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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번종점2

[복지회관 운동장] 이따금씩 주말마다 복지회관 운동장으로 공을 차러 갔다. 그 운동장은 집에서 걸어서 십오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쌈지마당을 지나 불암산 둘레길을 넘어가면 넓다란 운동장이 나오는데, 그곳이 복지회관 운동장이다. 형이랑 동생이랑 팀을 바꿔가며 축구를 했다. 그렇게 놀고 있을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볼 수 있는 먼 거리에서 천천히 방황하듯 걸어 다녔다. 한적한 복지회관 운동장에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아버지는 더욱 경계하며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복지회관에서 놀 때는 유일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맘 놓고 깔깔대며 웃어서는 안됐다. 그렇게 웃으면 멀리서 아버지가 웃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럼 우리 셋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아버지의 말이 끝날 때까지 땅을 바라.. 2025. 2. 21.
[쌈지마당] 한글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주었다. 사람인변, 두인변, 받침, 제부수 등 손수 한자 부수들을 표로 만든 뒤 코팅하여 우리 형제들에게 하나씩 소리내어 읽어주었다. 천자문과 사자소학은 어린 삼 형제들의 교재였다. 날이 좋을 때는 불암산 산속이나 쌈지마당에서 돗자리를 펴고, 구름이 잔뜩 낀 짙은 날이면 집에서 우리 삼 형제는 늘 어머니와 함께 천자문과 사자소학을 공부하였다. 집이 학당이었고 어머니가 선생님이었고 우리들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날 일, 달 월, 찰 영, 기울 측. 별 진, 잘 숙, 벌일 렬, 베풀 장. 느티나무 고목이 그려낸 커다란 그늘이 시원하다. 불암산 너머로부터 실.. 2025.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