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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생각

#13 단어가 주는 한계 / 이해와 소통

by Yujin Choi 2023. 5. 17.

#단어

'선과 악', '옳고 그름', '잘하고 못함', '행복과 절망'
이것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이런 기준들은 오로지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단어들로 정의했으니, 그 기준이 명확할 리 만무하다.

요새는 유튜브에서 3분짜리 뉴스도 많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 짧은 3분 만을 보고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 든다.
그리고 사건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는 내용은 간과한 채 자신들의 생각이 정답인 양, 영상이 전부인 양 댓글을 달아댄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이 공개되면 상황이 반전되면 댓글을 내리거나 비난을 받는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정말 어리석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전부 다르다.
누구에게는 친절한 사람, 누구에게는 기부정신이 투절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이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도 당연히 다르다.
한 일본 기자가 태국에 가서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었고
너도나도 손을 들어 자신있게 말했던 것들이 '텐푸라' '카츠돈' 이런 단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잘함'의 기준도 서로 애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것(+단어)들이 그렇다.
내가 '컵'을 말했을 때 누군가는 양치 컵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머그컵을 떠올린다.
토론을 하기 전에는, 사용할 '단어'에 대한 정의를 한다.

 

요새 핫한 MBTI도 마찬가지이다. 
I와 E가 각각 51% 49% 나온 사람은 내성적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우리는 단어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 한계 속에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한계에 빠진 사람들이 사회를 편견과 고정관념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인간사회와 자연

끊임없이 생각을 하다 보면 그 끝은 항상 '자연'이었다.

사회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법은 칼을 휘두르는 누군가으로부터 사람을 지킬 수 없고
아무리 기후변화를 막으려고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막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자연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사고와 관점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단어, 문화, 직장, 제스쳐 등등 이러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이 만든 것에서 벗어나면 마침내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옷을 벗어던진 사람의 모습, 건물과 지하철이 사라져버린 숲 속의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그럼 그곳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우리가 그토록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왔은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면서 하찮은 존재인지,

결국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끈

고대 철학자들은 정신과 몸이 분리되어 있고 세상 저편에 이데아가 있다고 믿었다.
내가 좋아하는 근대 철학자 니체는 세상 저편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으며 '니힐리즘', 능동적인 허무주의를 주장했다.

나는 '니힐리즘'에 동의하며 이를 과학과 많이 연결 지어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왜 유명한 철학자들이 겸직을 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해와 소통

1. A가 B를 살해했고, 여론은 A를 맹렬히 비난한다.
1. 알고 보니 과거에 B가 A의 아버지를 죽였었다.
1. 조사를 해보니 B는 유년 시절 가정폭력으로 반사회적 심리를 가지게 된 아이였다.

이 세상은 단순해 보이는 문제도 깊게 파고들면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대하는 이해, 용서, 반대 등 다양한 태도들이 있다.

나는 그 중 이 '이해'라는 단어는 정말 모호하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이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존중'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남의 삶을 단 1분도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어떤 수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아마도 '이해'라는 단어는 '내가 너의 마음을 알아'가 아닌, '너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대충 짐작해'라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은 '존중'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된다. '너의 의견을 존중해', '너의 감정을 존중해'

남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남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사는 방법밖에 없고, 이는 당연히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른 이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전부를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는 자연 속에서 생존확률을 높일 순 있어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고 내 행동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기에 이런 '어리석은 기대'는 곧 '실망'으로 연결된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의 알고리즘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모든 상호작용을 크게 보아 '소통'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A에게 '왜 B를 살해했느냐'고 묻지 않은 것,
정확한 소통을 위해 너와 내가 생각하는 ''이 무엇인지 정의를 하지 않은 것.

나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소통'에 있다고 생각한다.

 

 

 

P.S.

- 제가 격투기를 배우는 이유요?
- 제 몸은 제가 지켜야죠. 법이 지켜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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