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잠에 들었다가 소변이 마려워 부엌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슬리퍼를 신고 부엌에 쪼그려 앉아 계신다. 참방참방 쪼르르르- 천을 물에 헹군 뒤 비틀어 짜자 때국물이 세숫대야로 떨어진다. 세숫대야를 기울여 더러워진 물들을 하수구로 흘려보내신다. 엄마방이라고 불렀던 작은 방은 부엌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위아래 내복바람으로 중간 문턱에 서서 엄마를 바라본다. 잠에서 덜 깬 듯 작은 단풍낙엽 같은 손으로 눈을 부비적거린다. 어머니가 부엌을 다 사용하실 때까지 기다린다. 시곗바늘은 숫자 9를 가리키고 있다. 부엌문틈 사이로 건조한 한기가 밀려들어온다. 내복으로 덮이지 않은 발등과 손등, 눈코입이 시리다. 찬바람은 내게 왜 잠에서 깼냐고, 얼른 다시 들어가서 누워 자라고 보챈다. 어린 인기척에 어머니는 뒤를 돌아 나의 존재를 확인했다.
쉬야? 아니.
짧은 문답이 오간 뒤 어머니는 속도를 내서 빨래를 마무리했다.
바지 내리고 이리 와.
나는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뱀이 허물 벗듯 내복 하의와 그 안의 천포대기를 벗었다. 슬리퍼를 신고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니는 쪼그려 앉은 채로 내 양쪽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은 뒤 내 몸을 들어올렸다. 나는 공중에서 반사적으로 두 다리를 기억자로 올렸다. 그렇게 어머니의 허벅지 위에 어머니와 마주 보며 앉았다. 어머니를 꼭 안았다. 볼일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품은 따뜻했다. 어머니는 작은 푸른색의 작은 플라스틱 양동이를 내 엉덩이 아래로 둔다.
내가 볼일을 다 보면 어머니는 항상 바가지에 수돗물을 받았다. 어머니는 그 얼음장같이 차가운 수돗물에 손을 적시고 내 아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수건으로 내 피부에 묻은 물기를 제거해주었다.
됐어. 이제 들어가.
나는 세 걸음 만에 부엌과 엄마방 사이의 문턱으로 돌아왔다. 뱀이 남기고 간 허물처럼 벗어둔 천포대기와 내복을 순서대로 주워입었다. 엄마방과 붙어 있는 아빠방으로 들어가 형과 동생 사이에 다시 눕는다. 행여 형과 동생이 잠에서 깰까 같이 덮는 이불을 조심해서 고친다. 찬 공기가 가득해 잘 때는 항상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세상과 단절된 이불 안이 훈기로 가득 찰 무렵, 방 안은 규칙적인 고요한 숨소리들로 가득했다. 철문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귀뚜리 소리가 차갑고 긴 겨울밤 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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