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리 찢지 마라.
일절 웃어서는 안 됐다. 명심보감에 따라 웃는 자들은 정신이상자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만에 하나 옅은 미소라도 지은 것이 아버지의 눈에 띄었을 때는 주먹으로 머리를 수십 차례를 맞았다. 아버지는 다른 곳은 건들지도 않고 오로지 머리만 때렸다. 머리에 하얀 피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꼴통을 빠개서, 머리통을 부숴서 하얀 피를 다 꺼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맞을 때마다 머리에서 피가 나기를 바랐다. 정말로 내 머릿속에 하얀 피가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머리는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맞은 곳을 또 맞아 오래된 배터리처럼 부풀어 오른 혹들이 터지기를 바랐지만 더욱 단단하게 붓기만 할 뿐, 그 혹들은 찌그러지지도 않았다.
이따금씩 아버지는 쇠몽둥이로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늘처럼 쇠몽둥이로 머리를 맞던 어느 날, 정수리 오른쪽 부분에서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새어 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두들겨 맞던 와중에도 오른손으로 그 끈적한 액체를 손에 묻혀 확인해 보았다. 맑은 선홍빛이었다. 아버지가 틀렸어요,라는 말이 목구멍 안쪽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혼이 빨려나간 짐승의 눈빛을 한 아버지의 폭력을 그대로 다 받고 있었다. 용기가 나지 않았을까. 이차 성징도 오지 않은 내가 그 말을 내뱉는다고 하여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나설까. 수백 수천 번을 생각해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단념하고는 고통을 깊이 받아들였다. 이 아픔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보내어
압축시킨 뒤 뜨거운 온정에도 녹을 수 없을 고농축의 결정으로 만들었다.
*
손가락으로 발작하지 마라. 재수 없다.
손가락을 재주스럽게 움직이는 모든 일은 할 수가 없었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수도, 터져버린 곰인형을 꿰메기 위해 바느질을 할 수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재수 없다'라는 말을 일곱 살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재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이야?
응, 운수가 좋지 않다는 뜻이야.
근데 왜 손가락을 움직이면 운수가 좋지 않아?
그림 그리는 건 아빠 없을 때만 하자.
어머니는 끝내 이유를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림 그리면 돈 못 번다. 나중에 그지처럼 살고 싶냐. 아빠 말 똑바로 들어라.
어린 삼 형제는 그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면 돈을 못 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혹시 어머니가 목탁을 치는 스님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머니가 한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의문만 마음에 품은 채 아버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남이 주는 물건은 절대 받지 마라. 우리가 그지냐. 커서도 그지로 살고 싶냐.
남이 주는 선물도, 길을 걷다가 삼 형제가 예쁘다며 사탕이나 용돈을 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무시해야 했다. 우리 삼 형제를 붙잡고 무엇이라도 주려고 노력하는 어른들 앞에서 잠시 동안 서 있기만 해도 아버지는 우리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머리를 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어른들은 우리를 잠시 흘겨보더니 말없이 그 자리를 황급히 떴다. 익숙한 반응이었고 익숙한 눈빛이었고 익숙한 아픔이었다.
남의 새끼한테 얼씬대지 말고 꺼져 이 개새끼야.
그 어른들을 노려보고 욕설을 내뱉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먹잇감을 향한 포식자들의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던 그 아버지가. 악의를 품었으면서도 이유 모를 공허함이 서리어 텅 빈 껍데기같은 욕설을 뱉어냈던 그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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