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 시은이에게 전화를 걸어 대학교 합격을 축하해줬다.
시은이는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거듭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가다가, 나는 시은이의 아버지에 대해서 물었다.
아버지는 시은이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시은이에게 간호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면서 교대를 가라는 등의 말씀을 강압적으로 하셨다.
한 번은 아버지가 제 화를 이기지 못해 접시를 벽에 던져 깨뜨리기까지 했다고.
나는 위로의 말들을 건네주었다.
"시은이의 마음을 몰라주어서 많이 속상했겠구나."
"시은이는 그냥 평범하게 웃을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을 바랐던 건데, 그치?"
시은이의 울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부터 들려왔다.
서럽게 흐느끼는 음성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의 볼에도 눈물이 흘렀다.
시은이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여러번 나왔다.
나는 말해줬다.
"괜찮다는 말을 하는 것도 좋아. 하지만 그 말을 스스로에게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해.
어느 순간 괜찮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게 되어버리거든.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는 괜찮아야 돼'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아.
그러니깐 시은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시은이의 마음을 더 알아주기로 하자."
시은이는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저는 강해요. 언니나 동생이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때 저는 아껴두고 필요할 때 썼어요.
근데 동생은 사고 싶은 게 있을 때 엄마에게 돈을 자주 받아가더라고요.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엄마가 너무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거든요..."
"시은이 마음이 너무 예쁘네."
시은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버드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시은아, 나는 나무가 좋아. 버드나무가 특히.
사람들은 나무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 말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해.
올곶게 자란다고, 튼튼하고 강하게 자란다고. 자신 또한 힘들 때 나무처럼 굳건하게 그 상황을 잘 이겨내고야 말겠다고.
하지만 시은아,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무너져버리고 말아.
너무 단단하고 강하게 자라버리면, 거센 비바람이 불었을 때 가지가 부러져버리고 말아.
하지만 버드나무는 그렇지 않아.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흔들리고 쉽게 부러지지 않아.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고, 보란듯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어쩌면 강하다는 건, 단단하고 올곶게 자라는 것보다는 어려움이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어.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 밑에서 추워도 보고,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려보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 다시 일어나서 태양을 바라보는 것.
그래서 내가 버드나무를 좋아하는 것 같아."
시은이는 자신이 태양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기말고사가 끝나고 아무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을 때 자신은 맨 앞자리에서 선생님과 열심히 소통했다고.
남들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도덕]과목이었어도 자신만은 웃으면서 수업을 잘 들었다고.
그래서 그때 도덕선생님께서 시은이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을 해주었다고.
자신은 원래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나는 시은이에게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그 마음이 참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말해주었다.
"시은이는 정말 태양 같은 사람이네. 주변을 밝게 해주잖아.
나는 아직도 시은이가 태양이라고 생각해.
잠깐 하늘에 구름이 낀 것뿐이야. 구름이 꼈다고 해서 태양이 빛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 구름들은 금세 지나갈 거야. 그리고 태양은 다시 세상을 밝게 비춰줄 거야."
시은이는 내 말을 듣고 눈물을 다시 흘렸다.
자신은 원래 고민이나 힘든 일을 주변에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한테 이렇게 얘기한 경험이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흔치 않다고 말했다.
시은이는 정말 고맙다고,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도움이 되어서, 나의 말을 또 잘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말을 이었다.
"시은아, 오늘 내가 도움이 되었다면 우리 약속 하나만 하자."
"네."
"오늘을 기억하기로 하자. 앞으로 힘들 때 오늘을 기억하기로, 나는 항상 시은이 편이라는 걸 기억하기로 하자.
그러다가 너무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들면 언제든지 나에게 연락해."
"그래도 돼요? 진짜 너무 감사해요. 오늘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응. 그러니깐 시은이도 주변에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씩 건네주기로 하자.
우리 그렇게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가자.
...나는 세상이 따뜻했으면 좋겠어."
"저도 세상이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눈물
많이 울었다.
시은이랑 대화하면서 카렌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건
어렵고 멋있는 몇 마디의 말보다는, 진심을 다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시은이와 카렌이 더 많이 웃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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