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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머니 글을 되뇌었다.내 아들 셋. 엄마가 지금 무척 보고 싶거든그리고 엄마가 지금 무척 아프거든어디가 아프냐고?마음이아들 셋? 지금 무슨 생각?엄마는 아들 셋 생각 중오늘 입춘이거든내 고운 님들. 예쁜 님들 너무도 그리운 나의 님들어디서 찾아볼거나내 고운 님들의 향기 어디서 맡아 볼거나...내 님들 찾아 하루 종일 눈 속을 헤매여도 보이지 않아...저 까치들은 님들 노는 곳으로 날아 가는데...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원수와 만나는 고통 보살의 행할 바는 번뇌로움에 처했으되 그 번뇌에 머물지 않느니라 마음이 空(공)하면 죄도 복도 주인이 없거니... 내가 어머니가 바라던 바를 이루기라도 한 걸까.빈 마음.텅 빈 마음.무엇으로도 채워지지도 채워질 수도 없는망망대해 바다, 공허한 우주 같은 마.. 2025. 4. 3.
수영일지 2025-03-30 (+162) 강사님한테 많이 늘었다는 말을 들었다.일주일에 4~5회씩, 하루에 2시간씩 수영을 하니 늘 수밖에.모든 영법은 다 배웠다.다음 주부터 자유형 팔꺾기 진도를 나간다고 강사님은 말했다.초보 시절부터 수영을 같이 배우던 한 젊은 여성분은어느 순간부터 수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내 뒷시간대에 배우던, 오고가며 몇 번 마주친 또다른 여성은나와 같은 5개월의 시간을 보냈는데도 여전히 평영을 연습 중이다.또 다른 한 아주머니는 2개월 전에도 플립턴을 연습하고 있었는데지금도 여전히 플립턴을 연습중이다.내가 그들을 보고, 그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그들의 시간은 멈추기라도 하는 걸까.이제 내 옆 라인에는 얼굴이 익숙한 중년 아저씨가 있다.어림잡아 1년 정도 수영을 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한 달 전에는 나보다 수영 진.. 2025. 3. 30.
옛집 길모퉁이를 지나 외딴 산동네를 홀로 찾아가선 천천히 거닐어 봅니다 걷고 걷고 또 걸어 어느새 향기가 익숙한 절집에 멈춰 섰습니다 이곳에는 여전히 나리꽃이 붉고, 아카시아 향이 짙고, 귀뚜리가 짝을 찾고, 소쩍새가 울고, 흩어지는 향연기가 있고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차가운 겨울이 있습니다 나는 법당 앞에 서서어머니, 어머니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어머니,나는 당신이 한때 앉아있던 터에 서서바람이 지워낼 발자국만 남겨봅니다눈 감으면 들리는 당신 목소리에살며시 내 목소리 포개어 봅니다이곳에는 더이상 나리꽃은 없습니다 벗 없는 아카시아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습니다 짝을 찾는 귀뚜리도, 밤을 우는 소쩍새도,하늘 어딘가로 향하는 향연기도,포근한 당신의 목소리도 없습니다 외로운 산동네 집집마다 짧은 겨울해가 남기고 간 .. 2025. 3. 29.
생명의 끝 글을 쓰는 노트북 키보드 위로 나방파리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몸이 뒤집어져 일으키지도 못한 채 다리만 파닥거렸다."도와줘"외치는 듯한 울부짖음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작은 나방파리는 갈고리같은 다리로 내 손가락을 붙들고 한동안 매달려 있었다.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그냥 책상 위에 두기로 한다.나방파리의 수명은 보름을 넘기지 못한다.날지도 못하고 자꾸 걷다가 뒤집어지는 이 아이는아마 자고 내일 일어나면 호흡이 남아있지 않겠지."죽지 마"나는 짧게 말했다.스스로 나를 찾아온 너를내가 어떻게 모른척할 수 있겠는가.짧게 닿은 인연이라지만깊은 영겁의 세월 속 만들어진그 인연을 어떻게 모른척 하겠는가.날아들어오는 곤충들을 창밖으로 놓아주는 나는이번에는 그냥 집 안에 두기로 한다.자꾸 넘어져.. 2025. 3. 28.
[머리 감기]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나서부터는 집에서 마음대로 머리를 감을 수 없었다. 향기 나는 샴푸도 사용할 수 없었다. 반들하게 기름진 나의 머리칼을 보고 종종 같은 반 친구들이 머리를 감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감았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고, 혹은 전날 밤에 샤워를 했다고 어설프게 코대답만 하였다.   등교길을 나서기 전, 나는 종종 아버지 몰래 짧은 머리를 세숫비누로 감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반팔 티셔츠를 벗어서 가스레인지 한쪽 끝에 올려두었다. 슬리퍼를 신고 부엌 한가운데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려 선 다음 등목 하는 자세로 허리를 구부려 정수리가 바닥을 보게 했다. 수도꼭지를 반쯤 돌려 물이 나오는 소리가 가장 적은 부분으로 맞췄다. 수돗물이 세숫대야에 채워지면 물끼리 부딪.. 2025. 3. 28.
[손바닥 흉터] 중학생이 되었지만 가끔씩 수암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동생이랑 공을 차며 놀았다. 어느 날은 운동장에서 넘어져 손바닥에 큰 상처가 났다. 흙바닥이었던 운동장은 쌀알크기만 한 작은 돌들이 많았다. 그 수많은 돌들 중 하나가 넘어지면서 바닥을 짚은 내 오른 손바닥을 깊게 파내었다. 빨간 피가 흘렀다. 나는 오른 팔목을 부여잡고 개수대로 가 상처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 피는 금방 멎었지만 상처부위가 화끈거리고 얼얼했다.   나는 상처를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 손바닥을 가리며 생활했다. 그러나 큰 상처 주변으로 붉게 물든 작은 생채기들까지 숨기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먼저 이 상처를 아버지에게 말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지난 저녁에 아버지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상처를 보고는 아버지.. 2025. 3. 27.
[각목] 또 무슨 잘못을 한 걸까. 형은 오른팔로 작은 방 벽 모서리를 붙들고 버티고 있었다. 벽 너머로는 아버지가 형의 왼팔을 잡고 큰 방 안쪽으로 끌고 가려 했다. 겁에 질린 형의 얼굴에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꼴통을 쳐맞아야 정신 차리지. 이리 와라, 이 개새끼야.  죄송해요. 안 그럴게요. 죄송해요.  아버지는 벽 너머 틈새에서 각목을 꺼내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작은 방의 구석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어느새 우리도 입 밖으로 잘못했다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때리지 마세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의 팔을 잡고 내쪽으로 끌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중학생이었던 두 아들이 힘에 부쳤는지 아버지는 각목이 있는 곳까.. 2025. 3. 27.
[피시방] 처음으로 PC방을 가게 된 건 열 살 무렵이었다. 형을 따라 불암산 둘레길 입구 앞에 있는 삼층짜리 상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이 층으로 올라서자마자 마주한 투명한 유리문에는 '가가PC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피시방 내부는 어두웠다. 불이 비치지 않아 깜깜토록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천정에서 비치는 노란색 조명이 검정색 벽과 바닥 타일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어둠을 내몰고 있었다. 우리 삼 형제는 카운터로 가 500원을 내고 자리 하나에 30분을 충전했다. 형이 먼저 앉았고 나와 동생은 내 키랑 비슷한 의자 양옆으로 서서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가까이했다. 형은 당시 유명했던 RPG게임을 켜고 캐릭터를 하나 만들었다. 미리 아이디를 만들어두었는지 로그인을 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형이.. 2025. 3. 26.
내가 좋아하는 대화 #좋아하는 대화- 나 있잖아.- 응- 마음이 좀 아파.- 그렇구나.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옛날 생각에.- 그렇구나. 내가 지금 곁에 있을 수가 없네.- 괜찮아. 아픈 건 내 마음이니까. 내가 잘 돌봐야지.- 얼른 괜찮아지면 좋겠다.- 고마워. 너는 별일 없어?- 응. 고요해.- 좋다.- 응 좋네. #공유공유하는 것이 두렵다우리가 공유한 음악, 장소, 음식들이추억이 되어버리기 때문에먼 훗날우리가 더 이상 같이 있지 않을 때공유했던 모든 것들이또내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2025. 3. 25.
기억들 #기억들아픈 기억들은 잊혀지고행복한 기억들만 남게 된다는데왜 나의 어린 시절은 아픈 기억뿐인걸까.분명 행복한 기억들도 많았을 텐데.왜 기억나는 것들은 다 아픈 것들뿐일까.머릿속에서 꺼내는 족족떠오르는 기억들은 모두맞고 울고 아프고 도망치고 싶었던그런 기억들 뿐이다.나는 진짜 돌연변이가 맞는 걸까.남들처럼 평범하게 웃으며 살아갈 수 없는 걸까.그런 게 불가능한 종자인 걸까.아니면 아프고 슬픈 것들이 포근하게 느껴져서나도 모르게 그곳을 찾아가는 것일까. #눈물오늘 회사에서 근무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몇 해 전 심리상담 검사지에 적힌 문장이 생각이 났다.[나는 최근에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정말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더라.아니, 이유는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아니,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가 .. 2025. 3. 25.
아픈 마음 아픈 마음살살 달래어보자고름 얹히지 않도록더 아프지 않도록멍든 마음살살 어루만지자오래 남지 않도록더 옅어지도록찢긴 마음잘 이어붙이자상처 생기지 않도록흉지지 않도록뚫린 마음잘 가리어보자바람 들지 않도록들키지 않도록2025.03.21.鎭 2025. 3. 21.
삶은 그런 것입니다 삶은 그런 것입니다 해가 질 무렵 어스름에 밀려한 순간 강렬히 불타오르다바스라지는 노을 같은삶은 그런 것입니다푸르른 거목의 새와 곤충 사랑하는 마음겨울바람이 남김없이 날려보내어앙상한 가지만 외로이 남는삶은 그런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무르다결국 모두에게서 희미해져버리는한 순간의 짧은 동화 같은삶은 그런 것입니다내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건만드넓고 황량한 우주의 별빛 속에서홀로 처량히 떠다니다 빛바래지는삶은 그런 것입니다모든 것들이 영원할 줄 알았건만어느새 하나 둘 사라지고 혼자 남아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삶은 그런 것입니다삶은 그런 외로운 것입니다2025.03.21.鎭 2025.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