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기
훈련소 때 적었던 일기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나는 어렸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때는 더 어렸다.
하지만 어리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어린 나는 지금의 나보다 강했다.
의지가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삶에 애착이 있었다.
나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했고, 그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저걸 썼다니' 하는 표현들도 종종 보였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글을 잘 썼다.
그때의 일기를 읽어 내려가면서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피어올랐다.
7년 전의 나. 아는 사람이 없는 곳, 낯선 장소, 낯선 직업.
그럼에도 나는 살아남으려 애썼다.
솔직하게, 나는 그때 슬프지 않았던 것 같다.
슬플 겨를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다.
고된 훈련과 낯선 환경에 놓이면 슬픔은 시간 속에 잊혀진다.
아마 내가 지금 운동을 멈추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운동을 멈추면 차가운 새벽공기 속에 스며든 슬픔이 나를 또 휘감아올까 봐.
그래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까 봐.
그래서 어떻게든 내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는 본능,
그것이 나를 숨차게 만드는 운동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처럼
두 시간 수영을 하고 오더라도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피어나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내 눈앞을 가릴 때도 있다.
그것도 좋다.
그것도 그거대로 좋다.
#회사
회사가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하다.
다시 슬픔으로 돌아가고 싶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지나 다시 겨울이 오듯
나는 오늘도 눈 소복이 쌓인 외딴집을 홀로 찾아간다.
그곳을 찾아가선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
몸을 눕히고 눈을 감는다. 천천히 호흡에만 집중한다.
배고픔이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진다.
그렇게 내 삶도 끝나간다.
#원동력
그동안 나를 살도록, 나를 움직이도록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내 어머니였을까, 내 형제였을까, 내 친구들이었을까.
아니면 내 마음속에 피어난 새싹, 어느새 아름드리 자라 버린 내 나무,
나의 우주, 나의 밤하늘, 그곳에서 찬찬히 활강하듯 떨어지는 밤이슬을 마시고 자라난
슬픔 고통 외로움 애달픔 가득한 나의 나무,
기댈 곳 없어 스스로 만들어낸,
그 나무였을까.
#마음
오늘도 피곤하다.
내일도 피곤할 것이고 모레도 피곤할 것이다.
내 삶은 피곤하다가 끝날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판다 코알라처럼.
그것도 나름 좋지 않나.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7년 전 나의 마음을 갖고 일기를 적었다.
막힘 없이 줄줄 써내려가는 것이 꼭 내가 살던 집 뒤쪽의 계곡물 같다.
졸졸졸. 쏴아아-
계곡물 소리를 추억 깊숙한 곳에서 꺼내 재생한다.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은 왠지 밤하늘을 떠다니는 꿈을 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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