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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20

2024-11-26 (2) 동생 동생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잡아준 굵은 끈이 두 개 있었다.하나는 어머니, 하나는 동생이었다.어머니는 돌아가셨다.동생 또한 올해만 살다 죽으려 했었다.살아온 매 순간 죽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다.방법도 생각해 뒀단다.산속에서 죽고 싶다고 했다.시리도록 찬 칼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날에.예쁜 하얀 눈 내리는 그 어느 겨울날에.질소.질소는 쉽게 구할 수 있다.술을 마시고 몽롱하게 기분 좋은 상태로 질소를 흡입한다.산소마스크 대신 질소마스크로 호흡기에 연결하고 잠을 자면 된다.조용히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사복사복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느끼며질소를 마셔 저산소증으로 점점 의식이 사라지는 그런 죽음.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하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동생은 나보다 똑똑하다.막연하게 연탄불만 생각했던 나보다.. 2024. 11. 26.
2024-11-26 아빠아빠를 만나볼 생각이다.2018년 5월이었나.그 후로 6년이 넘었구나.이젠 나 스스로 준비가 된 것 같다.아빠를 만나볼 준비,아빠에게 엄마에 대해 들을 준비.알고 싶다.아빠가 왜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는지.아빠가 왜 형제들과 사이가 틀어졌는지.왜 엄마가 다른 남자와 잤다고 생각하는지.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이제는 건조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이야기우리 가족 이야기들을 적고 엮어 소설로 써볼 생각이다.내가 필력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보려고 한다.고통과 아픔으로 가득 찬 어머니의 삶을.그 뒤로 숨겨진 아버지의 이야기를.점점 잃어가는 삼형제의 유년의 이야기를.더 바래기 전에, 더 흐릿해지기 전에 적어두려고 한다. 어머니가 쓰신 시들도 적으려 한다.기회가 된다면 책으로도 만들려고 한다.. 2024. 11. 26.
2024-11-25 장례김태현 선생님이 이틀이나 찾아와주셨다.우민이도 삼일이나 같이 있어주었다. 회사 동료들도 많이 찾아오고, 친구들도 와주었다.찬호, 준성이와 동영이가 찾아왔다.찬호는 화환까지 보내주었다.중학교 때 이후로 만나지 않았던 진보도 찾아왔다.어머니를 한결같이 찾아오던 김희경 바이올린 선생님은 어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하셨다.왜 그렇게 살다 가냐. 왜 그렇게 불쌍하게 살다 가냐...왜 그렇게 외롭가 살다 가냐...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둘째 미숙이모도 서럽게 우셨다.  제사상을 차려야 한단다.3일장 중 이틀째에 제사상을 차려야 한단다.아.항상 조상님 제사를 지내시던 어머니.이젠 우리가 당신의 제사를 지냅니다.이곳 어디선가에서 어른어른 계신가요아픈 다리 사라져 훨훨 날고 계신가요아직 근육과 피부가 뼈에 .. 2024. 11. 26.
2024-11-20 2024년 11월 20일 12시 29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회를 갔었다.병원에 도착하기 20분 전,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머니 상태가 위독하다고.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고.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아 형에게 전화가 왔다고.나는 버스를 타고 병원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곧 도착한다고 말했다.11시부터 30분 간 본 어머니의 모습은, 형 말대로 평소와 달랐다.눈을 뜨고 계셨고 숨쉬는 것이 편해보이지 않았다.흔히 말하는 숨이 곧 넘어갈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맥박도 일정하지 않았고 불규칙했다.나는 엄마의 볼을 어루만졌다.곧 괜찮아질 거예요. 삼형제 전부 어머니 곁에 있어요. 의사 선생님도 어머니 곧 괜찮아질 거래요.면회 시간이 끝나고 나는 병원 근처에 있었다.오늘은 병원 근처에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주치의의 말.. 2024. 11. 25.
2024-11-17 그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11월 중순, 입동이 지난날에도 한낮의 기온이 20도까지 올랐다는 것을.지난주에 초록 옷을 입고 있었던 은행나무들은, 전부 노란 옷으로 갈아입었다.차가운 늦가을바람이 일자 나무에서는 흙먼지를 털어내듯, 붙잡고 있던 낙엽들을 놓아준다.너는 길게 뻗은 가로수길을 걷다 말고 은행나무 한 그루를 바라본다.살랑살랑 부는, 그렇게 시리지는 않은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천천히 올린다.일 년 간 영국 브라이튼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나는, 새삼 한국은 바람이 세차게 불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떨어지는 태양빛 은행나무 잎을 흘겨 뜬 눈으로 응시한다.손끝으로 툭 건들면 바스라져 버릴 듯, 길바닥에 떨어진 연약한 플라타너스 잎에게도 눈길을 준다.우리 엄마의 삶은 초록색 잎이었을까, 노란색 잎.. 2024. 11. 17.
2024-11-07 입동이 하루도 남지 않았다. 올 가을은 유난히 길었다.아직도 거리에는 마르지 않은 잎에 반사된 초록빛깔의 햇빛들로 가득하다.바람을 느껴본다. 어머니는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차가운 초겨울의 바람을.은은한 단풍색은 온데간데없고 비명소리와 고통으로 가득한, 따갑도록 스며드는 그 겨울바람을.계절이 추억을 싣고 온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너의 인생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일들은 주로 겨울에 일어났었다.그래서일까, 겨울이 찾아오면 너의 얼굴은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체념하듯 힘이 풀린 눈은 너의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사람들에게 잘 웃어주던 너의 입꼬리에서는 절망의 이야기가 가득했다.그래서일까, 겨울에는 너를 따라 나도 말을 아끼곤 했다.내 입에서 튀어나올 말들이 어떻게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 짐작이 되.. 2024. 11. 7.
정리 (2024-03-16 ~ 2024-10-06) 올해 3월부터 10월 초까지의 시간을 정리했다.글을 다시 올리기에는, 시간이 뒤죽박죽 되어버릴 것 같아 본문을 수정하는 선택을 했다. https://eugene98.tistory.com/207 2024-03-16 ~ 2024-10-06 (일)2024-03-16동생이 보내온 사진.어머니는 살구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계시고 그 주변으로 십여 마리의 강아지가 지키듯 앉아있다.곰돌이-갈색 강아지 이름-는 진작에 오른쪽 눈에 백내장이 찾아eugene98.tistory.com 어머니가 맞이할 죽음에 대해 조금 덤덤해졌다.그러다가 또 오랫동안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괜찮아지는 신호의 침묵일까,상처 입은 병사의 죽기 전, 미동도 없이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그런 침묵일까. 2024. 11. 3.
2024-11-02 (토) *11월이지만 한낮의 기온은 20도에 달했다.내리쬐는 태양빛에 반팔 티셔츠만 입고 나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이십 분 일찍 하계역에 도착해 여느 때처럼 세이브존 쇼핑몰을 구경했다.폭신해 보이는 털 조끼, 올드한 패딩, 계절에 맞지 않는 바다빛티셔츠까지 진열되어 있었다.따뜻해 보이는 겨울 옷들을 보며,'엄마가 이거 입으면 잘 어울릴 텐데. 이렇게 예쁜 거 사드리면 좋아하실 텐데.'진열대 사이 좁은 통로 사이에 서서 잠시 멍하니 생각했다. 제2중환자실 앞에 도착해서 방문일지를 작성하고 면회용 방문 카드를 훑어보는데 어머니 이름이 적힌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카드가 없으세요?" Security 라고 적힌 옷을 입은 남자 직원이 물었다. "어제도 왔었는데, 제가 면회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두고 나왔나 봐요." .. 2024. 11. 2.
2024-10-29 (화) #따뜻함왜 이렇게 눈물이 흐를까.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아마도,어머니가 내게 태양같이 따뜻한 존재였기 때문일 테지.언제나 마주하는 태양이기에 감사함마저도 익숙해져 버린 그런 존재.차라리 본 적이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내가 이미 그 따스함을 느껴버려서, 그 눈부신 해를 보고 찡그린 적이 있어서.지금까지 나를 비추는 태양이 사라지는 것.빛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다시는 그 따스한 태양을 볼 수 없게 되는 것.그래서 슬픈 것일 테지. #엄마손가락이 끝에서부터 점점 검게 타들어간다.마치 강렬하게 불타다 중간에 꺼져버린 연탄의 형상이다.  #어리석음어느 날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너무 예쁘다거나,날씨가 너무 좋아서, 혹은 그냥 막연히 기분이 좋아져서.미련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너무나 어.. 2024.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