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덜 불행했을까.
옛날에 아무리 추위와 배고픔과 생존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삶과 죽음에 대해 알고 있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하며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또 삶을 이어가기 위해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견고하게 방어해 낸다.
둘 다 장단점이 있겠다.
어느 누군가가 그랬다.
과거 원시시대의 인간의 삶과 현대인의 삶은 비교 불가능한 것이라고.
정말 그럴까. 정말 비교가 불가능한 것일까.
현대인들은 맛있는 음식, 편안한 장소, 안전한 공간에서 삶을 이어나간다.
거기에서 오는 안정감도 있고, 물론 불편함도 있다.
과거에 비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다양해졌으며,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깊이도 깊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본인이 원할 때 욕구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다.
근데 과거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똑똑한 원시인들도 삶과 죽음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아, 자신의 삶과 자신의 죽음 말이다.
살아가는 와중에도 본인이 죽어가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을까.
맛있는 현대 음식을 본 적조차 없으니, 맛있는 음식을 향한 욕구도 없지 않았을까.
돈의 존재도 모르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모르지 않았을까.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죽음'을 두려워하는 감정 또한 없지 않았을까.
과거와 미래라는 알아차림도 몰랐을 테니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았을까.
그냥 현재를 꿋꿋하게 살아나가지 않았을까.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관계의 쾌락을 이따금씩 맛보고 동료의 죽음을 얕게나마 애도하고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또한 현대인보다는 적게 느끼지 않았을까. (자주는 느끼겠지만)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과거의 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깊이가 지금보다는 낮았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현대인이 -100 ~ 100까지의 감정 폭으로 감정을 느낀다면
과거에는 -10~10 정도로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원시 시대의 우리는 덜 불행하고 덜 행복하지 않았을까.
감정의 컨트롤은 불가능했겠지만, 느끼는 변동폭이 좁아 보다 안정적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물론 돌연변이로 조울과 우울이 특히 많이 나타나는 개체도 있었겠지만)
그런 생각.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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