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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2024-10-22 (화)

by EugeneChoi 2024. 10. 23.

#연락

오늘 오후 두 시경, 동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침착해 보이려 애쓰는,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인니형.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올 수 있어?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대"

"아, 응. 지금 바로 갈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업무 중이던 컴퓨터 본체 전원 버튼을 눌러 대충 끄고 짐을 챙겨 회사 밖으로 나왔다.

병원까지는 두 시간이 걸렸다.

 

#상태

"어떻게 오셨어요?"

"어머니 소식 듣고 왔어요. 김숙희 님이에요"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 상태가 괜찮아졌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갑작스럽게 혈압과 산소 포화도가 감소했다고 한다.
다행히 간호사님들이 조치를 해주어서 위기를 넘겼다고.

하지만 의사는 말했다, 이런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어머니의 팔과 다리는 이틀 전보다 더 부어있었다.
몸에 물이 차있다고 한다.

움찔거리는 신체 반응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동생

병원에서 나온 뒤 형이랑 동생이랑 저녁을 함께 했다.

 

"내가 배달 일을 하잖아. 돈이 이렇게 쉽게 벌릴 줄은 몰랐고.
어머니가 건강했을 때 내가 돈을 벌었다면 어땠을까"

동생이 말을 꺼냈다.
그제서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어머니에게 신경을 못썼는지를.

 

"우리가 월세방을 하나 얻어서 거기에서 어머니를 간호했어도 됐을 텐데.
그 강아지 많은 더러운 집에서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맞는 말이다.
나도 돈을 모으기에 집중하기보다 어머니 건강에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랬더라면 어머니는 지금 덜 아플 수 있었을까.

그깟 돈이 뭐라고. 그깟 부자 되는 게 뭐라고.
가족이나 친구보다 소중한 게 뭐길래, 그렇게 돈에 집착했던 걸까.

 

"내가 슬퍼할 자격이 있을까.
어머니한테 해준 것도 많지 않은데, 슬퍼해도 되는 걸까"

동생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는 건 동생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조금 더 자주 찾아뵀더라면.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셨을 때, 조금이라도 신경을 더 썼더라면
당뇨식을 먹고 싶다고 하셨을 때,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냥 사드렸더라면
전화로 보고 싶다고 하셨을 때, 다 제쳐두고 어머니를 보러 갔더라면
눈이 실명되셨을 때, 영국에서 한국으로 바로 돌아왔더라면

그럼 지금 어머니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

 

 

"영국에서 영어 열심히 배워... 엄마 걱정 하지 말고..."

"...네"

'어머니의 속마음은 [너를 많이 보고 싶어, 유진아] 였을 텐데

공부가 아닌 어머니를 만나는 것을 선택했더라면,
이때 [네]가 아니고 [한국으로 갈게요]라고 말했더라면
어머니의 건강이 기적처럼 나아졌을까-.'

하는.
그런 끝이 보이지 않는 후회만 하는 중이다.

 

 

#추억

추억이라.
오늘따라 그 단어가 많이 아프게 느껴진다.

엄마와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이 이젠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언제든지 볼 수 있었던 사람'
이제는 '기억 속에서 꺼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추억이라.
이거 꽤나 아픈 단어구나.

 

우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우리에게 단호하고 엄했다.
하지만 내가 9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미소가 따뜻하고 인자한 사람이었다.

삼 형제와 항상 여행하고 싶다고 말하시는, 아니, 말하셨던
삼 형제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하셨던
삼 형제와 이모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말하셨던
다 필요 없고 삼 형제랑 단 넷이서 살고 싶다고 말하셨던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한 어머니였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얼마나 아프고 추운 삶을 살아오셨을까.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서 매일을 맞고 살아오신 몸.
수많은 인격모독과 상스러운 욕을 들어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

모든 과거들이 모여 당뇨를 만들고, 합병증이 하나 둘 생겨
그런 성치 않은 몸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난 유령 마을에서 TV를 보면서 강아지들과
방한과 방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매일 일을 해도 줄어들지 않는 강아지를 보살피는

아들 셋이 있지만 매일 볼 수도 없는 삶.

얼마나 힘드셨을까.

옆에서 같이 살아온 나라고 해도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천사

"나는 그때가 가장 슬펐어. 엄마 눈이 실명되었을 때, 나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거든.

[유진아,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겠어.. 앞이 보이지 않아.]

그때, 마음이 정말 아팠어"

 

"난 병원에 좀 화가 나. 내가 중환자실에서 엄마 간호할 때 엄마가 가끔씩 춥다고 했거든.
그래서 내가 간호사들한테 담요 좀 달라고 했는데, 그럼 체온이 올라가서 위험하다면서 주지 않았어.

그런데 엄마가 의식 잃고 다시 중환자실로 갔을 때, 그때는 담요가 덮여 있더라?
그거 보고 참. 진작에 주지. 진작에 좀 주지..."

"..."

 

"있잖아. 엄마가 나보고 천사래.
인니형도 영국에 있고, 형아는 자주 오지 않으니까.
내가 항상 엄마 옆에서 병간호를 하니깐, 나보고 천사래.

너무 착하다고."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비 오는 날이 고마운 적은 오랜만이다.
흐르는 내 눈물을 가려줄 수 있으니.

눈물을 닦고 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어린 두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슬퍼해도 돼. 넌 그래도 돼.
내가 미안해.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서"

"아니야. 해외에 있었으니까."

 

 

#집으로

수원으로 왔다.

오는 길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여자친구인 알린이 통화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가볍지 않은 비를 맞으며 길을 걸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더 나올 눈물이 있다니.

 

#회사

내일 하루를 쉬기로 했다.
동생과 어머니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엄마를 보고 싶다.

엄마 얼굴을 보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엄마

다시 또 눈물이 흐른다.
좀 많이 아프네.

엄마, 너무 보고 싶어.
엄마 미안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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