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십구재/유소시

[각목]

by EugeneChoi 2025. 3. 27.


  또 무슨 잘못을 한 걸까. 형은 오른팔로 작은 방 벽 모서리를 붙들고 버티고 있었다. 벽 너머로는 아버지가 형의 왼팔을 잡고 큰 방 안쪽으로 끌고 가려 했다. 겁에 질린 형의 얼굴에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꼴통을 쳐맞아야 정신 차리지. 이리 와라, 이 개새끼야.
  죄송해요. 안 그럴게요. 죄송해요.

  아버지는 벽 너머 틈새에서 각목을 꺼내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작은 방의 구석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어느새 우리도 입 밖으로 잘못했다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때리지 마세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의 팔을 잡고 내쪽으로 끌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중학생이었던 두 아들이 힘에 부쳤는지 아버지는 각목이 있는 곳까지 손이 닿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는 주먹으로 형을 때리기 시작했다. 집 안은 욕설과 우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바탕 실컷 맞고 나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아버지는 잠깐 집 밖으로 나가 모습을 감추었다. 침묵 속에서 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침 뉴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다.
  그러게. 그 누가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없겠지.
  응. 아무도 없겠지.
  우리가 평범한 삶을 사는 걸까. 남들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

  나는 늘 보던 뉴스 채널에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상상했다. 

  [서울의 60대 남성, 세 아들 살해한 뒤 자수···]

  정말 다른 어른들도 자식들의 머리를 주먹으로 매일 때릴까. 같은 반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살고 있다면 우리가 엄살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대한민국의 아침 뉴스에 나오기에는 너무 수위가 낮은 것은 아닐까.

  나갔던 아버지가 금세 돌아왔다. 나는 집에서 각목이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우리를 때리기 전에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금것 우리의 몸을 때려왔던 익숙한 모양의 각목을 한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그렇게 집을 나가고 몇십 초 가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최대한 방 구석으로 몸을 숨겼지만 그것이 폭력의 고통을 덜어주진 못했다.
  휘어지고 녹슨 기다란 못이 서너 개 박힌 그 각목을 볼 때마다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채로 박혀 있는 군데군데 노랗게 변해버린 대못들. 아버지가 휘두른 그 각목에 잘못 맞아 못에 찔리게 된다면 내 머리가 조각조각 깨지게 될까. 연한 살갗이 찢겨 사라지지 않을 흉터가 내 몸에 새겨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사십구재 > 유소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리 감기]  (0) 2025.03.28
[손바닥 흉터]  (0) 2025.03.27
[피시방]  (2) 2025.03.26
[모기 물린 곳]  (0) 2025.03.16
[수학문제집]  (0) 2025.02.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