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과 어깨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붉게 올라오는 그것들을 아버지는 피부병이라고 불렀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왜 몸에 여드름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스트레스 때문이다, 잘 씻어야 한다,라는 뜬구름 잡는 정보만 있을 할 뿐, 명확하게 어떤 원인으로 여드름이 생기고 이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사춘기라서 여드름이 난다고 하는데 왜 사춘기일 때 여드름이 나는 걸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더러운 새끼야. 뭘 처먹고 다니길래 이런 게 몸에 나냐. 너 담배 피우냐?
아버지는 종종 나에게 이런 말들을 던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도 이상한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여드름이 난대요.
나는 아버지의 말을 되받아쳤다. 왜인지 나는 아주 강력하게 '스트레스'라는 단어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다. 무심하게 던진 이 말속에는 '그만 좀 때려주세요.' 한 문장만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잠시나마 '아버지가 스트레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주기를', '아들들이 받는 스트레스 속에 자신이 던지는 폭언과 폭력도 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았으면', 생각하고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의 행동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나는 동시에 의문을 가졌다. 어깨와 등에 듬성듬성 피어난 빨간 여드름의 근원은 정말 스트레스가 맞을까. 오래도록 고민하다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생각을 거두었다.
만지면 아프다는 것 외에도 여드름이 주는 고통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악취였다. 여드름으로부터 나오는 악취가 아니었다. 여드름을 치료하기 위해 아버지가 내 등에 들이붓는 수상한 액체. 그 액체 특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동대문으로 나갔다가 '참숯목초액'을 사 온 적이 있었다. 이유는 형과 나의 여드름이였다. 아버지는 형과 나에게 웃옷을 벗고 뒤를 돌게 한 다음 목어깨와 등 전체에 빈틈없이 목초액을 발랐다. 강한 목초액 냄새가 내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목초액이 닿은 피부도 살살 따가워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가끔씩 바늘로 여드름을 딸 때도 있었는데, 따고 난 후에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목초액을 발랐다. 뚫린 피부 아래로 스며드는 목초액은 고통스러웠다. 너무 아파 몸에 힘을 주거나 몸을 움찔거리면 아버지는 발작하지 말라며 머리를 때렸다.
발작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 이 개새끼야.
목초액은 원액으로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목초액을 조금 덜어낸 뒤, 비워진 부분을 식초와 락스, 물파스로 비율에 맞게 채웠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목초액이 아닌 것이 되었다. 식초 냄새가 더해져 냄새는 더욱 독해졌다.
등교 전에도 아버지는 그 액체를 내 등에 발라주었다. 물로 헹궈내는 것 없이 그 액체를 바람에 말리고 우리는 교복을 입었다. 그 냄새는 아주 독해서 교복을 뚫고 우리들의 코까지 들어왔다. 등교를 하면 친구들이 나한테서 이상한 식초 냄새가 난다고 했었다. 나는 피부에 약을 발랐을 뿐이라며 코대답을 하였다.
아버지는 약이라고 부르기 힘든 이 액체를 고등학교 졸업반 가을 끝자락까지, 내가 집을 나가기 전까지 계속 발라주었다. 내가 바르기 싫다고, 도저히 여드름이 낫는 것 같지 않는다고 말을 해도 아버지는 귀띔으로도 듣지 않았다. 내가 몸을 움직이며 바르기 싫다고 하면 그제야 '아가리 닥쳐라, 가만히 있어라' 하고 주먹으로 머리를 때릴 뿐이었다.
묘연사로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이게 무슨 냄새냐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어머니는 따뜻한 물로 내 어깨와 목, 등을 마사지하며 씻어주었다. 피부 위에 남아있는 말라버린 목초액은 씻겨 내려갔지만, 식초와 목초액이 섞인 불쾌한 냄새는 따뜻한 물로 등어깨를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도대체 왜 이런 걸 바르냐며 아버지를 욕했다.
자기 몸에도 바르라지. 영명아, 언제든지 와서 씻고 가.
묘연사를 나서기 전 내게 해주신 어머니의 말이 따뜻했다. 나는 어머니의 품으로 와락 안겼다. 그러다가 그 불쾌한 식초 냄새가 어머니의 옷에도 밸까 걱정되어 재빨리 어머니에게서 몸을 멀리했다. 나는 또 오겠다고 하고 묘연사를 나섰다. 그렇게 나는 또 집으로 향했다.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식초 냄새가 났다. 앉았다가 누울 때도 식초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내가 베고 자는 베개와 덮는 이불은 이미 오래전에 식초와 목초액 냄새가 배어버렸다. 잠에 들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런 독한 냄새면 적어도 모기들은 내 피를 빨아먹진 않겠다,라고. 심심하면 나오는 바퀴벌레나 집게벌레가 적어도 내 몸 쪽으로 가까이 오지는 않겠다고. 그거 하나만은 다행일 것이라고.
사십구재/유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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