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이지만 한낮의 기온은 20도에 달했다.
내리쬐는 태양빛에 반팔 티셔츠만 입고 나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십 분 일찍 하계역에 도착해 여느 때처럼 세이브존 쇼핑몰을 구경했다.
폭신해 보이는 털 조끼, 올드한 패딩, 계절에 맞지 않는 바다빛티셔츠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따뜻해 보이는 겨울 옷들을 보며,
'엄마가 이거 입으면 잘 어울릴 텐데. 이렇게 예쁜 거 사드리면 좋아하실 텐데.'
진열대 사이 좁은 통로 사이에 서서 잠시 멍하니 생각했다.
제2중환자실 앞에 도착해서 방문일지를 작성하고 면회용 방문 카드를 훑어보는데 어머니 이름이 적힌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카드가 없으세요?" Security 라고 적힌 옷을 입은 남자 직원이 물었다.
"어제도 왔었는데, 제가 면회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두고 나왔나 봐요." 나는 카드가 담긴 바구니를 뒤지며 대답했다.
그 남자는 직원용 전자카드를 태그해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가 한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방문 카드..." 그 순간, 열린 자동문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어머니가 누워있는 17번 침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머니의 상태을 살피는 듯했다.
잠시 뒤 그녀는 나를 발견했고 눈이 휘둥그레져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혹시 너가 맏이니? 아니면 둘째니?" 그녀는 내게 물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그녀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올린 선생님. 어머니와 종종 만나고 어머니께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분이다.
"둘째예요."
"저, 중환자실 안에서는 한 분만 계셔야 해요."
남자 직원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환자 한 명당 최대 두 명, 한 번에 한 명씩만 면회가 가능하다.
바이올린 선생님과 나는 일단 중환자실을 나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 기억 나니? 바이올린 선생님이야. 마스크를 써서 못 알아봤구나."
"아...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염색한 머리랑 얼굴 보고 기억이 났어요."
"그랬구나. 어머니 상태 보러 한 번 왔어.
어머니랑은 각별한 사이였거든. 어머니는 좋지 않으시구나."
"아... 네. 좋지는 않으세요. 선생님은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근데 스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시네.
뭔가 불편하거나 마음이 좋지 않은 게 있으신가 봐."
"네..."
그녀의 눈동자는 일 년 전 그대로 반짝였다.
나는 말끝을 흐린 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분명 알고 있는 게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참, 유학은 잘 다녀왔어? 영국 다녀온 거지? 얼마 동안?"
"네, 영국에 공부하러 일 년 동안 다녀왔어요."
"그래. 열심이구나. 그나저나 선생님이 오늘 바빠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평일은 시간이 안될 것 같고, 주말에 한 번 보자. 선생님이 밥 사줄게.
너도 평일에 회사 가느라 시간이 안 되겠구나."
"네, 평일에는 회사를 가야 해요."
"그래. 토요일에 되면 같이 만나서 밥 먹자. 그럼 선생님 먼저 가볼게."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녀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종종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
제2중환자실 내부는 여전했다.
여전히 심전도 기계음이 중환자실을 가득 채웠다. 창 밖으로는 참새 울음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서너 개의 심전도 기계음이 겹쳐 불규칙적인, 한 번도 보지 못한 생명체의 심전도 소리를 듣는 듯했다.
어머니의 빗지 않은 머리카락이 거친 해초다발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나는 몸에 덮인 담요를 들어 손을 잡으려 했다.
이틀 전, 어머니의 손은 점점 부어 부종이 생기더니 얼룩덜룩한 백반증 환자처럼 변해있었다.
수성매직으로 그려진 점선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조직의 괴사가 악화되면 절단 수술로 들어가겠지.
하지만 오늘 어머니의 손은 새하얀 붕대로 감겨있었다.
아... 수술했다는 소식은 전해 듣지 못했는데. 나는 급하게 손가락 다섯 개를 확인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행히도 어머니의 왼손은 절단된 부분 없이 멀쩡했다.
아마 부종 때문에 드레싱을 마치고 감염을 피하기 위해 붕대로 감아놓은 듯했다.
발가락은 따뜻했지만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검보랏빛 발가락, 그 발가락을 따라 그려진 점선들이 무딘 칼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어머니. 저 왔어요. 둘째예요.
바이올린 선생님 왔다 가셨어요. 어머니랑 각별한 사이라고 하시던데요.
저야 알 길이 없으니.. 바이올린 선생님이랑 많이 친하셨어요? 마지막까지?
스님은 바이올린 선생님을 싫어하시거든요. 사람 성격이 그러면 안 된다면서요."
어머니께 여러 소식들을 전해드렸다.
11월인데도 낮에는 20도까지 오른다는 등, 하늘은 푸르다는 등.
말하는 중간마다 사랑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머니. 많이 사랑해요. 둘째가 많이 사랑해요.
둘째가 어머니 많이 많이 사랑해요."
카메라 렌즈의 포커스가 나간 듯 눈앞이 흐려졌다.
오늘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
어머니 침상 옆, 18번 침상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누워계셨다.
우리 어머니와는 상태가 확연히 달랐다.
그는 앞을 볼 수 있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다.
생각을 할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였다.
불공평해. 하지만 이 세상에 '공평'이란 것이 존재했던가.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이 세상에서
'공평'이라는 단어에 애초에 의미가 있었던가.
*
"효자네."
옆쪽 침상에서 들려왔다.
나를 향해 말한 것임이 분명했음에도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
효자라... 어머니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본 채 생각에 잠겼다.
마음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는 것이 효성이고, 효성이 지극한 자를 효자, 효녀라 한다.
다만 부모를 섬기는 것은 부모가 살아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던가.
아니, 부모의 정신이 온전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말이다.
부모가 병에 걸렸을 때 병수발을 든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잘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효자였을까.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나는 효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효자가 아니다.
만약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정신을 차려 깨어나신다면, 나는 효자가 될까.
어쩌면, 나는 효성으로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이 아닌,
단지 짙고 어두운 죄책감에, 그 불편한 덩어리를 조금이라도 떨쳐버리고자 찾아오는 걸까.
...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
병원 앞에는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은행나무가 도로변을 따라 줄을 지어 서 있다.
단풍의 시기가 많이 늦어졌다. 내년을 두 달 앞둔 11월이지만, 초록빛이 여전한 활엽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도블럭 위에는 주황, 노랑 빛깔의 낙엽들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가방을 고쳐 매고 버스에 올라탄다. 한국에서 이층 버스는 몇 번 타보지 않았다.
영국 브라이튼에는 이층 버스가 흔하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단층 버스가 많다.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 두 좌석이 붙어있는 의자를 찾아 앉았다.
햇빛이 잘 드는 앞 좌석이었다.
블루투스를 켜고 무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잔잔한 선율의 피아노 곡을 재생시킨 뒤,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십 분이 지났을까, 따스한 11월의 햇살 탓인지, 전날 밤에 다섯 시간밖에 잠을 못 잔 탓인지,
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몰려왔다.
잠깐 쉬어도 괜찮겠지.
책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버스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나도 모르는 새 눈이 감겼다.
*
"어머니 아프진 않으세요? 가려운 곳은 없으시고? 엄니 배고프겠다."
어머니의 볼을 어루만졌다.
"어머니. 이제 곧 괜찮아진대요. 어머니 손도 금방 괜찮아졌잖아.
의사가 조금만 더 힘내면 병이 나을 거래요."
인간들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걸 알고 나면 판단력이 급격하게 흐려진다.
효과가 없는 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비싼 약을 사 먹는다.
그리고 병이 나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그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면.. 안 좋다고도 말할 수 없겠지.
그래서 어머니한테는 좋은 말만 해드리기로 한다.
앞으로도 쭉.
"근데... 어머니. 힘들면 쉬셔도 돼요. 괜찮아요.
제가 어머니랑 이야기를 좀 하고 싶긴 한데, 괜찮아요.
어머니 너무 힘들면 쉬셔도 돼요.
그리고 조금 나중에 극락에서 만나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은 곳, 욕심이 없어서 모두가 다정할 수 있는 곳,
어머니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는 곳."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실까.
"어머니가 원하시면, 제가 먼저 극락에 가 있을게요.
뒤따라오셔서 저랑 같이 놀아요."
호흡이 불안해지고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붉어진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근데 어머니는 그걸 원하지 않으시겠죠?
삼 형제가 그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시겠죠? 언제나 기도하셨듯이요.
그럼 어머니 조금만 더 힘내요.
제가 이 인간계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머니를 보고 싶을 거거든요.
그러니깐... "
목이 메어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목이 메도록 울었던 적이 또 언제였던가.
다섯 가족이 다 같이 함께 살면서 아버지한테 맞을 때였던가.
온몸에 피멍이 들고, 상처 난 곳을 매만지며 울면서 잠에 들 때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분노에 잡아먹혀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기필코 언젠가 내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이리라 다짐했을 때
그때였던가.
우리 가족은 가족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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