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잡아준 굵은 끈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어머니, 하나는 동생이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동생 또한 올해만 살다 죽으려 했었다.
살아온 매 순간 죽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다.
방법도 생각해 뒀단다.
산속에서 죽고 싶다고 했다.
시리도록 찬 칼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날에.
예쁜 하얀 눈 내리는 그 어느 겨울날에.
질소.
질소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술을 마시고 몽롱하게 기분 좋은 상태로 질소를 흡입한다.
산소마스크 대신 질소마스크로 호흡기에 연결하고 잠을 자면 된다.
조용히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사복사복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느끼며
질소를 마셔 저산소증으로 점점 의식이 사라지는 그런 죽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하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
동생은 나보다 똑똑하다.
막연하게 연탄불만 생각했던 나보다는 똑똑하다.
세상
내가 죽으면 이 세상도 사라지잖아.
동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동생은 전부 알고 있었다.
그 뒤의 세상은, 나에게 없는 세상이잖아.
그랬던 동생이 지금은 다르게 말한다.
존나 불쌍하게 살다 간 엄마가 우리를 남겼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엄마가 유일하게 우리 삼형제를 남겼어.
그런 우리들도 존나 불행하게 살면, 그건 엄마의 삶을 더 비참하고 불쌍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많은 말을 해주었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똑같이 살지 말라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으라고.
그게 엄마한테 효도하는 거고 엄마가 바라는 것일 거야.
앞으로 운동도 열심히 할 거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거야.
삼형제 결혼하는 걸 보는 게 엄마의 소원이었어.
셋 다 결혼하고 엄마의 유골을 뿌리자.
삼형제랑 엄마랑 사는 것이 엄마의 소원이었어.
큰 집을 사자. 세 가족이 같이 살자.
오토바이도 놓고 차고지도 만들고. 그렇게 살자.
진심인가.
진심이야.
다른 느낌이 든다. 이전에 동생이 다짐했던 그 무엇과도 다른 느낌을 받았다.
어른이네. 이제 어른이네.
끈
나를 위태롭게 붙잡고 있던 두 개의 끈 중 하나가 끊어져버렸다.
나머지 하나의 끈만 사라지면, 내 인생도 툭-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끊어진 하나의 영혼이 나머지 하나로 전해지듯 단단해진다.
진심인가.
내 삶이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더 이상 내게 남아있는 소중한 무언가가 없었다.
드디어. 썩어들어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되려나.
고통뿐인 삶이 더 이어지려나.
동생이 강하게 나를 잡아당기려나.
아니면 부러진 가지처럼, 중간에 잘려버리고 말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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