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균아.
다른 일 하기 전에 잠시 앉아서 너를 생각해 본다.
작은 글이 잘 안보여서 굵게 쓰고 있다.
낮에 일하다가 문득 앞산을 바라보니 잎떨어진 나무들 사이로 휑 하니 산 모습이 드러나 있더구나.
그 사이 세월은 또 저렇게 많이 지나가 버렸구나.
아직도 소식이 없는걸 보니 너도 많이 바쁜 생활인가 보다.
나도 김장 준비로 마늘도 까놓고 이그릇 저그릇 준비해 놓고
텃밭에서 거두어 들인 콩도 까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닳이는 약초 향기가 집안에 꽉 들어 차는구나.
사흘째 닳이는 향기라 무척 진하다.
향기만 맡아도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난 이 약초들 때문에 많은 병을 고칠수 있었단다.
오가피 익모초 우슬이 민들레...는 집에서 가꾸고
영지 웅지 칡 고삼 당귀...산에서 캐오고
다른 약초들은 모두 국산 최상품으로만 구해다가 약을 닳이기 때문에
향기가 왼 동네에 가득 하단다.
겨울마다 이 약초들을 닳여 먹은 덕분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기어다니며 고통받던 관절염증.소갈증 갑상선 산후통......
환절기마다 제철마다 독하게 앓던 감기들까지 다 나을 수 있었다.
필요없는 살도 거의 다 빠지고 이제는 건강해지고 있단다.
몸이 강해지고 단단해짐을 많이 느낀다.
차균아.
너의 건강은 어떤지?
우리 나이 어느덧 50 이 넘었구나.
이제는 몸의 건강도 잘 살펴서 챙겨야 할 때인것 같다.
어렸을때 보면 큰집 밭에는 항상 천궁 황기가 있었고 집 뒷뜰에는 작약 목단이 있었어.
우물가에는 목이버섯이 많이 나 있었다.
우물속에는 물고기 헤엄치고 미꾸라지 가재 많이 기어다녔었다.
큰 대추 나무 드리워진 우물가 토란밭에 넓은 토란 잎마다 하얀 이슬 물방울들이 매달려 있으면
이리 저리 굴려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호박꽃잎 속에 개똥벌레 잡아넣고 앞산 덤밑에 가서 멱 감고 그러다 추우면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입술 파래서 달달 떨고
소 먹이러 갔다가 소에 들이 받쳐서 울면서 돌아오고
개구리 잡아서 구워먹고 메뚜기 잡아서 구워먹고 가재 잡아서 구워먹고 수풀속 딸기도 따먹고
그러다 뱀 또아리 틀고 있는것 잘못 밟아서 놀라 기절초풍 도망 나오고
홍굴레 도감 감곷. 구름처럼 일어나는 목화꽃 달큰한 열매도 따먹다가 혼나고.
콩 마당에 넘어지고 넓은 바위판에 벼 타작 보리 타작 수수대로 올벼 훑고 명 잦고 물레 돌리고
베틀 짜는 철거덕 소리 ! 고향의 옛추억 소리로구나.
차균아.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난 널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여긴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김장배추 뽑으려다 말았는데 비가 제법 오는구나.
차균아.
많이 보고 싶구나.
2011.11.18 금요일 저녁 9시 30분
서울에서 숙희.
'어머니의 창작 > 어머니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들 (2012.01.01) (0) | 2024.12.01 |
---|---|
큰집 차균에게 (2011.11.11) (0) | 2024.12.01 |
큰집 오라버니께 올립니다. (2011.11.05.) (1) | 2024.12.01 |
오재연 언니께 (2011.11.24.) (0) | 2024.12.01 |
고인이신 맏종부 큰집 언니께. (2011.11.04.) (1) | 2024.12.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