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머니의 창작/어머니의 묘한 삶, 묘연사

함박눈..영하7도 (2013.12.12.)

by EugeneChoi 2024. 12. 28.


 
함박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얗다
모두 눈 쓰느라 빗자루 소리가 요란하다
대사님이 일찍 들어오셨다.
손이 너무 시렵다고 하시면서 젖은 면장갑을 벗으시는데
차가운 손이 꽁꽁 얼어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다들 장사가 너무 안돼서 큰일이라고 하신다
박스 줏어가지고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신다
대사님은 정해 놓고 가지고 오는데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하루종일 줍는 이들은 아우성들이라고 하신다.

2통에 여자분도 발이 얼어서 썩어 나가게 되었는데도 박스를 찾아 다닌다
예천댁도 참 불쌍타
시집온 그날부터 남편한테 의처증으로 맞고 사는것이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무슨 원한이 그리도 깊은 것일까?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 수발에
밤낮으로 박스줏어 돈만들어 들어가면 남편의 의심은 고통으로 다가오니..
누가 대신할수 없는 인과 업보인것이다.

장사가 너무 안돼요
지나가시는 대사님을 보고 황보혜자님이 하소연을 한다.
지금은 다 안돼서 야단들이오.
저쪽 살빼는 집도 문 닫았고
치킨집도 없어졌고
커피집도 손님없다고 야단이고
채소가게도 하나 문닫고 어디로 갔는지 조용하고요
인테리어 다시 한다고 돈천만원 들었다고 하는집도 글쎄 얼마나 할라는가...
권리금도 포기하고 나가는 집도 있고요..모두 난리들이오.

...

여름에 뻥 뚫은 부엌 담을 아직 막지 못해 수도가 얼을까 걱정되어 물을 조금씩 틀어 놓았다.
올 여름 너무 더워서 뒷집 지붕 무너진 쪽으로 부엌벽을 허물었더니
앞마당에서 맞바람이 불어 들어 와 시원하게 잘 지냈었다.
헌데 아직 창문을 만들지 못해 큰 비닐로 가려 놓았다
부엌 앞에 놓을 연탄난로를 사려고 4만원을 모았는데
뒷방가스가 떨어져 가스비로 썼다.
가스 한통이 4만3천원이다.
식당같은 곳은 3만 5천원에 배달해 준다
얼마전에는 사료가 부족해서
닭머리 삶아서 강아지들 먹이로 줄 때에는
가스를 무척 많이 썼었다
해서 가스값을 1000원이나 2000원씩 깍아주곤 했다
이번에도 3만8천에 주고 갔으니 5천원을 깍아준 셈이다.
강아지들도 많고 대사님 고생하신다고
어려운 사정 봐 주는 거라고 하니 고마울 뿐이다
연탄난로 살 때 까지 수도가 얼지 않아야 할텐데..

방문도 없는 방들이다
잠 잘 때도 닫을 수가 없다
강아지들이 물 먹으러 나가야 되고
대 소변을 보러 종일 계속 들락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일러 들어오는 방 하나도
따뜻하게 얇은 이불 하나 깔아 놓을 수가 없다
강아지들이 쉬를 해놓기 때문에.
저들 이불에도 날마다 쉬를 해 놓아서 매일 한두개씩은 빨아야 한다
얼마전에는 사람들이 웬만히 깨끗한 이불들을 많이 잘들 버려서 줏어다가
우리견공들 이불로 잘 썼는데 요즘은 통 버리지를 않아서
방안 견공들 이불은 여기저기 떨어지고 헤어진 곳을 꿰매서 쓴다.
대소변을 한 곳에서 보도록 화장실을 정해 줄 만한 집안 구조가 되지 못해서
저들도 헷갈리고 매일 따라다니며 치워야 하는 우리도 무척 힘들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춥게 살아야 한다

내일이 증조부님 제사라서 방에서 시금치를 다듬는데
손가락이 너무 차갑고 시려워서 1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다듬으니 좀 났다.
보일러 없는 방은 가스히터를 잠간씩 켰다가 얼른 끈다.
없는 살림에 제사는 빨리도 다가 오는듯 하다.
겨울철엔 더 제삿날이 가깝게 다가온다.
스님이 되어 도 닦느라 힘들고
배고픈 중생들 먹이느라 바쁘고
박스시주 다니시느라 앉을새도 없이 움직이시는 증손자에게
제삿날이라 하여 찾아 오시기도 미안하실것 같으시다.

그래도 대사님은 틈틈이 형편따라 시간되면
한 두 가지씩 제수거리를 사다 놓으셨다
오늘도 고사리 도라지 두부 콩나물을 사 오셨다.
강아지들은 감이 제일 좋은지 다 먹고 없는 단감 달라고 끙긍댄다.
군고구마도 주고 삶은 계란도 주고 배도 주고 보리건빵도 주고 했건만
고놈의 단감생각이 나서 못 견디겠는지 자꾸 아쉬운 표정으로 끙긍댄다
하여 대사님왈...기다려. 내일 꼭 감 사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언제 약속 안지키는거 봤어?
나는 해준다고 약속하면 꼭 해주니까 내일까지만 기다려라..하고 약속하신다.

방도 춥고 부엌도 춥다.
손도 시렵고 발도 무척 시렵다.
내일 종일 제사음식 하려면 좀 많이 떨어야 할 것 같다.
함박눈 내리고
영하 7도의 추운 날
그래도 증조부님과 두 할머님들께서 사이좋게 나란히 다정하신 모습으로
누추하나마 증손의 수행처소로 강림하셔서
정성으로 준비하는 음식 흠향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무 관세음 보살.
 


2013.12.12  함박눈 내린 날
관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