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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2024-10-09 (수) 연명수술 반대

by EugeneChoi 2024. 10. 10.

#어머니

어머니를 찾아뵀다.

영국에서 돌아온 이후 처음이었다.
그 장소는 제2 중환자실이었다.

밥을 네 달째 드시지 못해서인지 몸이 야위어있었다.

'밥 좀 잘 챙겨 드시지'

 

간호사는 내게 말했다.

"환자분께서는 격리가 필요한 상황이라, 위생가운을 입으셔야 해요"

어머니로부터 두 침대 옆에는 의식이 없으신 할머니 한 분이 누워계셨다.
그때 잠시나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 그래도 덜 창피하셨겠네. 외롭진 않으셨겠네.'

 

#어머니

"어머니, 저 돌아왔어요."

"..."

"어머니."

"..."

어머니는 눈을 감고 계셨다.
편해 보이지 않은 표정으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언제부터 흐른 걸까, 어머니의 눈 주위로는 눈물이 가득했다.

 

"둘째 돌아왔어요. 영국에서 돌아왔어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으셨다.
몇 초에 한 번씩 신체의 특정 근육을 움찔움찔 움직일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퉁퉁 부은 손을 어루만졌다.

 

"어머니 말대로 영어공부 많이 했어요.
영어 많이 배웠어요."

어머니의 눈이 처음 실명됐을 때,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 죽어가던 목소리를 냈던 어머니.

"영국에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해... 엄마 걱정하지 말고..."

"... 네."

 

나는 울고 말았었다.

 

#어머니

어머니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는 몇 번이고 볼을 쓸어내렸다.
여전히 살아있다고 외치는 듯이, 볼은 따뜻했다.

하지만 목과 목에 삽관된 호스가,
몸속에 들어간 수많은 의료장비들이,
나온 한쪽 뇌를 잠식해 버린 곰팡이들이 내게 말했다.
여전히 엄마는 죽어간다고.

그래도 다시 한번 불러본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제가 왔어요.

... 저 왔어요."

 

그때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주취의분께서 들어오실 거예요.
동의서 작성해야 할 거예요. 막내 아드님께 들으셨죠?"

 

#어머니

심정지가 왔을 때 연명치료를 한다라.

동생은 반대했다.
가족들도 반대했다.
나도 반대했고 형도 반대했다.

하지만 그전까지 할 수 있는 건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가끔씩은 어머니가 눈을 뜨셨다고 했다.

"눈을 뜨셨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 어머니가 자의로 눈을 뜨시긴 했어요.

움직임을 담당하는 부분에는 아직 손상이 없기 때문에 눈을 뜰 수 있지만
질문에 대답을 한다던지, 말을 듣고 이해한다던지 그러진 못하세요.

아쉽게도, 그런 부분에 반응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의식이 돌아왔다고는 할 수 없어요"

 

뇌 기능이 반정도 멈춰버린 어머니.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어떤 행복한 곳에서 어떤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계실까.
얼마나 행복한 꿈을 꾸시면 눈물까지 흘려가시며
지금까지 깨어나지 않으시는 걸까.

어떤 재밌는 걸 하고 계시길래
현실에서까지 몸을 움찔거리며 신나 하시는 걸까.

 

혹시라도 내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실까 봐
일어날 리 없는 기적이 간절히 일어나길 바라며
수십 번은 더 불러본 그 단어.

"어머니.
어머니, 저 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

"어머니, 둘째 한국에 왔어요.
괜찮으세요?"

"..."

"어머니."

"..."

 

끝내 참고 있던 눈물이 나오고야 말았다.

 

가끔은 길을 걷다가 생각한다.
70, 80 나이 드신 분들도 저렇게 지팡이 짚고 걸어 다니시는데
왜 이제 65인 우리 어머니는 안 아픈 곳이 없을까.

왜 우리 어머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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