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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창작/어머니의 묘한 삶, 묘연사

2013년 화재 그 후... (2020.08.16.)

by EugeneChoi 2024. 12. 29.

 언 몸이 조금 녹으시는지 그 자리에 앉으신 채 고개만 숙이시고 졸기 시작 하시기에 깨우지 않고 뒷집으로 가서 작고 예쁜강아지들 보름이 이슬이 아라 설공이 아공이 귀여운 사미타 여섯마리 이부자리 먼저 챙겨 주고 방바닥이 따뜻해서 방에서 손을 녹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10분쯤 지나서 정신 차리고 얼른 일어나 대사님 계신 방으로 갔다. 대사님은 그대로 졸고 계시는데 큰 상 앞 TV 주위 방 구석 벽에서 불이 벌겋게 훨훨 타고 있었다. 순간 놀라면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소화기도 어디에 있었는지 전화기가 어느 방에 있었는지 내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머리속이 하얗기만 하고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생각나기를 기다려서 전화기나 핸드폰을 찾아 손에 쥐고 119에 전화 하기에는 너무 여유가 없는 급박한 순간이었다. 먼저 대사님부터 깨우는데 너무 곤히 잠이 드셔서 깨지를 않으신다.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 날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오래된 벽지가 여러 겹으로 바싹 마른것이라 불은 순식간에 방 한 쪽 벽을 다 태울 것 같아서 얼른 부엌으로 내려가 수도 꼭지를 틀고 연결된 호수를 들고 벽을 향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불길까지 호수물이 잘 닿지가 않는다. 그런데다가 앞에 냉장고가 가로 막혀 있어서 불타는 벽까지 물이 잘 닿지를 않아 호수를 잡아 당겨 보았더니 물이 조금 나오다가 끊겼기에 뒤 돌아 보니 고무호수가 수도꼭지에서 빠져 버린 것이다. 다시 연결하려면 어두운데 드라이버를 찾을 수 도 없고 연결할 그럴 시간도 없다. 뒷집 강아지들 집 밖으로 뛰어 나가도록 대문 열어 주러 가야 하는데 불길이 너무 세서 넘어 갈 수도 없고 넘어 간다해도 다시 되돌아 오기엔 이 불길 속에선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이 되어 대사님부터 얼른 밖으로 모시고 나가기로 하고 대사님을 부르고 흔들고 했지만 깨어 나지를 않으신다. 날씬하신 법체가 어찌나 무거운지 잘 끌려 오지를 않으신다. 

 스님! 스님! 제발 눈 좀 뜨세요 방에 불났어요 ! 애타게 깨우면서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도 도대체가 깨시지를 않으신다. 그 순간에도 나는 또 결정을 해야만 했다. 대사님을 끌고 부엌문으로 나가야 할지 어디로 나가야 할지 생각하니 뒷문 쪽은 문턱과 올라 가는 계단이 있어서 너무 힘들것 같아 부엌문을 택해 대사님을 끌고 부엌방 문으로 나가기로 하고 계속 대사님을 깨우면서 잡아 끌기 시작했다.

 대사님을 끌고 문지방을 내려 와서 또 높은 한 계단을 안간 힘을 다해서 대사님을 끌고 털석 콱! 하고 내려와 부엌 바닥까지 나왔다. 방 안에서는 이미 불은 활활 타고 그 연기는 마치 사나운 북서풍에 몰려 쏟아져 나오는 흑구름처럼 부엌 천정을 꽉 메우기 시작했다. 매케하고 시커먼 독구름 같은 것이 숨을 잘 쉴 수 없게 하지만 나는 계속 대사님을 부르며 깨워야 했다. 그래도 대사님은 깨지를 않으신다. 도대체 어쩜 이러실 수가 있을까? 다시 대사님을 끌고 중간 문턱으로 향하려는데 방에 불길이 천정을 다 휩쓸고 법당 쪽을 향하면서 정전이 되고 사방은 흑구름과 함께 캄캄 암흑이 되어 한 발짝도 내디디기가 어려웠다. 

 그 순간 아! 그 막연함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기만 하다. 그 순간 법당 벽이 터지면서 활활 타는 불길이 몰려 나가면서 시커먼 연기 사이로 순간 순간 앞이 비춰질 뿐이었다. 그 불길의 빛에 바닥에 계신 대사님을 어서 끌고 나가야 했다. 불길은 확! 확! 거리며 부엌문으로 쏟아져 나오고 불 붙기 쉬운 부엌 나무천정으로 번져 시커멓고 긴 판자쪽들이 떨어 지려고 덜렁거린다. 불 붙은 것이라도 머리 위로 떨어질까봐 대사님을 붙잡고 무조건 끌어 당기며 법당 옆문 쪽을 향했다. 법당 천정속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 10여마리가 추울까봐 피워 놓는 2구6탄 난로 옆 좁은 통로를 지나 가는데 이럴떄는 무엇이 그렇게도 걸리는게 많기도 하는지 대사님 다리가 걸려 잡아 당기면 팔이 또 걸리고 목을 잡아 당기기면 발이 또 걸리기도 하고 허리춤을 잡고 당기기도 하면서 겨우 법당 옆문 앞 까지 나왔다.

 그래도 대사님은 꺠어나지를 않으신다. 아예 코를 고신다. 도대체 어쩌면 이러실 수가 있단 말인가? 불 난리에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러실 수가 있으신 걸까? 잠든 대사님을 냅 두고 얼른 법당 옆문 앞 둥글고 큰 무쇠난로 곁으로 갔다. 큰 강아지들 뭉치 일순이 아지 준이 이월이 짱아 곰돌이 칠칠이를 내 보내야 하는데 다들 난로 옆에서 자고 있다가 잠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부스스하니 눈을  뜨면서 쳐다 본다. 얘들아! 빨리 나가! 빨리 빨리! 하고 큰 소리로 외치자 다들 놀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도 나갈 길을 못 찾고 되려 내곁으로 우루루 몰려 와서 앉으려고 한다. 아! 이걸 어째? 난감하고 기막히지만 소리쳐서 강아지들을 밖으로 쫓아 내보내야 했다. 법당 옆문으로 시커먼 연기가 쏟아져 나오고 불까지 나오려고 한다. 강아지들을 모두 다 내보내려면 둘러쳐진 비닐막을 뜯어야 했다. 대사님이 강아지들 추울까봐 비닐을 얼마나 꽁꽁 싸맸는지 잘 풀어지지가 않아서 힘으로 막 잡아 뜯고 찢고 해서 나갈 길을 만들어 주었는데도 아지는 도로 연기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불길이 털에 닿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지야! 아지야! 이리 와! 소리쳐 불러도 잘 보이지 않는다. 매케한 연기가 입속으로 자꾸 들어간다.

 연기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더듬거리다가 1구에 6탄이 타고 있는 큰 쇠난로를 짚고 앞으로 엎어지는데 그 순간 법당 문으로 마치 거대한 용이 혓바닥을 내밀어 널름거리듯 시뻘건 불 한 줄기가 또 나오면서 타기 쉬운 바싹 마른 지붕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이 지붕이 다 타면서 저 불더미가 쏟아지면 우리는 그대로 불더미에 깔려야 했다. 아! 부처님! 제발 도와주세요. 스님 좀 깨어나게 해주세요. 관세음보살님! 스님 좀 깨워 주세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시커먼 연기 위로 타닥! 타닥! 불타는 소리만 크게 들리고 지붕 아래 강아지 밥 끓이는 곳 LPG가스통 8개가 있는 곳으로도 불은 빠르게 번져 가고 있었다. 깜깜 절벽이라 한 발 내 디디기도 어려워 까스통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정신이 확 돌 것만 같았다. 가스통을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가끔씩 지붕 타는 불빛에 고꾸리고 기둥에 기대어 계신 스님이 보였다. 이 메케한 독기운 속에 어떻게 숨을 쉬고 계시는지 기막힐 일인데도 계속 잠들어 계시는 것이다. 불타는 그 순간의 불빛에 냅둔 대사님을 다시 끌고 나가야 하지만 고꾸리고 앉아 계신 대사님은 아예 코까지 골으신다. 흔들고 흔들어도 안 깨신다. 참 졸고 주무시는 것도 역대 국보급 고승표 대사님 졸음이신가 보다. 대사님을 끌고 나가기엔 통로가 너무 좁아서 나 혼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이었다. 스님! 스님! 제발 눈 좀 뜨세요. 집에 불 났어요! 흔들고 당기고 밀고 소리쳤다. 겨우 들리셨는지 그제서야 뭐라고 하신다. 눈도 못 뜨시고 왜 그러냐고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하신다. 큰 일 났어요. 집이 다 불 타고 있어요. 빨리 나가야 돼요. 라고 하는데 뭐라고? 불? 거 따뜻하니 좋구만! 여기 있으면 되지 뭐 자꾸 나가자고 떠드느냐 고 하시며 난로 옆에 따뜻하고 좋으니 나도 같이 앉아 있으라고 하신다. 정신 차리고 어서 나가셔야 된다고 집이 다 타고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주위에 세워진 것들을 붙잡고는 안 나간다고 하신다. 순간 가슴이 찡하고 아프게 져려온다. 얼마나 추운 길에서 고행을 하셨으면 저러실까 싶었다.

 다시 더듬거리며 나와서 옆집 시멘트벽 윗쪽에 붙어 있는 작은 창을 마구 두들겨 자는 사람들을 깨웠다. 성자씨! 성자씨! 대답이 없다. 한참 잠든 추운 겨울밤 깊은 잠이 들어서 안 들리는지 빨리 깨지를 않는다. 다급하게 자꾸 두들기며 부르는 소리에 놀라 누구야? 한다. 나야! 성자씨 불났어. 불? 어디? 우리집. 빨리 신고해줘. 알았어. 하는 대답 소리를 듣고 다시 급히 달려 연기 꽉 찬 곳으로 들어가 더듬거리며 대사님을 찾아 붙잡고 끌어 당겼다. 따뜻하고 좋은데 안 나갈란다. 하시며 눈은 감겨져 있으신 채 다리를 벗딩기며 누워서 주무시겠다고 떼를 쓰신다. 말로 해도 소용 없고 여기 저기 막 잡아 당겨도 끌려 오지를 않으신다. 이제는 숨 쉬기조차 어렵다. 매운 연기를 계속 마시면서도 소리쳐서 대사님을 불렀다. 빨리 나가야 한다고. 나로선 죽을 힘을 다해 소리치는 애절한 절규였다. 그런데도 말을 안 들으시고 계속 버티신다. 이제는 나도 정신이 아뜩해지면서 쓰러지려고 한다. 여기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 잃고 쓰러지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았다.

 너무 위험해서 다시 뛰어나가 옆집으로 가는데 옆집 식구들 모두 할머니 모시고 온 가족이 두꺼비집 내려놓고 대문을 막 나오고 있었다. 성자씨네 둘째 오라버니 성철씨가 맨 앞에서 할머니를 부축하며 나오고 있었다. 나는 달려가 성철씨를 붙잡고 다급히 애원했다. 우리스님 좀 살려주세요. 저 불 속에 있어요 하고 팔을 붙잡고 와서 내가 먼저 연기속으로 들어가 대사님을 찾는데 대사님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팔을 휘저으며 더듬거리면서 대사님을 찾고 있는데 천정에도 지붕에도 법당에서도 무서운 불길은 점점 더 사납게 거세지고 있었다. 나는 오직 빨리 대사님을 끌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연기 밖에서 성철씨가 나를 부르며 묻는다, 어디냐고? 어디 있는거냐? 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라고 스님 여기 계신다고 소리 질러 대답하자 성철씨가 시커먼 연기 속으로 들어 오는데 성철씨네 둘째 여고생 딸이 뒤에서 울부짖으며 소리친다. 아빠! 아빠! 들어 가지마! 들어 가지마! 아빠! 빨리 나와! 아빠! 들어가면 죽는다고! 아빠! 빨리 나와! 아빠! 하는 딸의 안타까운 외침도 멀리하고 성철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왔다. 나 역시 여기라고 소리치며 대사님을 붙잡고 잡아끌며 빨리 나가야 한다고 빨리 나가자고 울부짖으며 애원하고 매달리는 내 모습은 살아있는 자의 무의식중 삶에 대한 마지막 집착 악조건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시커먼 연기가 목구멍으로 너무 많이 넘어갔다.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성철씨가 들어 와서 스님 두 다리를 붙잡아 들고 먼저 앞서서 나가고 나는 스님 목을 붙잡고 뒤에서 나가는데 대사님 처진 팔이 이곳 저곳에 걸려서 겨우 겨우 좁은 통로를 빠져 나왔다. 나오자 마자 바로 내 등 뒤에서 법당 지붕이 불더미가 되어 화르륵 무너졌다. 성철씨가 너무 놀라서 양손으로 붙잡고 들고 있던 대사님 다리를 바닥에 탁 내던져 버리고 쏜살같이 계단 아래로 달려 내려가 무서운 불길을 피해 동네 아래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앵앵거리는 소방차 소리가 길 저 아래에서 들려온다. 그러자 그때서야 대사님 정신이 드시는지 무슨 일이냐고 하시면서 눈을 뜨신다. 불났어요. 다 타고 있어요. 뭐라고? 불이 났으면 빨리 꺼야지 뭐하고 있냐? 고 하신다. 내 뒤에서 불 붙은 지붕이 또 화르륵! 하고 무너져 내린다. 놀라서 피하려는데 느닷없이 대사님이 불타는 집 안으로 들어 가시려고 하신다. 부처님을 업고 나와야 한다시며 들어 가시려는 걸 붙잡느라 갖은 애를 다 쓰며 말렸다. 팔에 힘도 다 빠지고 나는 기다시피 하는데 강아지들은 어찌됐냐고 물으신다. 앞집 큰애들은 다 나왔는지 모르겠고 뒷집 작은 애들은 못 나왔을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빨리 꺼내러 가야 된다고 하시며 또 불 타는 뒷집 뜨거운 불속으로 들어 가시려는걸 허리를 붙잡아 당기다가 팔을 붙잡자 옷이 벗겨지고 다리를 꽉 붙잡고 들어 가시면 안 된다고 악을 쓰다가 놓쳤는데 비호처럼 달려 가시려는 걸 겨우 붙잡아 바지가랭이를 잡고 늘어졌더니 대사님 바지가 다 벗겨지려고 한다. 억지로 붙잡고 계단쪽으로 내려서는데 또 불타는 곳으로 뛰어 가시려고 하신다. 불은 장독대까지 무섭게 덮치고 있었다. 화장실 문까지도 확확거리며 태워들어가고 있었다. 아! 무섭고 참 뜨겁다. 대사님을 놓치면 큰일이다. 대사님 다리 하나를 붙잡고 잡아 당겨서 겨우 또 한 계단을 내려갔다.

 저 아래 동네 어귀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게 보이고 소방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보인다. 빨리 좀 와 주었으면 좋으련만 왜 빨리 안오는지 숨 쉬는 한 순간이 하루같이 느껴진다. 나는 스님 다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동네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사람 살려요! 여기 있어요! 우리 스님 좀 붙잡아 주세요! 제발 빨리 좀 와 주세요! 목이 쉬어라고 부르고 또 불러도 아무도 오지를 않는다. 불타는 소리에 들리지가 않는가 보다. 아랫집 주인남자 우리 뭉치 버린 옛 견주가 불을 피해 나와서 저 아래 길에 서서 긴 빗자루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좀 도와 주세요! 스님이 불 속으로 강아지 꺼내러 갈려고 하세요! 와서 붙잡아 주세요! 여러 번 소리쳐도 바라 보고만 있을 뿐 가까이 오지를 않는다. 길 아래 저 쪽 어두운 데서 누군가가 올라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또 소리쳤다. 여기 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몇번을 소리치자 그제서야 들은 듯 어? 저기 사람 있다! 하는 소리가 들리고 뛰어오기 시작한다. 우리 스님이 불 속으로 들어가실려고 하세요. 붙잡고 내려가 주세요. 소방관이 대사님 팔을 붙잡는데 대사님이 팔을 뿌리치고 도로 계단 위로 올라 가시려고 하자 소방관 한 사람이 억지로 스님을 업고 또 한사람은 뒤에서 붙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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