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6
동생이 보내온 사진.
어머니는 살구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계시고 그 주변으로 십여 마리의 강아지가 지키듯 앉아있다.
곰돌이-갈색 강아지 이름-는 진작에 오른쪽 눈에 백내장이 찾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괜찮았다.
2024-03-27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아니, 예상하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이제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2024-04-03
상태가 악화되어 어머니는 양안이 실명되었다.
오른쪽 눈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왼쪽은 회복되더라도 빛의 밝기 정도만 확인 가능하다고.
사실, 이것도 기적이 일어나야 가능할 수준이라고 한다.
당뇨로 인한 면역 저하로 축농증이 발생했고 그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혹은 감염으로 인한 축농증.
일반인의 경우 위험하지 않으나 면역력이 낮은 어머니의 경우 상당히 위험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축농증과 실명의 관계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눈과 눈 사이의 지점에 염증이 쌓여 혈관이 막히기 시작했고
결국 안구로 가는 혈관도 막히게 되었다.
혈관이 막히면 조직이 괴사된다. 그것이 실명의 주원인이다.
그리고 혈관에 혈액이 없을 경우,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망 확률이 30-50%라고 한다.
2024-04-04
염증을 두면 혈전이 심해지기에 결국 오후에 긴급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다.
수술의 목적은 코 위쪽, 미간에 발생한 부비동염 염증을 제거하는 것이다.
뇌나 안구 쪽 뼈, 눈물샘 등 주변 기관들이 약해져서 잘못 건드리면 뼈가 부서지거나 할 수도 있다고.
의사조차도 이번 수술은 긴장되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하는 수술이라고 말했다고, 동생은 말했다.
동생은 [안와 봉와직염 MSD 매뉴얼]을 보내왔다.
그 매뉴얼에는 보기 불편할 정도의 염증 증상의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동생은 그 매뉴얼에 담긴 모든 증상이 어머니에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도 어머니한테는 그렇게 말하지 말고.. 운이 좋으면 눈이 보일 수도 있다고. 라고 말하는 게 좋겠지?"
*
어머니는 한두 시간 간격으로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동생이 간병인으로서 어머니 곁을 지키는 중이다.
진통제 한 번 달라고 할 때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몇 번째인지 매일 기다리고.
달라고 말한 후에 바로 주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 자체가 답답해 뒤지겠다.
동생은 답답한 병원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이후 우리 삼 형제는 간병인 고용에 대해 의논했다.
하지만 비용 문제로 결정이 쉽지 않았다.
*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유진아. 잘 지내? 엄마 눈이 너무 아프다. 너무 아파...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
동생은 수술 후 다시 절로 다시 이동해야 할 어머니에 대해 걱정했다.
화장실 이동과 샤워가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방을 나가기 위해서는 서너 개의 큰 계단을 넘어야 했다.
"계단들을 없애고 싹 다 평지로 바꿔야 하나. 근데 이게 보통 일일까.
뒷마당에 집을 지어버려? 기울어지지 않도록 기초공사 확실히 하면 괜찮을까.
화장실 겸 샤워실 설치하면 어머니 혼자서도 생활 가능할 듯?
근데 거기 땅이 다 연탄밭인데, 공사 비용도 만만찮을 듯. 한 오백 나오려나.
....."
2024-04-22
동생은 이따금씩 장난스럽게 말한다.
"어머니가 곰팡이 주사 맞고 있는데 이게 신장 수치를 떨어지게 만들어.
그래서 먹는 곰팡이약으로 변경하려고 하는데. 이게 비급여야.
하루에 두 알, 한 달이면 60알. 한 알에는 8만 원.
요양병원도 알아보는데 이것도 비용이 만만찮아.
다 합쳐서 한 달에 약 800~900만 원 들려나.
인생이 약간 퀘스트 같네.
1. 간병비를 모으시오.
2. 약값을 모으시오.
3. MRI 값을 모으시오."
"우리 셋이 돈을 모아도 안되네 이건. 이게 맞나."
*
뇌수막염으로 뇌척수액을 뽑았다고 한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약을 먹어도 집이 더럽고 혈당 조절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맞는 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혈당 조절인데 그게 되질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아무 음식이나 사 오시는 스님, 부처님 가피력으로 금방 나을 거라고 말하시는 어머니.
우리는 그저 받아들였다.
어머니께 화를 냈어야 할까. 어떻게든 당뇨 조절을 하게끔 했어야 했을까.
과연 그렇게 했다면, 이 글을 쓰는 지금 어머니는 괜찮았을까.
엄마는 머리와 눈, 치아, 왼쪽 얼굴 부분이 아프다고 한다.
원인은 곰팡이균이 얼굴 주변 곳곳에 퍼져있기 때문이라고.
2024-05-03
부비동 염증 제거술이 진행된 후 염증 수치가 낮아졌으나, 원인 모를 이유로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MRI검사와 여러 부속검사를 받은 이후 염증 재발이 의심이 확인되었다.
2차 제거 수술로 들어갔다.
주 병명은 '코대뇌털곰팡이증'
이 병은 최대 5번 이상까지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앞전, 동일질병 환자는 3개월을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3개월 입원 후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그 반대인지는 우리는 모른다.
*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동생은 어머니가 퇴원 후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있다.
"아빠 주소가 어떻게 됨?"
"동아불암아파트 OOO동 OOO호. 왜?"
동생이 단체 메시지를 보내왔고, 형이 대답했다.
"엄마 집, 롯데캐슬로 신청하려 하는데 거의 바로 옆집이네.
ㅋㅋ끈질긴 인연이네"
이 악연은 누구 한 명이 죽어야 끝이 나는 인연인가 보다.
2024-05-12
나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고,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한 달 전보다 괜찮았다.
"시간을 알 수가 없네. 앞을 볼 수가 없어"
어머니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없는 슬픔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울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2024-05-22
이제 곧 퇴원한다는 이야기를 동생에게 전해 들었다.
동생은 대학교를 잠시 그만두고 배달 일로 생계비를 버는 중이다.
다행히도 엄마 수술비는 긴급 치료비였나. 나라에서 지원을 받았다.
형과 동생은 엄마가 지낼 만한 장소를 알아보는 중이다.
다행히도 저렴하게 월세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있는 듯하다.
나라에서 지원해 줘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한국에 돌아갈 때 엄마를 볼 수 있을까.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
"엄마 약값, 사실 한국 돌아가서 월세 보증금 내면 돈이 될지 의문이야."
"내가 좀 더 벌어서 지원해 줄 수 있으면 해 줄게. 이론상."
"말이라도 고맙다. 근데 그냥 엄마 약 사는 데 보태."
"하루 15만 원, 30일 일하면 450. 여름이라 비 오니까 더 벌 듯?"
동생은 배달일을 시작했다.
어머니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나도 때려치고 배달이나 할까. 하다 뒤지면 뒤지는 거고."
"나중에 우린 뭘 하고 있을까."
"글쎄. 콩국수 먹고 있겠지. 콩가루 집안이니."
"콩국수 못 참지. 굵은소금 야무지게 쳐서 호로록."
가끔씩 장난스럽게 농담도 한다.
"좆같은 콩가루, 우리가 일으켜보자고. 우리 세대부터 시작이다."
"이대로 소멸할 듯."
"애 낳으면 죄악이니라."
2024-06-07
"엄마 뇌경색으로 중환자실로 갔음. 뇌에 혈관 막히는 거.
당뇨 때문인지, 곰팡이균 때문인지, 원인은 모르지만, 두 가지 경우 대비해서 치료 중.
불러도 의식 없고 일단 누워있어."
[실명 -> 곰팡이 감염 -> 뇌경색]까지 2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 가기 전에 엄마가 죽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씩 든다.
혼자 숨을 쉴 정도는 되고,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기도삽관으로 호흡해야 한다고 한다.
뇌혈관이 범위적으로 막혀있어서 완치는 어렵다고 한다.
2024-06-21
뇌 쪽에도 곰팡이균이 침투해서 대뇌전두엽으로 가는 혈관이 좁아졌다고 한다.
뇌 쪽이라 수술이 불가능하고 곰팡이균을 억제하는 약을 먹으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돈 필요하면 얘기해"
"여유가 좀 생기나?"
"몇백만 원처럼 많이는 안되고. 주택청약 깨는 거라 800 정도이긴 해."
"나도 다음 달부터는 돈이 모일 수 있어."
"일단 돈 필요하면 말하고. 도와줄 수 있을 때는 최대한 도울게."
2024-06-21
여전히 의식이 없다.
동생이 어머니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새 늙으셨네.
"의식이 언제 돌아올지는 몰라.
불러보면 발은 꿈틀꿈틀하고, 손을 잡아도 반응은 없더라.
발의 움직임은 자동반사 느낌이야."
동생은 말을 이었다.
"신경과 교수한테 들었는데, 곰팡이균이 뇌까지 영향을 미쳤을 경우 사망률은 90퍼센트 이상으로 통계가 있다고 하네."
"확률이 높네."
"당장 뇌경색으로 죽는 건 아니지만, 뇌경색 합병증으로 죽을 수 있다고 해.
현재 약이란 약은 전부 사용하고 있어. 예후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라고 하시네."
2024-06-25
뇌에 가장 큰 혈관 세 개가 있는데 그중 두 개가 곰팡이균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막혀있는 상태야.
항진균제를 아무리 써도 치료가 되지 않고 약 이외에는 조치를 할 수 없어.
동생이 말했다.
2024-07-01
아롱이가 죽었다.
엄마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작은 갈색의 암컷 강아지, 아롱이가 죽었다.
폐에 물이 차있었다고 한다.
어떤 봉사단체에서 아롱이를 화장한 뒤 유골함에 담아서 준다고 했다.
먼저 하늘로 가서 어머니를 반기려는 마음이었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상상만 한다.
2024-08-13
어제 MRI 찍어서 병원에서 전화 왔는데 뇌경색이랑 곰팡이감염증이 더 심각해졌다고 함.
지금은 엄마가 자가호흡이 어느 정도 가능해서 다행인데,
뇌 기능이 더 손상되어서 자가호흡이 아예 안되고 기관삽관해서 기계의 도움으로 숨 쉬게 되면
그러면 의미 없는 시간 연장만 되는 거라고 하네.
동생이 말했다.
곰팡이 감염으로 뇌로 가는 혈관이 막히고 염증이 발생했다.
신경과 교수와 상의하여 경련약을 계속 복용하기로 했다.
경련약은 의식 저하의 원인 중 하나인 뇌경련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간 수치가 상승하여 항생제 사용은 중단되었고, 상태가 악화되어 수술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이다.
곰팡이균이 혈관을 타고 뇌경색을 진행시키는 중이다.
항진균제를 쓰고 있으나 이미 막혀있는 혈관으로는 약이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이다.
강도가 집에 침입하여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가족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위협하는데,
잠겨있는 문으로 경찰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시간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한국으로 갔었어야 했다.
2024-09-01
폐기능이 나빠져 목에 구멍을 뚫고 기관삽관으로 호흡을 도움받기 시작했다.
뇌기능이 많이 손상됐고 상태가 호전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평생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고
죽기 전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옆에서 지켜봤는데.
눈 잃고 정신 잃고 한 번에 다 망가져버리는구나."
2024-09-17
어머니 한쪽 폐가 찌그러져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해.
출혈도 있어서 오늘 내시경으로 원인 파악한다고 하네.
심각해지면 저산소증으로 사망할 수 있대.
동생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지금에서라도 한국으로 갔었어야 했다.
죽음에 한 걸음 가까워졌나, 엄마.
어떤 느낌이야. 의식이 없다는 건.
나한테 말해주라.
언제나 그랬듯, 눈을 뜨고 웃으며 내 이름을 불러주고
의식이 없었던 때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설명해 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미안해.
2024-10-06
한국에 도착했다.
"어머니 심정지가 왔을 때 생명 연장 치료를 할지 말지..."
어머니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피부로 와닿았다.
#죽음
누군가 그랬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이라고.
그래서일까, 나는 조금 더 자유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내가 지켜야 할, 신경 써야 할 무언가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 느낌.
그러면서 동시에 내 일부분이 사라져 가는 아픈 느낌.
그게 이별이겠지.
부모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삼촌이나 사촌.
이제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이 황량하고 드넓은 우주에 홀로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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