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었지만 가끔씩 수암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동생이랑 공을 차며 놀았다. 어느 날은 운동장에서 넘어져 손바닥에 큰 상처가 났다. 흙바닥이었던 운동장은 쌀알크기만 한 작은 돌들이 많았다. 그 수많은 돌들 중 하나가 넘어지면서 바닥을 짚은 내 오른 손바닥을 깊게 파내었다. 빨간 피가 흘렀다. 나는 오른 팔목을 부여잡고 개수대로 가 상처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 피는 금방 멎었지만 상처부위가 화끈거리고 얼얼했다.
나는 상처를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 손바닥을 가리며 생활했다. 그러나 큰 상처 주변으로 붉게 물든 작은 생채기들까지 숨기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먼저 이 상처를 아버지에게 말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지난 저녁에 아버지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상처를 보고는 아버지는 내게 욕을 하며 주먹으로 머리를 몇 대 때렸다. 그리고는 나를 자리에 앉혔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 한구석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왔다. 그리고 그 비닐봉지 안에서 물파스와 하얀색 약품 통을 꺼냈다. 나는 그 통에 염산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아버지는 물파스 뚜껑을 열어 솜이 부착된 마개 부분을 손톱으로 강제로 열었다. 특유의 강한 물파스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아버지는 염산 뚜껑을 열어 플라스틱 물파스 통에 붓기 시작했다. 물파스와 염산의 비율을 삼대 일 정도로 맞추고 물파스 마개를 도로 꽉 닫았다.
아버지는 내 오른손을 꽉 붙잡고 염산이 섞인 물파스를 무심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칼로 피부를 찢는 고통이 온몸으로 퍼졌다. 아버지에게 꽉 붙들린 팔을 빼고 싶었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상처를 태우는 염산의 고통에 전신에 힘을 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문 채 다른 손으로는 무릎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삼십 초쯤 흘렀을 때 문득 자의식이 생겼다. 더 이상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양쪽 눈에는 차가운 눈물이 고여 있었고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봤을 때는 오른손의 상처가 새카맣게 변한 뒤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상처 위로 플라스틱 물파스를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된 것이 신기했다. 아버지는 주변으로 흐르는 물파스를 휴지로 닦고 내 손을 놓아주었다. 나는 까맣게 변해버린 상처를 다른 손으로 어루만졌다. 상처 위에는 불에 타버린 듯한 까만 장작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딱지가 얹혀 있었다. 커다란 딱지 주위의 생채기들 위로도 새까만 보석 같은 검정 딱지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
그 시커먼 딱지는 이주일이 넘도록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평범한 딱지들처럼 주변이 간질간질하다던가 주변의 마찰로 딱지가 떨어진다던가 하지도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화상으로 생긴 딱지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후부터는 딱지를 떼려고 했다.
딱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손톱으로 잡아떼자 바깥 부분은 질긴 소보로빵처럼 떨어져 나갔지만, 맨 중앙 부분은 손바닥의 속근육과 연결되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며칠 동안 시커먼 딱지를 시계방향으로 계속 돌려 떼내었다. 깊은 속살에서부터 하얀 진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손바닥에 오래도록 들러붙어 있던 끈적한 덩어리를 떼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딱지를 떼어내고 나서부터 깊게 파인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속에서부터 연한 살이 차올라 완전히 아물자 작은 쌀알 두 개가 이어붙은 듯한 흉터가 되었다. 그 흉터 위에는 지문이 그려지지 않아 조명에 빛이 나는 맨들맨들한 피부가 되었다.
이 흉터는 여전히 예전의 기억들을 붙들고 있다. 손바닥을 파낸 작은 돌멩이들. 코를 찌르는 독한 파스 냄새. 상처를 태우고 딱딱히 굳히는 염산의 고통. 뜯어낸 시커먼 딱지 아래로 차오르는 하얀 진물. 염산 물파스를 수 분 동안 내 손바닥에 두드리던 아버지의 굳은 얼굴. 그날의 기억들은 살을 태우는 고통을 끌어안고서 차오른 새살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사십구재/유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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