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가끔은 그렇게 생각한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면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이웃 나라에서 특정 계층의 누군가가 불이익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고.
그게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재 자유롭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먹고살 만하니까, 이미 만족하니까 그러는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 내게 주어진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나도 기꺼이 지켜야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우리는 굳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자유를 만들어내서 지켜야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애초에 모두가 자연 속에서 자유로웠지 않았나.
처음 인간들을 결박한 건 우리 인간이지 않았나.
계급을 만들고 서로 경쟁하고 차별하면서 자유를 묶어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이 아니었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자유'를 만들고 그 가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걸까.
사람들을 거느리고 싶은 누군가가,
힘이 강한 누군가가 기득권자가 되어 꼭대기에 올라서며
힘이 약한 자들이 노예가 되는 것.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따르는 것이 맞겠지.
그리고 그게 한 종족의 멸망으로 이끄는 길이라면,
그것 또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의 높은 지능이 우리 스스로를 지구에서 빨리 사라지게 만드는 것일지도.
또 모른다. 그게 오히려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길일지도.
인간의 멸종.
한 생물의 멸종.
오늘따라 멸종이라는 단어가 좀 예쁘게 들린다.
#괜찮아 #감정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내가 불쾌감을 느끼지만 이게 '절망'인지 '분노'인지 '불안함'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순도 100%의 분노를 느낄 수 없다.
행복도 설렘도 기쁨도 마찬가지이다.
0부터 100 중 70% 정도의 분노가 찼다면, 우리는 그것을 '분노'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기준이 달라 30%만 차도 그것을 '분노'로 부른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수도꼭지와 같다.
수도꼭지를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찬 물과 따뜻한 물이 적당히 섞이듯이,
수많은 감정이 섞여 하나의 집합체를 이루어내고, 그걸 우리가 하나의 '감정'이라고 느낀다.
행복, 분노, 설렘 등 이렇게 문구로 이루어진 단어들은 전부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인간들의 소통과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다.
무언가를 확실히 보려면 극한의 가정을 하면 된다.
인간의 끝은 원시인과 멸종이다.
또 어떻게 보면 빅뱅 이후의 분자 혹은 원자, 아니면 시간이 좀 더 흘러 세포가 될 수도 있겠다.
그들은 문자로 소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들이 멸종하고 나면, 또 우리는 소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먼 미래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바로 그거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삶의 의미, 고통, 행복, 빛, 어둠 등,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가 그런 존재를 믿었던 것뿐이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게 모순이 아닌가.
삶의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생물학적인 번식을 제외한 다른 목표 따윈 원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잘 못하거나 서툴러도 괜찮다.
지구 밖에서 우리를 본다면, 누가 잘하거나 못하거나를 구분 지을 수 없을뿐더러,
먼 미래에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릴 테니까.
최근에 우울했어도 괜찮다.
그대를 둘러싼 망할 사회 시스템이 그에게 심어놓은 하나의 바이러스이니까.
특별한 약인 '시간'과 '사랑'으로 천천히 회복하면 된다.
모든 아픈 것들은 결국 전부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알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
결혼을 못하거나 애인이 없어도 괜찮다.
이대로 자손을 낳지 않아 죽으면, 그것 또한 인간의 진화에 이바지하는 거니까.
#합리화
하지만 나는, 그대들이 나처럼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행복이나 기쁨 같은 남들이 간절히 원하는 감정을 느끼면서 가성비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엇을 느끼느냐-이니까.
그러니깐 모든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사랑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편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그게 이 사회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것이 나름 합리적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을 편하게 살기 위해 누군가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그것을 잘 이용하는 것도 나름 좋은 방법이다.
나무들 사이에서는 나무가 되고, 개나리꽃 사이에서는 개나리꽃이 되어야지.
그래야 남들에게 질타받지 않고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사람들은 혼자가 될 줄 알아야 하고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 매주, 수년간 연습했다.
뭐, 나름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늘 말하듯이 좋은 점, 나쁜 점을 나누는 건 인간들 기준이니까 참고하고.
하여튼.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똑같은 삶을 살더라도 깨달은 채로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각자의 장단점도 확실하게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이건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그대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길 바란다.
20대엔 여느 20대들처럼, 30대엔 여느 30대처럼 살아가는 것도 나름 축복인 것 같다.
안다. 그대들이 듣기엔 헛소리지, 전부.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P.S.
- 오쇼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 저는 책 좀 읽다 자야겠어요.
- 좋은 밤 되세요.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매우 광활해서 예, 아니요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
그대는 질문 하나를 갖고 왔을 뿐인데, 7천 가지의 답변을 듣고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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