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올려라.
아버지가 말씀하신 뒤 우리 삼 형제는 일제히 큰 방과 작은 방 사이의 벽을 바라보았다. 벽을 마주 보고 가까이 앉아 다리를 거꾸로 든다. 어깨는 차가운 바닥에 닿아 몸을 지지하고 손바닥은 골반을 받친다. 발끝은 하늘을 향해 올리니 마침내 역물구나무 자세가 되었다. 균형을 잃어 휘청거릴 때는 재빨리 발바닥으로 벽을 짚어 균형을 되찾는다. 우리는 컴퓨터를 하기 전에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컴퓨터 의자'를 폈다.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접이식 장의자였다. 그 의자의 가로는 내 키를 넘도록 길어 혼자서는 접고 펼칠 수가 없었다. 항상 삼 형제가 함께 펴고 접었다. 그 의자에 장시간 앉아있고 나면 아버지는 항상 우리에게 '다리 들기'를 하라고 했다. 피가 하체로 쏠려 하체비만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특히 내 넓적다리를 싫어했다. 형과 동생의 넓적다리보다 굵은 내 것을 보고는 비만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그때,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나면 아버지의 '비만' 이야기와는 달리 항상 허약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몸무게가 키에 비해 평균보다 수 킬로그램은 적다는 이유였다. 학교에서 반 여자애들에게서 부러움을 샀다. 그 애들은 내 다리가 왜 이렇게 얇냐며 밥 좀 많이 먹으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비만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
나는 유연하지 못했다. 아빠다리를 하고 앉으면 무릎이 바닥에서 높이 떨어져 있다며 아버지는 내 무릎을 주먹으로 강하게 수차례 내리쳤다. 나는 억지로 힘을 주어 무릎을 바닥으로 내리려 했지만 유연하지 못한 내 골반은 그런 자세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올바른 자세를 하라며 계속 내 무릎을 때렸다. 하지만 아무리 때려도 무릎은 내려가지 않았다.
자기 전 내복을 걷어 무릎을 살폈을 때는 항상 새롭게 새겨진 멍자국들이 보였다. 오늘은 노란색일까, 보라색일까, 멍자국들을 꾹꾹 눌러가며 통증의 정도를 확인하며 그것들의 색깔을 맞추는 재미도 있었다.
형과 동생은 무릎을 맞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 둘은 아빠다리를 했을때 무릎의 높이가 나보다 낮았다. 왜 나만 무릎이 내려가지 않는 걸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난세의 영웅이라도 될 인물일까,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점을 갖고 태어난 걸까- 쓸데없는 상념에 빠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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