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같은 사람
수영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화사하게 빛나는 공원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들어갔다.
나무 벤치에 앉았다.
휴대폰에는 부재중 알림이 하나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눌러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십 분 동안 이모랑 대화를 나눴다.
이모는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하셨다.
인위적으로 꾸며진 공원보다는
길가에 핀 들꽃들과 어지러이 자라난 나무들이,
파란 하늘, 부는 바람, 내리는 비가 좋다고 말하셨다.
나 또한 그렇다고 말했다.
"유진이랑 나는 참 코드가 잘 맞네~
요새 교회를 가서 기도하면 유진이가 1번이야.
가장 먼저 생각나더라. 성현이(아들)보다도 먼저인 거 있지."
"감사하네요. 근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괜찮아. 성현이는 이미 기독교거든."
"이모의 마음 한켠에 제가 자리잡았네요."
"그러게. 책임져(웃음)."
울산에 사는 이모는 새벽마다, 그리고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신다.
그 교회가 꼭 가정 같다고, 왜인지 편하다고 하셨다.
그게 종교의 이유겠지. 외로운 사람이 기댈 수 있는 무언가.
"저는 별에게서, 달에게서, 바람에게서 위로를 많이 받아요.
특히 나무가 제일 좋네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잖아요.
사람처럼 주변의 풀들과 싸우지 않잖아요.
밉보이는 짓을 해도 나무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요."
"그래 맞아."
그렇게 말하고 나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무 같은 사람이 아니구나.
나 또한 사람들을 많이 떠나왔구나.
....
내 마음은 항상 그대로인데.
내 마음은 항상 여기에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걸까.
나는 나무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에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던 걸까.
그저 내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던 걸까.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높은 곳에서 새들을 가까이 바라보고
하늘과 좀 더 가까워지고
더 많은 바람을 느끼고 싶다.
그래.
그건 내 바람이었던 거야.
나는 나무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던 거야.
나는 나무를 흉내 낸 민들레였던 거야.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버리는 홀씨 가득한 민들레.
바위틈에서 피어난 보잘것없는 한 송이의 노란 민들레.
겨울이 오면 시들어버리는
찬 공기 한껏 안아 스스로 몸을 얼려버리는
한 송이의 민들레.
#나무껍질
길을 걸었다.
이름 모를 나무 앞에 멈춰섰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을 나무에게 뻗었다.
나무는 기둥 여기저기에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내 손이 있었다.
습진으로 피부가 벗겨진 내 손이 있었다.
나무도 습진을 앓고 있는 걸까.
가려울까. 괴로울까. 답답할까.
나는 나무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 소리내어 물었다.
나무야 아프니. 어디가 가렵니.
말을 내뱉자 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내 손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픈 걸까. 마음 어딘가가 막힌 듯 괴로운 걸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듬성듬성 껍질이 벗겨진 나무를 어루만졌다.
만약 나무의 마음이 아프다면, 금방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손에 피어난 꽃 같은 습진이 언젠가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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