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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유소시

[첫 기억]

by EugeneChoi 2025. 1. 30.

  어둠이 내린 불암산 둘레길 주변, 무릎 높이의 화강암 돌담 위에 서서 울고 있었다. 형과 동생은 엄마의 도움으로 돌담을 내려갔다. 어머니는 양손으로 형과 동생의 손을 잡은 채 내게 얼른 내려오라며 보챈다. 그 높이가 참 무서웠다. 엄마.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어머니를 바라보며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어머니의 얼굴 뒤로 비치는 붉은 가로등 불빛이 눈물에 기다랗게 번져 내게 들어온다. 아버지도 얼른 내려오라며 나에게 소리치기 시작한다. 아버지에게 맞기는 더더욱 싫어 두 눈을 질끈 감고 화강암 돌담 위에서 아스팔트 바닥으로 힘차게 뛰어내렸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이내 울음도 멈췄다. 잘했어. 우리 인니 잘했어. 어머니가 말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는 두려움을 넘었다는 것보다, 넘은 것을 격려해주고 따뜻한 말로 응원해 주었던 어머니의 말들이 내 마음을 토닥여주었다. 아마도, 태어난 지 사 년째 되던 이 기억이, 느닷없이 시작되어 버린 내 삶의 첫 기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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