고 나면 아버지는 항상 우리에게 '다리 들기'를 하라고 했다. 피가 하체로 쏠려 하체비만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 2025. 2. 21. [어머니를 찾은 날] 어머니가 집을 떠나고 나서도 우리 삼 형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면, 혹은 두 달이 지나면 다시 어머니가 돌아오겠지. 매번 그랬던 것처럼 돌아올 때 달큰한 동지팥죽을 한 아름 싸들고 오시겠지. 형형색색의 옥춘과 부드럽고 짭조름한 쌀과자, 때 아닌 송편을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겠지,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부처님. 엄마가 돌아오게 해주세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관세음보살님. 나무묘법연화경. 소원성취진언. 엄마를 만나게 해 주세요. 간절히 빌고 또 빌어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가 떠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삼형제는 누가 먼저 시작할 것도 없이 등굣길에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엄.. 2025. 2. 14. [어머니가 집을 떠나던 날] 함박눈 나부끼던 겨울이었다. 삼 형제는 부모님이랑 함께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종로, 청량리, 동묘였을까. 아버지의 양손에는 무언가를 가득 담은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잠시 검은 비닐봉지를 문 앞에 내려놓고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아버지의 손이 허리 쪽으로 이동한다. 허리춤에서 수많은 열쇠들이 부딪히는 쨍쨍한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는 혁대고리에 끈을 하나 묶고 그 끈에 아버지가 사용하시는 모든 열쇠를 다 연결해 두었다. 그 짤랑거리는 것들 중 하나를 동그란 열쇠구멍에 맞춰 꽂은 뒤 돌려 문을 열었다. 부엌에 신발을 벗어두고 엄마방으로 올라가자마자 아버지는 무서운 표정을 짓더니 다짜고짜 어머니를 패기 시작한다. 또 왜 때.. 2025. 2. 14. [싫어하는 음식] 너는 싫어하는 음식 있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여러 개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미역, 식판, 미끌거리는 촉감, 구토, 신맛, 닭껍질, 기름, 돼지비계. 그것들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긴 세월 속 바뀌어버린 음식 체질에 이따금씩 나열된 음식들을 먹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음식들의 미끌거림을 느낄 때면 옛 기억들이 혀 끝에서부터 흘러나와 온몸을 휘감는다. 이따금씩 숟가락을 들고 앉아서, 미역국 너머로 천천히 그려지는 그 기억의 장면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미역]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한 어느 봄날이었다. 형과 동생과 나란히 방바닥에 정좌로 앉아 어머니가 차려주실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미역국을 만들어 가져왔다. 그때 나는 미역국을 싫어했다. 미역의 미끌거리는 촉감이 불쾌했다.. 2025. 2. 12. [규칙1] 아가리 찢지 마라. 일절 웃어서는 안 됐다. 명심보감에 따라 웃는 자들은 정신이상자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만에 하나 옅은 미소라도 지은 것이 아버지의 눈에 띄었을 때는 주먹으로 머리를 수십 차례를 맞았다. 아버지는 다른 곳은 건들지도 않고 오로지 머리만 때렸다. 머리에 하얀 피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꼴통을 빠개서, 머리통을 부숴서 하얀 피를 다 꺼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맞을 때마다 머리에서 피가 나기를 바랐다. 정말로 내 머릿속에 하얀 피가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머리는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맞은 곳을 또 맞아 오래된 배터리처럼 부풀어 오른 혹들이 터지기를 바랐지만 더욱 단단하게 붓기만 할 뿐, 그 혹들은 찌그러지지도 않았다. 이따금씩 아버지는 쇠몽둥이로 머.. 2025. 2. 3. [물벼락] 어머니가 나의 뒷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차가운 물로 가득 채워진 새빨간 고무다라이 속으로 내 머리통을 푹 담근다. 머리를 따라 목과 어깨와 팔도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전에 뺨을 맞고 울던 나는 호흡이 가빴었기에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없었다. 폐 속에 남아있던 모든 공기가 빠져나간다. 혼자서 얼굴을 세숫대야 물에 담그며 잠수놀이를 할 때는 잘만 들리던 보글보글 공기방울 소리가 어째서인지 지금은 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숨을 내뱉을 수 없어 물속에서 크게 숨을 들이쉰다. 하지만 공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코와 입으로 차가운 수돗물만 잇따라 들어올 뿐이다. 아무리 팔다리를 움직이며 버둥대도 내 다리보다 긴 고무다라이 아래 땅바닥으로 발을 디딜 수 없다. 머리에 힘을 주어 물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 2025. 1. 31.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