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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

49재 - 삼재

by Yujin Choi 2024. 12. 17.


  소원성취
  양초에 불을 붙이고 괜히 양초 몸을 어루만진다. 너는 끝자락부터 천천히 녹아가는 양초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양초가 타고 있을 동안에는 양초 주변의 냄새를 잡아준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양초와 향을 함께 태우면 향내가 덜 나는 것도 같았다.
  양초 너머에 있는 영정사진을 또 한참 바라본다. 보고 싶어요. 보고 싶습니다. 엄마 보고 싶어. 겉으로는 괜찮았지만 보고 싶다는 말을 세 번 반복하고 나면 어느새 목이 매어왔다. 엄마를 부르는 동안에는 나이 든 어른도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는 시를 기억한다. 밝게 웃다가도 섧게 울고 좋다가 했다가도 싫다고 투정하고. 너도 그랬을까. 누구보다 도움이 필요했을 어머니에게, 너도 그렇게 철없이 세월을 흘려보냈을까.
  숨이 가빠온다. 흐르는 눈물을 너는 일부러 참지 않았다. 방 안에 혼자 놓여진 너에게 눈물을 삼킬 이유는 없었다.


*
  슬픔. 
  너는 슬픈 존재였다. 아니 슬픔 그 자체였다. 눅눅한 여름날 끝날 줄 모르는 장맛비처럼, 한 시절 찬란했을 봄꽃들이 가을 지나 미소를 잃은 것처럼, 따뜻함을 잃어버린 추운 계절 속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는 눈발처럼.
  너는 가끔 그 슬픔을 즐겼다. 때로는 눈물로 가득한 연못을 헤엄치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 때로는 달빛 따라 내리는 시린 아픔을 마주하는 한 송이의 연꽃이 되어 침묵 속에서 피어오르는 모든 감정을 받아들였다. 

*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얇은 거적데기, 낡고 헤진 검정 운동화를 신은 그 아이는 짙고 어두운 밤이면 어김없이 너를 찾아와주었다. 그 아이는 언제나 홀로 너의 주변 맴돌다 희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어느 날은 그 아이의 얼굴이 무척 궁금해져 뒤를 밟아보았다. 그러나 그 조그만 두 발이 얼마나 재빠르던지 조금도 따라갈 수도 없었다. 운이 좋아 얼굴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는 주변의 집과 가로등 불빛, 페인트로 낙서된 주택의 벽들 등 모든 것들이 한순간 낯설게 느껴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끔 되었다.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버렸다가는 길을 잃고 나오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너는 아무 말 없이 그 아이를 그저 바라보기로 했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차가운 계절에서 너는 가끔씩 그 아이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어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부르기도 하였다. 시선이 느껴져 고요히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면,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얼굴로 미소라도 짓는 듯이 잠깐 동안 나를 응시하곤 했다. 
  너는 그 아이를 모른다. 긴 세월 속에 잊혀진 옛 고향 친구였던가, 본 적 없는 이웃집 부부의 아이였던가. 눈을 감고 기억을 되돌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머리 한쪽이 아파온다. 애써 지우려 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점점 윤곽이 또렷해져 이내 채색되어진다. 아, 그때였구나. 고등학교 삼학년 때 그 아이를 처음 봤었구나. 그러나 여전히 너는 그 아이를 모른다. 어둑한 달빛에 보일 듯한 얼굴을, 어두운 밤하늘 아래 춤추듯이 노는 그 아이의 행동들을 어쩐지 익숙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
  너의 앞에 젊은 여자가 마주앉아 있다. 그녀는 너가 하는 이야기들을 숨죽여 듣는다. 너의 말은 빠르지 않았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 속에서 길을 잃을 때면 시든 꽃처럼 고개를 푹 숙여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교복 마이 밑단에 삐져나온 검은 실터래기 하나를 애꿎게 괴롭힌다.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손가락을 제멋대로 움직일 때면 손가락 가지고 발작하지 말라고 소리쳤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또 손가락가지고 발작하냐 개새끼야. 그런 개짓거리 하면 재수 없다고 했냐 안했냐. 그냥 이 집에서 나가라. 이 개 잡씹보다도 더러운 데서 나온 놈의 새끼야. 이 재수 없는 새끼야.

  너는 너도 모르게 손가락을 멈추고 두 손을 포개 공수 자세를 취한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자의 얼굴을 본다. 그녀는 너의 담임 선생님도, 어떤 교과목 선생님도 아니었다. 책상 위에 놓인 한 안내책자의 '상담'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동자를 돌려 마주앉아있는 여자쪽으로 다시 시선을 옮긴다. 한 마디 두 마디 천천히 꺼낸 너의 말에 눈물을 흘렸던 그녀는 상담 선생님이었다. 

  힘들었겠구나.

  그 말은 예리한 화살이 되어 너의 가슴에 팍- 꽂혔다. 화살촉에 독이라도 묻어 있었는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빠르게 고통이 퍼진다. 살아오면서 처음 듣는 말에 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는 그 눈물을 닦지 않고 멍하니 상담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아파왔다. 누군가 날카롭고 긴 쇠꼬챙이로 가슴을 후벼파는 듯했다. 오른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자 목이 매어왔다. 흠칫 놀라 너는 손으로 눈언저리를 닦았다. 상담선생님이 곽휴지 서너 장을 뽑아 네게 건넨다. 아버지에게 십팔 년째 맞아오니 익숙해져서 이제는 울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흐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너는 힘들었을까. 그런 삶은 힘든 삶이었던 걸까. 누구나 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었나, 어린 너는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소시 가까웠던 세 명 남짓한 친구들도 비슷한 가정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모님들이 엄하게 말하는 것을 봤기에 다른 친구들의 생활을 판단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 삶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괜한 엄살 부리지 말자, 생각했었다.
  너는 힘들지 않았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힘들지 않았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적조차 없었다. 주먹으로 머리를 맞아 혹이 생기고 여러 날 동안 미칠 듯이 고통스럽다가 가라앉고, 또 생겼다. 매일 밤을 울다가 잠에 들고, 우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아 딱딱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이 표정을 일그렸다. 쇠파이프로 피부가 찢어지면 금세 빨간 딱지가 앉고 흉터가 졌다. 몸 곳곳에 누런 멍이 생기고 날이 지날수록 푸르게, 보랏빛으로 변하다가 이내 사라졌을 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 가족처럼 살아가는구나, 너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너의 삶은 불행해졌다. 텅 비어있던 삶의 그릇에 고통과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 아니, 어쩌면 이미 절망적이었던 삶을, 너가 이제서야 두눈 똑바로 뜨고 마주한 것이니라. 그게 아니라면, 그 상담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너는 평생 그렇게 불행을 모르고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너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아픔을 모른 채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어리석게도 아버지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어디선가에서 그와 똑같은 삶을 이어나가더라도, 적어도 겹겹이 쌓인 핏빛 딱지를 홀로 끌어안고서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너는 아버지의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은 입동과 소설절 사이의 어느 날, 눈이 소복이 쌓여 차 바퀴가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던 날이었다. 불행을 알아버린 뒤 더 이상의 불행을 이어갈 수 없었던 너는 집을 나와 어머니가 계시는 절로 갔었다.

  오 년 전 겨울, 화재로 절이 전소했고 벽 하나 없이 얇은 비닐막만 쳐두고 한겨울을 보내는 어머니와 스님의 모습이 뉴스로 인터넷으로 퍼지게 되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전국에서 후원금이 들어와 간신히 컨테이너만은 세울 수 있었다 . 부처님 불상도 모두 불타버려 제대로 된 구실조차 하지 못했던 법당, 칼바람도 비바람도 막아주지 못했던 팔 평 남짓한 어머니와 스님의 컨테이너 방. 그리고 그 뒤로 더 작은 컨테이너 하나가 외로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너는 스님과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얇은 컨테이너 건물은 한기를 막아주지 못해 해가 비치는 한낮에도 입김이 몽실몽실 올라왔고 생수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자고 일어나면 꽁꽁 얼어있어 물조차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다. 난방 장치라고는 LPG 가스난로밖에 없었다. 손끝 발끝이 무척 시려워 한 칸을 잠깐 동안 켰다가 그것조차 전기세 많이 나올까 걱정하여 도로 껐다. 하지만 너는 그 삶을 더 좋아했다. 언제나 냉장고를 가득 채워두셨던 스님이 따뜻했다. 밤마다 한기에 벌벌 떨었지만 따뜻한 엄마 미소를 매일 보는 것이 따뜻했다. 엄마가 매일 차려주는 아침밥이 따뜻했다.

  너는 등교를 했지만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매일 학교 앞으로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아빠가 잘못했으니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너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몇 가지를 조건으로 제안을 했다. 아버지는 알겠다고, 더 이상 영명이 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너는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믿었다. 형 광명은 이제 상병이 된 무렵이었을까, 돌아간 집에는 동생 청명이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
  향연기가 방안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너는 여전히 양촛불을 나지막이 바라본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누가 찾아왔는지 너는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여느 때처럼 너의 주변을 맴돌다가 양초 옆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의 마음이 또 다시 아파온다. 눈 앞이 흐려지고 촛불 아래로 노란 빛줄기가 길게 늘어진다. 그 기억은 또 언제였던가. 어째서 너가 그 기억을 알고 있는가.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많은 생각에 잠긴 듯했던 너의 눈은 이내 촉촉하게 슬픔으로 메워져간다. 너는 언제나처럼 그 슬픔을 꼭 껴안는다. 그 아이를 탓하지도 않는다. 그저 네 속으로 들어온 모든 감정과 말들, 기억들을 받아들인다.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사무실이었다. 야간근무를 하던 너는 야식을 먹고 올라와 어둠이 내린 창 밖을 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칫솔에 치약을 얇게 덜어내 양치컵에 담았다. 슬리퍼로 갈아신은 뒤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불투명한 유리문을 밀어서 열자 화장실 안에서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영명이, 저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리네.
  그러게 씨발. 쟤 왜저러냐. 하...
  
  그날 야식을 먹기 전, 너는 삼십만 원어치의 수은램프 하나를 교체하다가 떨어뜨려 그만 그것이 깨져버렸다. 조치 방법을 몰랐던 너는 산산조각나버린 유리조각들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십 초 쯤 흘렀을까, 동기 친구 한 명이 급하게 배기장치를 가져와 작동시키고 이어 방독면을 쓴 뒤 깨진 유리조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십 초 쯤 흘렀을까, 너는 여전히 무엇을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있었고, 옆에 있던 열 살 정도 많은 선배 한 명이 너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언제나 얼굴에 피곤에 절여있는 선배였다.

  뭐하냐. 너는 이거 정리 안하고.
  .......
  민구는 방독면 쓰고 와서 정리하는데, 너는 뭐하냐고!


  그 다음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너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뒤로 들렸던 모든 말소리들은 누군가 지우개로 지운 듯이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너는 열려지는 화장실 문을 도로 닫았다. 두 걸음 뒤로 발을 옮긴 뒤 다시 사무실 너의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누군가 팔목보다 두꺼운 망치로 가슴을 후려친 것 같았다. 그날 너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선배가 업무에 대해서 물을 때면 네 아니오 짧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너는 자리에 앉아 한 손에는 양치 컵을 들고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모니터만 한동안 바라보았다. 잠시 뒤 화장실의 문이 열리고 엇박자의 걸음걸이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누가 됐든 두 명이 만나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을텐데, 왜인지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오는 순간까지 그 두 명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그들이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려다 말았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너는 그들이 알았으면 했다. 그래서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그 두 명에게 아주 조금의 죄책감을 심어주리라, 생각했다.

  저는 몰랐어요.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라고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어요. 제가 그렇게 잘못했나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요, 꼭 그렇게 화장실서 험담을 했어야 했나요. 제가 들을 수도 있잖아요. 혹, 제가 들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인간대접을 안해주는 것일까요. 툭, 누군가 던진 쓰레기를 왜 제가 안고 가야 하는 걸까요. 그냥요. 마음이 조금 아프네요. 사실, 많이 아파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이런 회사생활도, 그리고...


  너는 그들이 사무실로 들어올 때, 일부러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들었지만 충격을 받아서였을까,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너를 지나친 뒤 각자 자리로 가서 앉았다. 말소리가 들려와야 할 사무실은 한참 동안 침묵 속에서 오로지 키보드 소리만을 퍼뜨렸다.


*
  어느새 긴 향이 다 타버려 재가 되었다. 너는 또다른 길다란 하나를 집어 잔잔하게 타오르는 양초 불꽃에 향 끝을 가져다 댄다. 불꽃이 붙어버린 향을, 향 끝에서 소리 없이 요동치는 작은 불꽃을 너는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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