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어느 겨울날, 보건선생님께 우연히 들킨 내 허리의 멍자국들 때문이었다. 나는 넘어져서 멍이 생겼다고 둘러대었지만 보건 선생님은 그 멍자국들을 대수롭게 넘기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까지 알게 되었고 나는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동보호센터 차량 안에서 젊은 남자 관리자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아동보호센터로 갈 수 없었다. 고등학교 삼 학년이라는 나이는 '아동'에 포함되지 않았다. '쉼터'라는 곳도 있었지만 그곳은 너무 멀었다. 어린 나에게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 두려웠다. 조금만 버티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을 다 버리고 가는 것도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있는 묘연사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버지에게는 제가 아동보호센터로 갔다고 해주세요.
나는 아동보호센터 관리자에게 부탁을 했다. 그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입동 무렵의 어느 추운 겨울날에 묘연사로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에게로 간 날이었다.
*
십이월의 묘연사는 추웠다. 컨테이너로만 이루어진 건물은 여름에는 덥고 습했고 겨울에는 건조하고 추웠다. 굳게 닫아도 벌어지는 문틈 사이로 차가운 겨울 공기가 새어 들어와 방 안을 얼렸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인 생수병이 꽁꽁 얼어 얼음이 되어 있었고, 자려고 누우면 입에서 나온 입김이 뭉게뭉게 방 안으로 퍼지는 것이 보였다.
견공들이 짖는 소리에 눈을 뜨고 날아드는 까치 까마귀떼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씻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갈 때 부엌 지붕 위에서 잠자던 고양이들이 흠칫 놀라 눈이 커진 채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한 번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는 샴푸와 린스가 있었고 연탄난로 위에 놓인 커다란 주전자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뜨거운 물을 세숫대야에 조금 붓고 수돗물을 틀어 물의 온도를 맞춘 후 머리를 감았다. 묘연사에는 헤어드라이기도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머리를 감을 수 있었다.
뒷산 너머로부터 태양이 떠오르고 지붕에 쌓인 하얀 눈들이 빛을 내며 녹았다. 녹은 눈들이 똑 똑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처마 밑으로 떨어졌다. 햇빛이 들지 않는 처마 밑으로는 거꾸로 뭉뚝한 고드름이 자랐다. 텃밭에는 노랗게 말라버린 고추, 오가피, 해바라기, 나리꽃 줄기들이 아직 쓰러지지 않은 채 우뚝 서 있었다. 펜스를 이리저리 휘감고 올라온 나팔꽃 줄기들에 펜스는 노란 벽이 되어 있었다.
배수구의 물이 묘연사에서 내려가는 계단으로 흘러 빛나는 얼음 계단이 만들어졌다. 마른 낙엽 위로 그 얼음 계단은 가을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 계단을 한발 한발 천천히 내려갔다. 멀리서 나를 비추는 태양에 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림자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나는 차가운 아침공기 속에서 잠깐 멈춰 섰다. 말없이 그림자를 바라보며 내 발과 연결된 그림자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는 저 멀리 십번종점까지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
주말이 되어 차장사 트럭이 언덕길을 오르내릴 때면 견공들은 소피커 소리에 맞춰 짖어댔다.
조용히 해! 짖지 말어. 엄마 자고 있잖아.
견공들은 트럭에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몽실이가 나를 보며 몇 번 짖더니 곧장 내게 달려와 반갑다며 앞발로 내 무릎을 마구 긁어댔다. 연탄과 진흙이 뒤섞인 것이 바지에 묻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몽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에서 덜 깼는지 뒤에서 소리 없이 바라보던 아롱이, 다롱이, 이월이 등 십여 마리의 견공들이 그제서야 내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나는 선 자리에서 몸을 수그리고 차례로 그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이제 그만해. 바지 더러워지잖아.
견공들은 나의 손과 얼굴을 핥아주었다. 더이상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영명이 일어났니?
멀리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강아지 목욕시키자. 오늘은 이월이를 씻겨야 해.
어머니는 이월이를 잡아 넓은 고무대야 위에 올리고 견용 샴푸로 목욕을 시켜주었다.
'십 년 전에는 내가 저 고무대야 위에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는 참 무서웠는데.'
어린시절의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어머니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결국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어쩔 수 없이 화를 내고 뺨을 갈기는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그렇게 무서운 사람일 수밖에 없었을까.
부드러운 손길로 이월이의 털에 묻은 지저분한 먼지들이 씻겨나갔다. 이월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동그랗게 뜬 눈만 꿈뻑거리며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또 한참을 허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몸을 어머니에게 맡겨버린 듯 털에 앉은 거품들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넓다란 수건으로 이월이를 감싸고 내 품에 안겨주었다. 나는 하얀 수건의 이월이를 부엌의 안쪽으로 데려가 바닥에 앉았다. 추운 겨울바람에 이월이가 몸을 떨었다. 이월이가 춥지 않도록 따뜻한 드라이기 바람으로 몸의 곳곳을 말려주었다. 따뜻한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는 내 손과 팔을 가져다 대었다. 어머니는 지친 듯 플라스틱 빨래의자에 앉아 몸을 축 늘였다. 가까운 발치서 칠칠이와 곰돌이, 아롱이와 다롱이가 커다란 소리를 내는 헤어드라이기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작게 난 부엌의 창으로 푸른 아침의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 겨울공기가, 다시는 따뜻해지지 않을 듯한 차가운 겨울공기가 천천히 우리들의 곁으로 걸어 들어왔다.
묘연사는 고요했다. 이따금씩 들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자연의 소리들이었다. 낮이면 전봇대 위에 앉아 우는 새들의 노래가 좋았고 밤이면 저 멀리 뒷산에서 들려오는 소쩍새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태양이 어스름에 밀려 사라질 즈음 시작되는 풀벌레들의 사랑가는 긴 밤을 지나 여명이 강하게 밝아올 무렵까지 이어졌다. 경쟁이라도 하듯 개구리들도 목청껏 합창을 했다. 풀벌레들의 소리가 잦아들 때쯤 참새들이 찾아왔다. 참새들은 밤 사이 잘 지냈느냐고 안부인사를 건네고는 묘연사의 석탑 옆 화장실 위에 뿌려진 콩과 쌀알들을 쪼아 먹었다. 그때면 어김없이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가사 장삼을 두른 스님이 법화경을 넘기며 염불을 시작했다. 견공들은 일제히 법당 앞으로 가 엎드렸다. 몇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스님 옆에서 잠들곤 했다. 어머니의 말을 따라 나도 법당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부처님과 스님께 삼배를 올렸다. 나는 법당 계단에 앉아 가만히 염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리는 햇빛과 우는 새들. 차가운 눈과 견공들. 밤이 오면 들려오는 개구리와 풀벌레들의 이야기. 아침마다 삼십 분 동안 이어지는 스님의 염불소리. 그리고 따뜻한 어머니가 좋았다. 이곳이 편안했다. 아버지가 없는 이곳이 나는 정말 좋았다.
사십구재/유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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