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주말마다 복지회관 운동장으로 공을 차러 갔다. 그 운동장은 집에서 걸어서 십오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쌈지마당을 지나 불암산 둘레길을 넘어가면 넓다란 운동장이 나오는데, 그곳이 복지회관 운동장이다. 형이랑 동생이랑 팀을 바꿔가며 축구를 했다. 그렇게 놀고 있을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볼 수 있는 먼 거리에서 천천히 방황하듯 걸어 다녔다. 한적한 복지회관 운동장에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아버지는 더욱 경계하며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복지회관에서 놀 때는 유일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맘 놓고 깔깔대며 웃어서는 안됐다. 그렇게 웃으면 멀리서 아버지가 웃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럼 우리 셋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아버지의 말이 끝날 때까지 땅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면 다시 공을 차기 시작했다.
복지회관을 자주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복지회관 운동장 어귀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택들 사이로 묘법연화사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언제 한 번 묘법연화사 정문 앞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여인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형아야. 이리 와 봐. 저기 한 번 봐 봐.
응. 왜?
저거 엄마일까?
그런 것 같은데.
청명아, 너도 이리 와 봐. 손 흔들어보자. 아빠 몰래 조심히.
그 여인은 우리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잠시 보이지 않을 때 그 여인을 향해 얇은 팔을 갈대처럼 흔들었다. 그러자 그 여인도 머리 위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정도의 먼 거리에서도 알 수 있었다. 옷의 색깔이나 손을 흔드는 모양새가 틀림없는 어머니였다. 열 살 무렵의 나는 기뻤다. 이곳 복지회관에서 어머니를 볼 수 있구나 하며 마냥 행복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세 아들과 생이별한 어머니의 마음을, 당장 달려가서 안고픈 어린 아들 셋이 눈앞에 있는데도 따스한 손길 한 번 건넬 수 없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
엄마, 그때 손 흔들던 거 엄마 맞지? 우리 복지회관에서 공 차고 있었을 때.
응. 너희들 맞지? 아이고 날씨도 추운데 바깥에서 공을 차고 있니.
아버지 몰래 어머니를 찾아갔던 겨울방학의 어느 날 우리는 물어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맞다고 했다. 우리는 매번은 아니지만 주말마다 자주 복지회관에 간다고, 그때마다 어머니가 보이면 꼭 손을 흔들겠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나는 기뻤다. 이제 앞으로 주말마다 공을 차러 복지회관 운동장으로 갈 때마다 흐릿하게나마 어머니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빨간 누빔 조끼에 얇고 단촐한 검정색 바지를 입은 입은 어머니에게 멀리서 손은 흔들며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우리의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까마귀들을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공을 차기 시작하는, 해가 하늘의 중간쯤 떠있는 무렵부터 그 눈부시고 노란 것이 뒷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하늘에서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노랗게 익어버린 수쿠령 사이로 보이는 어머니의 몸은 하염없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복지회관과 형(201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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