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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26년

이제 와서

by EugeneChoi 2026. 3. 17.

이제 와서 엄마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꼴이란.
참 봐줄 만하다.

동생이 그런 네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도와주지도 않은 게, 입만 살아가지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과거 나의 행동들에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그러기에, 우리 약속 하나만 하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기로.
엄마에 대한 슬픔은, 나 혼자서만 꼭 끌어안기로.
엄마를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은, 우리 집에서만 고이고이 퍼지기로.

그렇게 하자.


어제 상담선생님과 가족 이야기를 했지.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어머니를 이야기했지.
형과 동생, 친척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또 했지.

울고 싶었지.
길을 걷다 보이는 행복한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지.
나는 이유를 모른다고 말했지만, 알고 있겠지.

그게 부러웠겠지.
내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따뜻한 아버지가 그리운 거겠지.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건강하고 예쁜 어머니가 고픈 거겠지.
위로를 받고 싶었겠지.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품에서 울고 싶었겠지.
어린아이처럼 와락 안겨 그냥 서럽게 엉엉 울고 싶었겠지.

무언가에 기대고 싶었겠지.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나타나기를 바랐겠지.
어린 네가 그랬겠지.

그 어린 내가
참으로 바라는 게 많았구나.
공허 뿐인, 고통 뿐인 이 세상에서
잘 살면 얼마나 더 잘 살겠다고, 그런 걸 바랐나.


상담이 끝나고 상담 선생님이 물었지.
"이야기할 동안에 어떤 마음이었어요?

나는 말했지, 별 마음 없었어요.

선생님은 다시 물었지, "울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지.
"네, 울고 싶었어요."

...근데 울지 않았어요.
그냥 참았어요. 그냥요.

그래요. 오늘 집에 돌아가고 나서, 혹은 내일이나 모레에
오늘 흘리지 못한 눈물이 나올 수 있어요. 울어도 괜찮아요.

나는 네, 대답했지.
그리고 오늘이 그 날이지.
사실 어제도 울고 싶었는데, 그냥 기타를 쳤지.
기타를 치니까 눈물이 새어나올 틈을 찾지 못했지.

오늘은 조금 피곤한 탓인가,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조금 차분해진 탓인가,
머릿속이 음식물이 묻은 설거지거리로 가득 찬 싱크대 같지.

그래도 언젠가 이 싱크대는 정리되겠지.
다친 손가락 때문에 설거지를 못하고 있지만
싱크대가 사라지던, 그릇들이 깨져 없어지던
누가 대신 설거지를 해주던
이 집이 사라지던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될 거야.

그리고 세상은
내가 없었을 때와 아주 똑같이
아주 평범하게 흘러갈 거야.

그럼.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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