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명뉴스/사회

퇴근길

by EugeneChoi 2025. 4. 11.

오늘 예비군 훈련이 있었는지 퇴근길에 머리 긴 군인들이 보였어.
횡단보도 앞에 잠깐 멈춰 섰을 때 어떤 어르신이 자전거 끌고 오더니 군인들 보고 향해 말했어.

"나라를 지켜줘서 고마워요. 고생이 많네"
"네, 오늘 오랜만에 훈련이 있었어요"

군인은 답했어. 횡단보도가 초록불로 바뀌고 군인은 앞으로 걸어갔어.
어르신은 자전거 안장 위에 몸을 올리고 페달을 힘껏 밟았어.
노랗게 탄 석양이 어스름에 떠밀려 고개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어.
길게 누운 채로 횡단보도 위의 사람들을 비추는 그 석양빛이, 오늘따라 더 따뜻했어.
바람결에 머리칼은 흩날리고 나는 쌀쌀한 봄바람을 가슴으로 안았어.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어.
한 번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집회에 나갔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두 손에 꼭 쥔 것이 책이 아닌 태극기였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아니었어. 나는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었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하늘에는 구름이 지나가고 기러기 떼가 지나갔어.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 우리들은 멈춰버렸어.

나라를 잃은 것 같았어. 눈물이 흐르고 멈출 수 없었어.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대한민국이었는데, 무엇이 나를 여기로 이끈 건지 알 수 없었어.
몇 달 전, 어머니를 잃었고, 며칠 전에는 대통령을 잃었어.
내 손으로 뽑은 내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왔어.
다른 건 모자랐어도 누구보다 참전용사들을 위했던 대통령이,
영어로 연설을 하며 백악관에서 해외 각국 인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대통령이,
설 인사로, 차가워진 한국 사회에 따뜻한 사랑노래를 선물했던 대통령이,
자신을 체포하려고 했던 공수처 직원들도 국민이라며 다치지 않길 바랐던 대통령이,
그랬던 나의 대통령이.

우리 어머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존경했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이 참 살기 좋았다고, 어머니는 말하셨어.
그때의 나는 몰랐어. 어머니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어.
그래서 더 아픈 걸까. 그래서 더 괴로운 걸까.

며칠 새 달이 가득 찼어.
늘 그랬듯이, 달은 오늘도 뉘엿뉘엿 기울고 있어.
차게 부는 밤바람이, 밤이슬을 한가득 먹은 밤바람이
옛 추억들을 가득 가득 담아 오고 있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