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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iary/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

꽃다발 #속편 2

by Yujin Choi 2024. 11. 17.

배신이 뭐라고 생각해? 알린이 물었다.

 

창 밖으로는 밤색 점퍼를 입은 중년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턱을 괴고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배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뭐? 잠시만,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배신이라.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우리가 특정한 행위를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그리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배신'의 기준은 다르지. 그러므로 '배신'은 존재하지 않아.
우리들의 마음에,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자 정의 내린 그 단어, '배신'이라는 무언가가 존재할 뿐이야.

그럼 불륜이나, 바람을 피우는 것은?

불륜은 불륜이지. 바람을 피우는 것은 바람을 피우는 것이야.

그것이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사회에서는 불륜이라고 부르더라.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야.
수백만 년 전, 인간들은 일부일처제가 아니었어. 오히려 그 반대였지.
인간 DNA의 본능은 한 남자가 여러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을 원해.
그것은 본능이야. 우리의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힘이지. 그러므로 불륜은 그냥 불륜인 거야. 
나쁜 무언가가 아닌 거야.

그렇구나. 그럼 만약 내가 누군가와 섹스를 하거나 키스를 하면 넌 어떨 것 같아?

마음이 아플 것 같아. 그뿐이야.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너의 마음을 이해하니깐.
너가 그러고 싶었을 테니까. 그 마음을 이해해.

 

십여초 간 이어진 침묵을 깨고 나는 말을 이었다.

있잖아, 알린.
배신이란, 기대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너가 누군가에게 아무런 기대감이 없다면, 배신이라고 느끼지 않을 거야.
반대로 너가 다른 누군가에게 바라는 마음이 있을 때, 그 누군가가 너의 바람을 무시했을 때 배신이라고 느낄 테지.

그리고 너도 알잖아. 현대 사회에서 기대감은 관계에서 실망을 일으키는 쓸데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나는 너에게 아무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아. 하지만 그것이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야.

너를 사랑해. 아무런 조건 없이.
나는 너를 사랑해. 너가 알린이니까.

이제서야 이해가 됐어. 너는 저번에 그 누구에게도 '기대감'같은 건 없다고 했잖아.
아마도 그게 '배신감'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이제야 이해가 됐어.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알린도 수수한 웃음을 내게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유진. 나는 우리가 우리의 '배신'에 대해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너가 누군가와 술을 먹고 키스했을 때, 그것이 너의 의도가 아니라 다른 여자의 의도였다면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가 누군가와 텍스트를 주고받고 그녀에 대한 감정이 점점 발전한다면, 나는 그것을 '배신'으로 간주할 거야.

응. 알겠어. 그렇게 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 누구랑도 나는 키스하지 않을 거야. 잠을 자지도 않을 거야.

 

알린은 환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Who knows.

Nobody knows. Exactly.

...그나저나 알린. 이건 너무 말장난 같잖아.
사람들은 같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담아.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그 단어를, 남들도 똑같이 생각한다고 생각해.

얼마나 멍청한지.
...나도 그렇지만.

넌 똑똑해, 유진. You're ador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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