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하루도 남지 않았다. 올 가을은 유난히 길었다.
아직도 거리에는 마르지 않은 잎에 반사된 초록빛깔의 햇빛들로 가득하다.
바람을 느껴본다. 어머니는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차가운 초겨울의 바람을.
은은한 단풍색은 온데간데없고 비명소리와 고통으로 가득한, 따갑도록 스며드는 그 겨울바람을.
계절이 추억을 싣고 온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너의 인생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일들은 주로 겨울에 일어났었다.
그래서일까, 겨울이 찾아오면 너의 얼굴은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체념하듯 힘이 풀린 눈은 너의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잘 웃어주던 너의 입꼬리에서는 절망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래서일까, 겨울에는 너를 따라 나도 말을 아끼곤 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올 말들이 어떻게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 짐작이 되었기에.
어머니. 내일이면 입동이에요. 사람들은 이제 겨울옷을 꺼내 입고 다녀요. 여긴 춥지 않으세요?
나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던진다.
정욱이보고 그랬잖아요, 둘째 언제 돌아오냐고. 저 여기에 있어요. 작년에 어머니랑 같이 먹었던 음식이 기억나요. 복숭아랑 카스테라. 전부 다 몸에 안 좋은 음식들이었잖아. 그래서 가끔은 생각해요. 억지로라도 어머니 식단을 조절했으면, 어머니는 지금 눈을 뜨고 나랑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근데 어머니, 식단 조절을 했더라도, 하지 않았더라도, 크게 차이가 없었을 거라면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더 낫잖아요. 물론 차이가 없진 않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머니 행복하셨잖아요, 그쵸? ...저는 알 수가 없네요.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깐 눈을 뜨고 일어나서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불효자면 불효자라고, 서운하면 서운했다고...
나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찾아 헤맨다.
*
손가락 두 개 크기의 검정색 무선 이어폰 케이스를 꺼낸다. 익숙하게 왼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는다.
어딘가 쓸쓸한 빗소리가 담긴 수면음악을 너는 재생한다.
너는 여섯 시간도 채 자지 못해 눈꺼풀이 무거웠다. 너의 시선은 달리는 버스와 함께 힘없게 흔들렸다.
버스와 한 몸이 된듯, 누군가 머리칼을 잡고 잡아당기듯 움직여지는 머리에, 버스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너는 알지 못했다.
바람이 일 때마다 팔랑팔랑 떨어지는 누르스름한 설탕단풍잎에게서 너는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번쯤 자유롭게 높이 날아오르리라. 높고 더 높게 올라, 태양빛이 뜨거워질 정도로 높이 날아올라
사포로 등줄기를 긁어내듯, 뜨겁고도 쓰라린 고통이 느껴지는 높은 하늘에서 날개가 타들어갈때
질끈 감은 눈으로 모든 아픔을 기어이 날개로 집중한 뒤 추락하면서, 차갑고도 뜨거운 바람을 느끼며 결국 사라질 너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고통이 없었으리라.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웃으며 이 세상에서 지워지리라.
너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1-20 (0) | 2024.11.25 |
---|---|
2024-11-17 (1) | 2024.11.17 |
정리 (2024-03-16 ~ 2024-10-06) (0) | 2024.11.03 |
2024-11-02 (토) (1) | 2024.11.02 |
2024-10-29 (화) (0) | 2024.10.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