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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유소시

[모기 물린 곳]

by EugeneChoi 2025. 3. 16.

  아버지는 십 센티미터 정도의 바늘을 가져왔다. 그 바늘은 중간 부분이 조금 구부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왼손으로 내 오른팔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강하게 움켜잡았다. 내 팔목 위로 선홍빛으로 단단히 부어오른 곳을 아버지는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오른손으로 바늘을 집어 모기 물린 부위를 찌른다. 뾰족한 삽으로 흙을 퍼내듯 바늘 끝이 아래로 향하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묵직한 딱! 소리와 함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바늘에 찔린 곳에 피가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바늘로 딸 준비를 한다. 딱! 바늘로 찌른 곳에 눈으로 보일 정도의 아주 작은 구멍이 생겼다. 아버지는 엄지와 검지로 그 부위를 짜기 시작했다.  살이 짓이겨지는 고통에 왼손은 주먹이 쥐어졌고 눈이 질끈 감겼다. 아버지의 손에서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눈을 뜨고 바늘로 따인 곳을 쳐다보았다. 새빨간 핏망울이 구멍을 막으며 맺혀 있었다. 아버지는 휴지로 피를 닦아냈다. 하얀 휴지가 붉게 물들었다. 아버지는 내 팔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다른 곳은 모기에 물리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아버지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옷과 바지로 가려두고 있었던 빨간 자국들을 들키고 말았다. 아버지는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야이 개새끼야. 움직이질 않으니 모기한테 뜯기지. 평소에도 가만히 움직이지 말고 계속 움직여라. 알았냐.

  지난 밤에 모기를 잡지 않고 잠에 든 것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목과 팔, 손등, 등, 옆구리, 허벅지, 무릎, 종아리 등 하룻밤 사이에 모기에 물려 부풀어 오른 스무 군데 정도의 빨간 반점들을 전부를 바늘로 땄다. 그 후 아버지는 바늘을 바닥에 내려두고 물파스와 담배곽을 가져왔다. 닦아냈지만 다시 봉긋 솟아오른 핏망울 위로 물파스를 강하게 짓누르듯 바른다. 바늘로 딴 부위가 천천히 따가워오기 시작한다. 상처에 물파스가 닿는 고통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다가 이내 따가움이 사라진다. 아버지는 연초 하나를 담배곽에서 꺼내 담뱃잎 부분부터 손가락 한 마디만큼을 뜯어냈다. 종이 부분을 찢은 뒤 담뱃잎이 새어 나온 부분을 피부에 닿도록 올려두고 떨어지지 않도록 종이반창고로 여러 번 덧대었다. 전신의 스무 군대에 종이 반창고들이 붙었다. 관절에 붙은 종이반창고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버지에게 혼났기에 항상 조심히 몸을 움직였다. 
  바늘로 모기 물린 곳을 따고 나면 신기하게도 더 이상 가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바늘로 따고 물파스를 바를 때의 고통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갈색의 종이반창고가 피부에 붙을 때는 빳빳해서 피부가 반창고에 들러붙는 듯한 느낌이지만, 하루 이틀 지날수록 빳빳함이 사라져 피부의 굴곡에 맞춰졌다. 잠을 자면서 내 몸무게에 눌리고 세수할 때 물이 닿으면서 반창고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반창고의 끄트머리에 먼지가 붙어 끈적함이 사라질 즈음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이리 와라.

  아버지는 반창고를 반쯤 떼서 모기 물린 곳을 확인했다. 반창고가 떼어질 때 습기를 머금은 조각난 담뱃잎들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며칠 동안 물과 땀과 물파스와 담뱃잎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그 냄새는 더 이상 물파스나 담배의 냄새가 아니었다. 담배연기처럼 역하지도 물파스처럼 시원한 향도 아니었다. 나는 괜히 모기에 물렸던 곳을 손가락으로 살살 만져본다. 더 이상 그곳은 붉지 않았다. 가려움도 없고 붓기도 가라앉았다. 아버지는 내 몸에 붙은 반창고를 마저 떼어내 휴지통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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