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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

49재 - 초재

by Yujin Choi 2024. 11. 29.

  너는 사십구재를 지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번의 제사를 통해 슬픔을 달래야 한다.
초재날 저녁 새하얀 함박눈이 내렸다. 다음 날에 발목 높이로 쌓인 눈을 보고 사람들은 오늘 첫눈이 내렸다고 말하지만, 오늘이 첫눈이 내린 날이 아니다. 소설절 여러 날이 지난 어젯밤 첫눈이 내려 쌓이기 시작했다.
  너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내리는 눈을 피한다거나 검정 코트 어깨부분에 쌓인 눈을 털어내지도 않는다. 흩날리는 눈들 사이로 옛추억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머리칼이 눈들에 적셔지고 너는 다시 그 아픈 기억들을 고스란히 품어안는다.
 마치 벌을 받듯이, 그래야만 금생에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 수 있다는 듯이.

*
  함박눈 내리는 하얀 길을 걷는다. 느리게 떨어지는 눈이 너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주머니에서 빼둔 손이 끝부터 살살 시려 온다. 휴대폰을 꺼내 새하얀 눈이불에 덮인 길과 집들의 모습을 담는다. 채도와 밝기를 익숙하게 보정한. 매 해 겨울이 지날 때마다 눈은 너에게 아픈 추억을 남겨두고 떠났다.

  눈이 시리도록 차구나. 언제쯤 이 눈들이 녹게 될까.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던 내 마음에 밝고 따뜻한 봄은 찾아오긴 할까. 

  발걸음을 멈추고 툭 건들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버릴 듯 슬픈 눈으로 포슬포슬한 눈이 떨어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폭신한 눈이 볼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덩달아 아려 왔다.

  모든 아픈 어릴 적 기억들이 눈 내리는 겨울 속이었다.

  고개를 떨구어 잠시 선 곳에서 쪼그려 앉는다. 행여나 코트가 구겨질까 밑단 부분을 오금에 맞춰 넣는다. 왼쪽 귀를 땅에 가까이 가져다 댄다. 사박사박. 눈 또다른 눈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사뿐히 발끝을 즈려밟는 소리와도 같았다.
  예쁘다. 소리가 참 예쁘다.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시간을 잊은 채 떨어지는 눈송이를 오래도록 응시한다. 언젠가 어머니가 해주셨던, 영겁의 시간 동안 산봉우리를 발끝으로 살포시 건들며 평지를 만들었다던 이야기가 기억 속에서 떠오른다. 코트 주머니에서 검정색의 얇은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비 오듯 쏟아진 눈에 하얗게 뒤덮인 집과 나무는 짙은 잿빛 담배연기를 숨겨준다. 아무도 구별해낼 수 없을 것이다. 냄새조차 없는 이 전자담배를 너가 피우고 있다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일 년 동안 영국에서 지낼 동안 웃는 날이 많았지만, 바람 앞의 힘 없는 촛불일 뿐이었다. 이내 너의 삶은 다시 슬픔이다. 영국을 가기 전에는 부족함 없었지만, 이제는 갚지 못한 빚만 남았다. 익숙한 이 슬픔이 겨울바람처럼 너를 감싸안을 때면 수도 없이 생각했다. 마침내 따뜻한 집으로 돌아왔다고. 어쩌면 정해진 삶이란 것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누군가와 함께 한 지붕 아래 살 수 없는 피가 어쩌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게 너일지도 모른다고.

*
  눈은 멈추지 않는다. 느티나무 가로수길 한복판에 서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자동차와 버스를 힘없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돌아간 고개에 시선은 끄트머리만 살짝 보이는 코트에서 멈춘다. 눈을 타고 아픈 추억들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너는 다시 걷는다. 장례를 치른 뒤 5일이 지난 오늘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오후의 공기가 차갑지 않다. 눈이 내리지만 바람도 불지 않아 포근하다고 느껴진다. 너는 오른쪽 눈썹이 찢어지던 날을 떠올린다. 그날도 구름처럼 가벼운 눈이 내렸고 바람이 불지 않았다. 햇살이 따뜻했다는 것만이 오늘과의 다른 점이었다.

  입동이었는지 소설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가을이 발자국을 남기고 간 탓일까,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너의 어머니는 왼 손으로 형의 손을, 오른 손으로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내 손도 잡아줘. 엄마, 나도 엄마 손 잡고 싶어. 손이 두 개뿐이었던 어머니는 너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었다. 그리고는 매정하게 뒤돌아 눈 내린 가로수길을 다시 걸어갔다. 왜 너는 그게 분했을까. 왜 너는 그게 그렇게 짜증났을까. 왜 너는 그렇게 어머니가 너를 바라봐주길 바랐을까. 어머니 뒤를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다 말고 나무 벤치 위로 올라갔다. 콩 콩 몇 번 점프를 하니 어머니가 너를 드디어 바라봐주었다. 위험해. 어서 내려와. 하지만 너는 그만두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그저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싶었다. 노란 햇살에 눈이 녹아버려 미끄러운 부분을 잘못 디뎌 너는 벤치에서 떨어졌다.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한 도로변 배수로에 이마부터 떨어졌다. 엄마... 엄마.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불렀다. 그녀는 너에게 달려와 얇은 점퍼 안주머니에서 급히 휴지를 꺼내 너의 오른쪽 눈썹을 닦아주었다. 너는 몰랐었다, 그 휴지가 붉게 물들어갔던 것을, 김이 나는 뜨거운 피로 그 휴지가 서서히 빨갛게 물들어갔음을. 

*
  주먹으로 한 대, 두 대... 열 대, 열한 대... 어느덧 스무 대가 넘어갔다. 어린 너는 몇 대를 맞았는지 항상 수를 헤아렸었는데, 스무 대가 넘어가면 세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곤 했다. 처음 다섯 대 정도를 맞을 때는 그 누구도 울지 않았다. 다음 주먹이 날아오고 머리의 통증이 생생해질 때즈음 절로 울음이 나왔다. 어릴때 누군가에게 맞으면 울고 싶지 않아도 울음이 나온다. 의지와 상관 없이 얼굴이 찡그려지고 눈물이 나오는 것을, 너는 때때로 신기해했다. 그날도 신음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개 잡씹보다도 더러운 데서 나온 놈의 새끼야. 사창가 개 잡씹보다도 더러운 데서 나온 놈의 새끼야.

  수백 번도 넘게 들은 저 욕에는 언제나 패턴이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긴 욕을 내뱉으며 우리 형제들을 때렸다. 그러다 개새끼야. 잡새끼야 욕이 짧아지면 더 이상 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맞을 때면 매 순간을 아버지 입이 열리지 않기를, 욕이 짧아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머리를 맞으면서 기다렸고, 팔로 머리를 감싸며 서럽게 울면서 기다렸다.

*
  주먹으로 맞고 있자면 어느 순간 머리 군데군데가 부풀었다. 맞은 곳을 수차례 또 맞으면 혹이 생기고, 그 혹은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팠다. 맞고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어버린 채 이를 악물고 손바닥을 그 부위에 올려두었다. 혹이 난 부위 주변을 손톱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잠시 동안은 손톱으로 움켜쥔 곳으로 고통이 옮겨가 혹이 난 부분이 아프지 않았다.

  십 분이 지나도 너는 계속 맞는다. 머리의 곳곳에 혹들이 또 생긴다. 너는 다시 그 주변을 강하게 쥐어뜯는다. 멈추지 않겠구나. 계속 때리겠구나. 너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우리를 때리려 손을 확 들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주먹을 막을 준비를 했다. 손과 팔로 머리를 보호하다 보면 가끔씩 손가락 관절을 맞기도 한다. 그럴 때면 손가락과 손등, 손목, 팔에 시퍼렇게 멍이 들거나 부었다. 머리에 혹이 생기는 것보다 차라리 그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다섯 여섯 개의 혹이 생기고 나면 밤에 잠에 들기가 힘들었기에, 단단한 이불배게에 맞닿는 그 혹들이 어지롭도록 아파 잠을 설쳤기에.

  너는 너무 많이 맞았다. 머리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쯤 누군가 너를 감싸안았다. 너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울면서 너를 감싸안았다. 이어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 더러운 년아. 이 개년아. 사창가 개 잡씹보다도 더러운 데서 나온 년아. 애새끼 하나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냐 이 더러운 년아.

  엄마. 엄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면서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는 너의 머리를 필사적으로 감싸안는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릴 때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진동이 느껴진다. 그게 또 너무 마음아파 다시 울음이 나온다.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누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십 분쯤 흘러 아버지가 부엌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때에야, 울음이 멈춘다.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멍든 손을 부들부들 떠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었다. 내 어깨를 감싸안은 어머니의 손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어머니도 눈물을 멈추고 규칙적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소리가 들릴 때면 내 울음도 멈춰갔다. 긴장이 풀리자 맞은 부위들의 고통이 생생해진다. 이제 끝이구나. 늘 그랬듯이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녁을 먹고 잠에 들겠구나. 한 마디조차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밥상머리에서 밥그릇과 숫가락이 부딪히는 쨍한 소리만이 이 작은 방 안을 메우겠구나. 하지만 형과 동생은 여전히 방 구석에서 서럽게 소리내어 울었다. 아버지가 도깨비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다시 들어왔다. 누구 하나 죽일 듯한 표정으로 형과 동생을 손가락질하며 노려본다. 

  뭘 잘했다고 우냐. 이 더러운 새끼들아. 조용히 안 해, 이 개 잡씹보다도 더러운 데서 나온 놈의 새끼야.

  주먹으로 형을 때리다 멈추고 앉아있는 동생을 벽으로 일으켜 세운 뒤, 오른손으로 목을 조이며 들어올린다. 목이 막힌 어린 동생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찡그린 눈에서 눈물만 떨어진다. 그때 너가 바라본 세상은 마치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다 한순간 멈춘, 모든 소리들이 사라진 세상 같다고 느꼈다. 아버지의 손이 펴지고 나서야 동생은 켁켁 기침을 한다.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목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오른손을 떼어내려고 애쓴다. 태어난 지 6년 된 아이는 힘이 약했다. 결국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빈다. 잘못했어요. 아부지 살려주세요. 너희 삼형제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다시 막내를 구하러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그만 좀 해. 내 잘못이에요. 제발 그만 좀 해요. 어머니는 울면서 너를 감싸안았듯이 동생을 다시 보호한다.

  죽여버릴 거야. 저 씨발새끼. 내가 죽여버릴 거야. 언젠가 내가 죽여버릴 거야. 드라이버로 눈을 파버릴 거야. 식칼로 가슴을 찔러버릴 거야. 반드시 내가 죽여버릴 거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왜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왜 아버지가 우리를 때리는지, 어머니는 이 집에서 왜 나가지 않는지, 너는 단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리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버지가 일찍 죽게 해주세요. 부처님 앞에서 기도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 삼배를 올리고 반배를 올려 기도했었다.

*
  진광대왕님. 기도드리옵니다. 어머니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어머니는 평생을 도를 닦다 현생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가 진광대왕님께 심판을 받는다면, 부디 아무런 아픔 없이 도산지옥을 지나가게 해주시옵소서. 어머니께서 지은 죄가 있다면 제가 달게 받겠습니다. 둘째아들 영명이 가감없이 그대로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에게는 부디 아무런 벌도 내려주지 마시옵소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리옵니다. 부탁드리옵니다...

*
  어머니는 잘 모시고 오셨을까요.

  모시다라는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잘 마치고 왔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일을 시작한다. 장례식에 찾아와 준 선후배들, 조의금을 내준 동료들을 직접 찾아가 감사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장례식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의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너는 돈을 받아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입밖으로 내뱉으면서 이유 모를 경멸감을 느꼈다. 돈을 받으면서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너 자신을 경멸했다.
  동료들이 집으로 떠난 사무실 안, 차가운 공기를 따라 사무실 끝 창가로 홀린 듯 걸어갔다. 어두워진 하늘은 언제나 스스로를 감춘다. 너와 나 사이에 창이 있음에도, 어두운 하늘은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창을 통해 보이는 것은 밝은 사무실과 그 넓은 곳에 덩그러니 놓여진 너 자신 뿐이었다. 손에 힘을 주어 안젖힘 창을 활짝 열었다. 칼바람과 함께 복실한 눈송이들이 창 안으로 빨려 들어와 굳게 닫혀 있었던 쓰라린 추억의 문을 두드렸다. 아. 그것은 너가 엄마를 처음 잃었을 때의 감정이었다. 18년 전, 아빠와의 삶이 너무 아파 결국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였다.
  아마 그때부터 너는 겨울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세파에도 따뜻하게 옷을 꼭 껴입으면 엄마가 안아주었던 온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까. 지금도 옷을 두텁게 걸치면 마치 9살 때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이따금씩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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