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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25년

공허

by EugeneChoi 2025. 5. 3.

조금 외롭네.
이 외로움을 한껏 느껴야지.

#연인

연인 관계.
상대방이 나를 너무 사랑할 때
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혹은 그 반대여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그걸 잘 알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연인이라는, 부부라는 약속을 믿고
같은 방향의 가치관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정서적으로 기대고 의지하고
깊은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명이 덜 좋아하더라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축복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잔잔한 호수와 같은 평온한 사랑을 하든
장미꽃 같은 정열적인 사랑을 하든
그 마음의 크기가 비슷하거나 같은 경우는
드물거나 아니면 아예 없을 수도 있겠다.
엄밀히 따지면 100% 같을 수는 없겠다.

마음의 차이.
항상 더 좋아하는 쪽이 아픈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덜 좋아하는 쪽이 이해해주고 달래주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눈에 보이거나 들리는 것이 아니기에,
참으로 모호하기에 사랑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하긴,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산다는 것도
커져버린 마음을 꾹꾹 눌러담고 산다는 것도
참 사람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과거

내가 누군가를 강렬히 좋아했던 마지막 순간이 언제였던가.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해 집착이 되어버렸던 그때는 스무 살이었던가.
상대방의 마음을 역지사지하지 못해 그 사람이 떠났고
나는 그 이후부터 쭉 내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리 좋아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크게 부풀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내 마음이 금방이라도 변해버릴 수도 있기에.
항상 천천히 다가갔고 시간을 갖고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건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다.
내가 조금 빠르면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늦추고
내가 뒤쳐지면 상대방을 늦추거나 내가 속도를 조금 올렸었다.
그렇게 이후의 연애에서는 비슷한 속도로 마음이 커져갔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여전히 실수는 반복되었다.

나와 쉽게 사랑에 빠져버렸던 전 프랑스 여자친구 '마리'
그녀는 너무 빨라서 내가 그걸 따라가지 못했다.
전 브라질 여자친구 '알린'
내가 너무 섣불러서 만남이 시작되었다가
그녀의 속도가 나를 추월하자 나는 그걸 또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상대방의 마음만 커지도록 내버려 둔, 나의 잘못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본능

속도와 마음.
이 두 가지가 다 맞는 경우가 과연 존재할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 세 가지에 대한 마음가짐이 같은 상대가 과연 존재할까.
아마도 나는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스스로 기대를 다 버렸다고 수없이 되뇌이면서도
내 마음 깊은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기대감이 있는 것일까.

그러면 안 되는데. 만약 그런 욕심이 내 마음에 있다면
하루빨리 그것을 버려야 할 텐데.

내가 돌연변이인 이유는 이거라고 생각한다.
'본능'을 거스르는 행동.
좋아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마음인 대로,
내 속도는 내 속도인 대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대하는 나만의 방식대로,
그렇게 본능적으로 살아가면 될 텐데
그 본능을, 어째서인지, 나는 거부한다.

혼자 살아가야 할 운명인 거겠지.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피'가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 지붕 아래 다른 누군가와 살아갈 수 없는 피'가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나 또한 본능대로 살고 있는 것인데.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현재만을 본능대로 살아가는 중인데.
아, 그걸 '대책 없는 놈'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지도 모른다.

 

#더 좋아하는

과연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과의 끝이 결혼이 될 거라는 확신이 생기게 될까.
나 역시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고 하지만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근래 '나를 더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의 차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가 좋아해 주길 바라고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가 사랑해 주길 바랐다.

'마음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바라는 그 자체로도 욕심이겠지.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거겠지.
그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런 경우가 과연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 있잖아.
나를 더 좋아해 주면서도 마음의 차이를 이해하는,
그것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우리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사람.
혹은,
내가 더 좋아하면서도 내가 내 마음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
내 마음이 조금 더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이해해 주는 사람.

참. 이렇게 적으면서도 한숨이 나온다.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럼 받아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이고 아픈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인데
마음이 도저히 내키지 않는다.
아직 내가 사랑에 대해 많이 모른다는 의미겠지.

 

#사내연애

결혼에 대한 갖가지 생각들 속에서, 며칠 전 결혼한 지섭이 형이 떠올랐다.
같은 '삼성' 사람이랑 결혼한 형.
그래, 굳이 따지자면 같은 회사는 아니다.
계열사만 같고 회사는 다르다.

지섭이 형의 결혼식은 내가 봤던 결혼식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비슷한 사람들.
단면적으로 결혼식만 봐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겠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전에 지섭이 형이 초대해 준 저녁식사 자리에서 처음 지섭이 형의 여자친구분을 봤을 때 나는 느꼈다.
그 두 사람이 정말 비슷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축복이다. 그런 상대를 만나는 것도 축복이다.
나도 사내연애를 굳이 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한 번 해봤고, 두 번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섭이 형처럼, 결혼까지 간 사내커플들처럼,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라면
사내연애든 사외연애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상대가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없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마음''이해'라는 것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보다 중요하기에.

... 그럼에도 역시 사내연애는 좀 그렇다.
그들은 사내연애가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역시,
회사 안에서만 살아가는, 회사 밖의 세계는 본 적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너무 미래만을 생각한다.
다가오지 않은 리스크들에 대해 걱정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에 대한 대비'와는 결코 다른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두 사람이 돈이 부족해도 결혼해서 모아나가는 것이 일본의 결혼 문화이다.
그리고 한국은 서로 금전적으로 준비된 상태에서만 결혼을 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들도 연을 맺고 잘 살아간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수만 년 전의 인류들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 그들은 그냥  '잘 살고 싶은 마음'인 거겠지.
하지만 과연 '잘 산다'라는 말의 의미를 본인들은 알고 있을까.
애써 남과 비교하며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도 만족될 수 없는 욕심이라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를까.

하긴.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그게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갇혀버린 한계라는 생각도 든다.
회사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참 다양한 생각들이 든다.
나와 맞는 사람은 이 회사 밖에 참 많겠구나- 싶다.
아니, 계속 언급하지만, 그런 사람이, 그런 여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그래서 서로를 잘 이해하는 동성 연애가 요새 유행인 걸까?(웃음)
빨리 퇴사하고 싶다. 

 

#마음

잠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야겠다.
마음이 아파도 문을 활짝 열고서
바람이 드나들게 두어야 새로운 인연도 오고 가는 법이라지만
그냥 당분간은 혼자이고 싶다.

공허함을 느끼지만, 그것은 연인이 없어서 느끼는 공허함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이 세상에 홀로 선 듯한 공허함이다.
가끔씩은 이 마음의 공허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어떻게 해야 채워지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니,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길이 없는 숲길을 걷는 듯한
어두컴컴한 광활한 우주에 갇힌 듯한 느낌이다.

사실,
아직은 살고 싶은 마음보다 죽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이 마음을 안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 역시 인간이기에 '이해'와 '사랑'을 간절히 바라는 것일까.
나는 과연 인간일까, 아니면 인간이 아닌 무언가일까.

잘 다독여야지. 나를 잘 달래주어야지.
나의 나무를 꼭 안아주어야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가
나의 나무에 기대어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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