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글들, 나에게 말해주고픈 이야기.
친구
이따금씩 그런 생각도 들어요.
진짜 친구는 무엇일까- 하고요.
연인 같은 친구
친구 같은 연인
이런 사이가 존재할까요.
존재한다면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요.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이유에서 존재할 수 없는 걸까요.
사실, 그런 사이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존재들은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여러 복잡한 감정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족과 형제자매들에게서 느끼는 그 감정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
싸라기눈, 함박눈, 진눈깨비 등 다양한 눈의 이름처럼
같은 대상이어도 기준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고
그 기준 또한 생각의 주체에 따라 다른 까닭입니다.
제 마음 속에 걸리는 이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단어는 '도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도덕' 말입니다.
오로지 인간들의 머릿속, 뇌 속, 그 속에서 드넓은 가상세계에서 존재하는 그 '도덕'말입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
그 외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하지 않았던',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무언가'입니다.
그 도덕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요.
그것이 뭐길래 우리의 마음을 억압하는 걸까요.
아니면, 미련한 제가 호숫가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잡으려고 드는 걸까요.
제가 달콤한 이상만을 좇는 나비가 되어버린 걸까요.
제가 이해하고 있는 '사랑'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는 '사랑'이랑 다르다는 사실이
때로는 제 마음을 강렬하게 할퀴어놓기도 합니다.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는 것이
마치 길고 새카만 바닷속을 헤엄치는 듯합니다.
이전에는 모르는 것이 참 많았어도
어렴풋이 형상으로나마 알고 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입니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마음의 표현도 금지되어진 세상.
"애정합니다"
"아낍니다"
"사랑합니다"
인생의 동반자가 아니면
가족이 아니고 친척이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내 신념과 이념을 묵살시키고
그저 이 세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걸까요.
그 누구에게라도 사랑한다고
아끼고 애정하고 건강하고 아프지 말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아픈 마음 어루만져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다면.
백일몽인 줄 알면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세상이었다면.
우리는 덜 아팠을까요.
자유
자유. 자유...
두 글자를 수없이 되뇌인다.
내 삶에서 내가 원하는 건 진정으로 자유가 맞을까.
혹 '도피'는 아닐까.
'여행'이나 '작별'일까.
'해방'이나 '도주', '소멸'
'태양 아래 쌓인 눈', '녹아들어가는 양초'는 아닐까.
어쩌면 이 모든 단어들이
어두침침한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사라짐] 이라는,
전부 같은 의미로 모습을 바꾸는 것은 아닐까.
소멸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오늘따라 그 욕구가 정말 강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오늘이면 용기가 날 수도 있겠다.
내일이면 눈을 뜨지 않을 수도 있겠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다.
나 같은 돌연변이는 사라져 버림이 옳다.
이해
이해.
남들을 이해한다는 것.
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해를 바란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불행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의미를 담는다.
내 스스로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그것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내 스스로도 못 채우는 그릇을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는 것이 가능할까.
미련했다.
멍청했고 비열했고 어리석었다.
불가능한 것을 간절히 바라면
언젠가 [기적]으로 나에게 돌아올 줄 알았다.
언젠가 상처 가득한 마음으로 읽었던 [별의 유언]처럼
진심으로 간절히 두눈 감고 기도하면
나에게도 '행복'의 모습을 한 '이해'가 찾아와줄 줄 알았다.
나는 이래서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폰트를 변경하고 글씨크기를 변경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아직도 그 가능성 없는 기적을 바라는 중이다.
카렌
일본인 친구 카렌에게서 오늘 연락이 왔다.
그녀는 나보다 9살 정도 어린 고등학생이다.
그녀를 영국에서 처음 만났다.
https://eugene98.tistory.com/180
28,Mar,2024 / From. Karen
나의 여동생, Karen.아마 12월쯤에 그녀를 만났나.나보다 9살이 어린 걸로 기억한다.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이다. Dear. 유진Hi, how are you doing??Finally, I passed my test !!I'm going to live in Shod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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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ugene98.tistory.com/186
13,Jul,2024 / From. Karen
내 여동생, 카렌에게서 두 번째 편지가 왔다.고마워, 언제나. To. 유진How have you been?It's getting humid outside, and I noticed that summer comes soon. How about in Brighton?I'm sooo envious you... I saw your greatful trips on Ins
eugene98.tistory.com
우리는 이따금씩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애틋한가 보다.
그녀는 나를 '兄さん'(오빠)라고 부른다.
내가 자기한테 없는 친오빠 같다고.
그래서일까, 일 년 중 몇 번씩이나 일본에서 손 편지를 보내준다.
다행히도 그녀는 작년에 생긴 남자친구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그녀에게 종종 해주곤 한다.
힘든 가정환경에 그녀가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처럼 아프지만은 않기를, 반복해서 기도할 뿐이었다.
은연중에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즈음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말에는 또 어떤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거기에는 어떤 악한 마음이 담겨 있길래
대상을 가려가면서 이용되어지는 것일까.
그럼에도 여러분.
P.S.
여러분.
사랑합니다.
진심으로요.
이 한마음 다해 기도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애정합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올 때, 세상이 견딜 수 없도록 시릴 때
이런 제 마음이 당신에게 따뜻한 이불이 되어줄 수 있기를
저의 깊은 눈물이 당신에게 닿아 차갑게 얼어버린 마음 녹여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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