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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유소시

[복지회관 운동장]

by EugeneChoi 2025. 2. 21.

  이따금씩 주말마다 복지회관 운동장으로 공을 차러 갔다. 그 운동장은 집에서 걸어서 십오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쌈지마당을 지나 불암산 둘레길을 넘어가면 넓다란 운동장이 나오는데, 그곳이 복지회관 운동장이다. 형이랑 동생이랑 팀을 바꿔가며 축구를 했다. 그렇게 놀고 있을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볼 수 있는 먼 거리에서 천천히 방황하듯 걸어 다녔다. 한적한 복지회관 운동장에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아버지는 더욱 경계하며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복지회관에서 놀 때는 유일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맘 놓고 깔깔대며 웃어서는 안됐다. 그렇게 웃으면 멀리서 아버지가 웃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럼 우리 셋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아버지의 말이 끝날 때까지 땅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면 다시 공을 차기 시작했다. 
  복지회관을 자주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복지회관 운동장 어귀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택들 사이로 묘법연화사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언제 한 번 묘법연화사 정문 앞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여인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형아야. 이리 와 봐. 저기 한 번 봐 봐.
  응. 왜?
  저거 엄마일까? 

  그런 것 같은데.
  청명아, 너도 이리 와 봐. 손 흔들어보자. 아빠 몰래 조심히.
  
  그 여인은 우리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잠시 보이지 않을 때 그 여인을 향해 얇은 팔을 갈대처럼 흔들었다. 그러자 그 여인도 머리 위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정도의 먼 거리에서도 알 수 있었다. 옷의 색깔이나 손을 흔드는 모양새가 틀림없는 어머니였다. 열 살 무렵의 나는 기뻤다. 이곳 복지회관에서 어머니를 볼 수 있구나 하며 마냥 행복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세 아들과 생이별한 어머니의 마음을, 당장 달려가서 안고픈 어린 아들 셋이 눈앞에 있는데도 따스한 손길 한 번 건넬 수 없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

  엄마, 그때 손 흔들던 거 엄마 맞지? 우리 복지회관에서 공 차고 있었을 때.
  응. 너희들 맞지? 아이고 날씨도 추운데 바깥에서 공을 차고 있니.

  아버지 몰래 어머니를 찾아갔던 겨울방학의 어느 날 우리는 물어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맞다고 했다. 우리는 매번은 아니지만 주말마다 자주 복지회관에 간다고, 그때마다 어머니가 보이면 꼭 손을 흔들겠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나는 기뻤다. 이제 앞으로 주말마다 공을 차러 복지회관 운동장으로 갈 때마다 흐릿하게나마 어머니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빨간 누빔 조끼에 얇고 단촐한 검정색 바지를 입은 입은 어머니에게 멀리서 손은 흔들며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우리의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까마귀들을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공을 차기 시작하는, 해가 하늘의 중간쯤 떠있는 무렵부터 그 눈부시고 노란 것이 뒷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하늘에서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노랗게 익어버린 수쿠령 사이로 보이는 어머니의 몸은 하염없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복지회관과 형(2016.11.06.)





복지회관으로 가는 길(2025.02.22.)

복지회관으로 올라가는 길, 도로 좌측으로 보이는 빨간 지붕의 묘연사

 




복지회관 (2025.02.22.)

손은 흔들어보이기 위해 어린 삼 형제가 올라갔던 바위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이제는 이곳에서 묘연사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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