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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유소시

[싫어하는 음식]

by EugeneChoi 2025. 2. 12.

  너는 싫어하는 음식 있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여러 개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미역, 식판, 미끌거리는 촉감, 구토, 신맛, 닭껍질, 기름, 돼지비계. 그것들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긴 세월 속 바뀌어버린 음식 체질에 이따금씩 나열된 음식들을 먹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음식들의 미끌거림을 느낄 때면 옛 기억들이 혀 끝에서부터 흘러나와 온몸을 휘감는다. 이따금씩 숟가락을 들고 앉아서, 미역국 너머로 천천히 그려지는 그 기억의 장면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미역]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한 어느 봄날이었다. 형과 동생과 나란히 방바닥에 정좌로 앉아 어머니가 차려주실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미역국을 만들어 가져왔다. 그때 나는 미역국을 싫어했다. 미역의 미끌거리는 촉감이 불쾌했다. 미역과 국물과 함께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었지만 혀와 입술에 닿을 때 느껴지는 점액질 같은 것 때문에 도저히 목 아래로 넘길 수 없었다. 미역의 냄새와 맛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억지로 숨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미역을 삼켰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선 답답했는지 어머니는 내 뺨을 때렸다.

  빨리 안 먹어. 아가리 벌려. 얼른 먹어!

  미끌거리는 미역이 역겨웠다. 얼굴을 찡그린 채로 억지로 입을 움직여가며 잘근잘근 씹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숴진 미역들을 재차 삼키던 순간 구토를 하고 말았다. 앞서 들어갔던 흰 밥과 김치가 끈적거리는 미역들과 함께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역류한 위산으로 코와 목이 따끔거렸다. 혀 끝에서부터 목구멍이 열고 닫히는 곳까지 시큼한 냄새로 가득했다. 눈물이 나왔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아버지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며 말한다.

  빨리 다 주워 먹어라. 

  듬성듬성 붉게 물든 미역국을 바라본다. 위액이 묻은 숟가락을 잡아 들고 미역을 크게 한숟가락 푼다.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댄다. 입을 천천히 벌리고 음식이라고 부르기 힘든 그것들을 혓바닥 위로 붓는다. 씹고 또 구역질을 한다. 구역질에 온몸이 들썩이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팔을 확 들어 올린다. 반사적으로 팔이 올라가 머리를 감싼다.

  왜 만들어준 걸 안쳐먹냐. 이 개새끼야. 굶고 싶냐?
  아니.

  굶고 싶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니라고 답했다 아니,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 대답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 맞을 때는 무조건 부모님이 옳았다. 그날 나는 그 식판 위의 모든 것들을 목 아래로 넘겼다. 깨끗이 비워진 식판만이 이 기억의 마지막 모습이다.

 

[돼지비계]

  네 살 무렵이었을까. 동생 청명이가 걸을 수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한 식당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흐릿하게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작은아버지와 이모들도 보인다. 찬바람 불던 겨울날이었다. 기다란 좌식 테이블에 열댓 명 정도의 사람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척들을 한 날 한 시에 처음으로 보는 날이었다. 형과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입을 꾹 다문 채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옆에서 얇은 점퍼를 입고 계신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영명아, 아 해. 이거 먹어라.

  입을 벌리고 할머니가 주시는 고기쌈을 받아먹었다. 적치마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하고 열심히 씹던 도중 갑자기 헛구역질이 났다. 돼지고기 비계가 질기고 미끌거린 탓이었다. 나는 배를 떨며 계속 씹는 척을 했다. 할머니가 맛있냐고 물어봤고 나는 맛있다고 대답했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비계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목 아래로 넘겼다. 비계를 뱉어내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볼 안에 커다란 돼지비계를 두는 것은 편하지 않았다. 비릿한 비곗내가 계속해서 폐 속으로 들어갔다. 숨을 천천히 쉬며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물이 채워진 스탠리스 물컵을 들어 크게 한 모금을 입 안으로 붓는다. 그리고는 큼지막한 알약을 삼키듯 비릿한 돼지고기 비계를 물과 함께 삼켜버렸다. 

  그 이후로는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돼지고기 찌개를 해줄 때마다 비계 부분을 잘라내고 살코기 부분만을 먹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음식을 재탕하였기에 남긴 음식들은 전부 다음 날에 다시 보게 되었다. 결국 그 미끌거리는 것들을 입 안에 모아두었다가 아버지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할 때 미리 겹겹이 뜯어낸 휴지에 뱉어내 동그랗게 말았다. 돼지비계와 휴지로 만들어진 작은 공은 축축하고 따뜻했다. 그것을 밤동안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다음 날 등굣길에 먼 산속으로 던저버렸다. 그것은 두껍게 쌓인 마른 낙엽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도록 돼지비계를 먹지 않았다. 역겹도록 찐득한 생명체의 피부를 먹을 수 없었다. 씹을 때마다 입 안으로 퍼지는 비릿한 냄새와 미끌거리는 감촉을 견딜 수 없었다. 물과 함께 목구멍 아래로 넘어가던 그 기름진 덩어리들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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