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인간은 경험으로 배운다.
유전자에 저장되어 있는 본능도 있지만,
특히 인간의 뇌라는 존재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적합하도록 성장한다.
그래서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평소에 잘 귀담아듣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일이 터지고 나서야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고 나서야
그제야 깨닫는다.
그제서야 눈물을 흘리며 배운다.
그러니 후회해도 괜찮다.
누군가를 잃어보는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슬퍼하는 것도 처음일테다.
더욱이, 나는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으니,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잘하자-.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경험으로 배우는 것은 달지 못해 쓰다.
#누군가에게 잘한다는 것
왜일까.
충분히 행복했던 기억도 많은데,
왜 엄마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나는 걸까.
엄마가 나에게 고맙다고도 수없이 말했지만
왜 나는, 엄마에게 잘 못해주고 자주 찾아가지 못했던 것만 생각나는 걸까.
모든 관계의 끝이 이와 비슷하다면
어쩌면 우리가 슬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상대방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더라도, 혹은 강렬하게 사랑했더라도
그 끝이 항상 눈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라면,
애초에 '관계'라는 것이 눈물과 슬픔으로 맺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삶에서의 관계는 그렇다.
'눈물이 없는 관계였라면, 그건 삶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A heart that's broke is a heart that's been loved]
[가슴이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받았다는 뜻이야]
애드 시런의 [Supermarket flower]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밤이다.
#가족
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에 누군가에게 줄 수나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어머니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나 또한 어머니를 사랑했다.
내가 받은 사랑과 내가 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가족 간의 사랑]
전화를 주시고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말하시고
여행을 가자고 하시고 같이 쇼핑을 하자고 하시고
과일을 깎아주시고 밥을 지어주시고
아들이 언제 올지 몰라 계절에 맞는 옷을 언제나 준비하시고
옛날이야기를 하며 함께 과거를 추억하고
잘 쓰지도 못하는 스마트폰으로 사랑스러운 이모티콘을 보내시고
헤어질 때마다 "한 번 안아보자" 말씀하신
어머니의 사랑.
아무런 이유 없이 만나러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고
오늘은 뭘 드시고 싶어 하실까 고민하다가 이것저것 바리바리 사 온 음식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어느새 방에 쌓여버린 먼지를 닦고 설거지를 하고
마당을 청소하고 빨래를 널고
따스한 햇살 비치는 방바닥에 누워 같이 낮잠을 자고
같이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힘들었겠다' 공감해주며
손을 잡고 엄마를 안아드렸던
나의 사랑
#어머니
오늘도 면회를 다녀왔다.
"어머니 오른쪽 엄지 발톱이 빠지셨어요."
"네?"
치료 도중 체위를 변경하다가 발톱이 침상에 걸려 빠졌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잘 좀 해주시지.
병원 간호사들이 어머니를 너무 대충 다루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어머니의 손가락은 점점 보랏빛으로 썩어간다.
자르지 못한 손톱이 길어졌다.
손은 부어있고 단단하다.
혹시 아프진 않으실까.
얼굴의 붓기가 저번 주보다 많이 빠졌다.
어머니의 얼굴도 약간의 편안함이 보인다.
볼에 손을 가져다 대면 입술을 움직이신다던지 하는 반응이 있다.
얼굴 쪽에는 감각이 아직 살아있나 보다.
어머니가 얼른 괜찮아지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같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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