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일주일 만에 병원을 찾았다.
불과 일 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병원 내부에는 새로운 이벤트가 있었다.
[... 병원 측의 부당 대우와 오래된 의료시설 등으로... 파업을 하기로 ...]
의료진이 부족하다나, 의료 시설과 소모품 등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나.
#어머니
어머니가 계신 제2중환자실은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랑 같았다.
바뀐 것이 있다면 어머니 몸에 새로 삽입된 또 하나의 장치.
피를 빼내 노폐물을 거른 뒤 다시 체내로 투입시키는 투석 장치 같았다.
위생용 가운을 걸쳐 입었다.
"어머니, 저 왔어요.
둘째 왔어요~"
한껏 신나 보이는 듯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
어머니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
손은 차가웠다.
'지난번엔 분명 손이 따뜻했었는데..'
나는 두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손이 올라가 팔꿈치 있는 부분까지 마사지를 했다.
팔은 퉁퉁 부어 있었다.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괜찮으세요?
유진이 왔어요. 어머니, 들리세요?"
어머니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래, 이제 일어나셔야지. 저랑 이야기 한 번 해요.
제 목소리는 들리시죠? 저 유진이예요."
잠에서 깨기 전, 잠결에 들리는 말처럼 들릴까.
"어머니랑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언제쯤 일어나시려나?
무슨 꿈을 꾸고 계세요?"
어머니의 볼에 손을 갖다 댔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처럼, 볼 또한 차가웠다.
"왜 이렇게 차가워요. 감기 걸리시겠네.
이불 잘 덮고 주무시죠? 이불 치워버리면 안 돼요."
팔을 주무르던 것을 멈추고, 종아리를 만져보았다.
피부와 뼈, 아주 조금의 살만 느껴졌다.
"어머니 배고프세요? 뭐 드시고 싶어요?
제가 나가서 사 올게요.
어머니 저번에 곱창 좋아하셨잖아. 그거 사 올까요?
아니다, 좀 매우려나? 음.. 그러면 김밥!
같이 김밥 먹어요."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의식
뇌의 혈관이 막혀서 뇌가 기능하지 않는 건 어떤 느낌일까.
두통이라도 있을까.
생각은 하지만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걸까.
듣고 느끼지만 감정을 담당하는 부위가 망가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걸까.
몸에 가려운 곳이 있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마약을 했을 때처럼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일까.
아니면, 이미 죽은 걸까.
#어머니
어머니의 손을 펴보았다.
손바닥에는 각질이 많이 일어나 있었고 자르지 않은 손톱도 길게 자라 있었다.
'혹시 무좀은 아닐까. 그렇다면 많이 가려우실 텐데'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엄지 손가락의 끝 또한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걸까.
시선을 어머니의 얼굴로 옮겼다.
반대편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머니"
어머니가 고개를 이전보다 강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기처럼 느리고 행동범위는 좁았다.
"이제 일어나셨네. 정신이 좀 들어요?
아, 혹시 제가 볼 만지니까 아프세요?
그럼 만지면 안 되려나..."
입술 사이로는 거뭇거뭇 마른 핏자국이 보였다.
아마 건조해진 입술이 수도 없이 붙었다 떨어지면서 갈라진 탓이겠다.
그때,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혹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세요?
[네] 면 몸을 움직이고 [아니요] 면 가만히 계셔요.
어디 아프세요?"
어머니는 미동도 없었다.
"배고프세요?"
어머니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럼 이제 집에 가요.
[아롱이]랑 [다롱이] 봐야죠. 엄마 기다리고 있을 텐데."
#강아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강아지를 좋아하셨으니, 지금까지 키웠던 강아지 이름을 불러보면 어떨까- 하는.
"어머니, [설공이] 기억나세요?"
[설공이]는 십 년 전에 죽은 아이다.
"[보름이]랑 [칠칠이]도 기억나시려나?"
[보름이]와 [칠칠이]도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준이], [아지]는요?"
17년 전, 내가 9살 때 강아지 세 마리가 태어났다.
어미는 하얗고 작은 강아지, [보름이]였다.
묘법연화사에서 우리 삼 형제는 아기 강아지 한 마리씩 데리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동이]와 [준이]와 [아지]는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동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준이는 11년 정도 살다가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지는 마지막까지 오래 살았었다.
어머니도 다 기억하실까.
#인사
"어머니. 면회 시간 다 됐네, 또 보러 올게요.
아프지 말고 잘 계세요.
이거 시간이 좀 짧다, 그렇죠?"
"..."
나는 어머니의 볼에서 손을 뗐다.
마사지를 하던 손도 내려두고 이불로 고이 덮어두었다.
불투명한 비닐 재질의 위생가운을 벗어 휴지통에 넣었다.
"어머니, 저 진짜 갈게요."
아. 기억났다.
이 말을 정말 많이 했었다는 걸.
9살 이후, 아버지 몰래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
집에 늦게 들어가면 아버지가 우리들을 의심했기에 집에 빨리 들어가야 했다.
엄마랑 헤어지는 것이 싫었던 어린 나는 엄마가 머물렀던 묘법연화사를 떠날 때마다 자주 뒤를 돌아보곤 했다.
나 : 엄니, 저 진짜 갈게요.
형 : 안녕!
동생 : 안녕~
어머니 : 그래. 조심해서 가.
그땐 어머니가 대답을 해주셨다.
우리 삼 형제는 몇 걸음 못 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마냥 작은 손을 흔들었다.
형 : 진짜로 안녕!
나 : 엄니~ 저 진짜로 갈게요.
동생 : (손을 흔든다)
어머니 : 그래, 또 와.
어머니는 내게 한없이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렇게 면회 시간이 끝나간다.
눈물을 닦고 병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어머니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곧장 잰걸음으로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눈 뜨셨네.
이제 집으로 가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
"어머니. 제가 가지 말까요?
그냥 회사 가지도 말고 여기서 어머니랑 있고 싶은데.
어머니도 그렇죠?"
#부모
다시 수원으로 왔다.
잠시 '부모'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모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우리를 슬프게 만들까.
부모라는 것이 과거에 자식들에게 악독한 짓을 하여도
왜 나라는 존재는 그들을 아직도 부모로 여기는 걸까.
이것 또한 사회가 심어둔 사회의 마음인 걸까.
아니면 그저 본능, 진화의 산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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