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오는 날
중계본동104 번지 마을의 한폭 수채화를 바라보며
홀로 감상함도 여유롭고 괜찮은 분위기다.
날이 춥기 전에는
우리 견공들이 여럿이서 차지하고 들어 앉아서
놀고 자고 하면서
볼일이라도 보러 들어 갈 양이면
이리저리 밀치고 발을 들여 놓고 함께 앉아서
저들은 저들대로 할짓하면 되고
나는 나대로 내 볼일만 보면 되는 곳
서로 얘기도 하면서
견공들 가려워 긁는 곳
진드기도 부지런히 열심히 잡아 주면서
함께 정 쌓으면서 시간 보내는 곳.
70도로 찌그러지고 기울어져
각목 몇 개에 이것 저것 줏어다 붙이고 막아 놓은
베니다 판대기 몇개로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참으로 힘든 화장실.
이런 화장실에 머무는 칙신도
참 힘들것이다.
춥고 비까지 오는 지금은
나 혼자 독차지다.
비 오는 겨울날의 수채화.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104번지 마을의 풍경들.
그 동안 많은 사진 작가님들 화가님들이 이곳을 찾아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라 해서
재개발 지역의 사라져 갈 역사 속의 옛 추억이 담뿍 담긴 104번지 마을의 풍경들을
구석 구석 골목마다
집집마다 재미난 얘깃거리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가고
화폭속에 그려 넣고
인간사 정 있는 사람사는 모습들에
무척 갈망해 하는 열정들을 보여 주곤 했다.
여름날 길가 민들레 한 포기도 정 있어 보여 아름답고
88계단 깨어지고 부서진 틈들 사이로
굳세게 푸른 생명들 꽃 피운 아름다움.
허물어져 가는 길가 담벼락에 어우렁 더우렁 매달려 있는 하수오 열매들.
엉킨 숲속에서 서로 서로 의지해서 한 세상 살아 보겠노라고
다닥다닥 붙어서 뾰죽이 고개들 내미는 이름 모를 향기로운 풀들.
거센 폭풍우에 언덕 위 여러 지붕들 뒤쪽
큰 고목 아카시아 푸른잎 큰 가지들이
마구 흔들리며 소용돌이 치면서도
끝내 버티어 내는 굳센 강인한 모습.
골목길을 누비며 마구 뛰어 다니면서 신나게 노는 견공들.
집들 사이로 은행나무 감나무 밤나무 아카시아
향기로운 라일락 목련 꽃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개나리 덤불들이 담장되어 이어진 곳 끝집에는
붉은 닭벼슬 꽃이 마당 한켠에 가득 피어 있고
애기사과꽃이 대문 앞에서 오가는 이들을 반겨 주고
호두나무에 개오동 사철나무에 주홍열매 달린 작은 나무 대문집.
겨울이면 산수유 열매가 붉게 매달려 화려함을 과시하는 집들도 있다.
구부러지고 꼬부라진 골목길들을 걸어 다닐라 치면
무척 정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값 나가는 비싼 꽃과 화분들은 아니지만
택배 받은 아이스박스 통들과 오래된 낡은 화분들에
흔히 볼 수 있는 화초들이 비좁은 골목길마다 줄줄이 늘어서 있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히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이웃들과의 정겨운 삶의 진 면목일 것이다.
내가 사진 작가라면 요것 조것 재미있는 여러 장면들을 잘 찍어 볼 테지만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그러니 두눈 카메라로 마음작가가 보아 두는 것으로 만족이다.
104 마을의 겨울비 오는 날
바라 보이는 지붕들.
빨간 기와지붕과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이 이집에서 저집으로 연이어져 있고
그 지붕 위로 수많은 전기선들이 줄줄이 오가고 있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
화장실에 홀로 앉아 바라보는 104 마을의 지붕들은
재미난 한폭의 수채화이다.
처마들 사이로 연결되어 늘어져 있는 굵고 가늘고 하얗고 까만 각종 전선들.
까만선 하얀선 TV선 인터넷선 전화선 전기선들이 이어지고 잘라지고
서로 엉키고 마구 뭉쳐지기도 한 전선들이 많이도 있다.
그 선들 위로 고즈넉히 내리는 겨울비.
빗물은 하얀 물방울들이 되어 전선들을 타고 내려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이산에서 저산으로 날아가는 케이블카 처럼.
하얀 물방울 수정 구슬들이 줄줄이 신나게 재미있게
굵고 가는 검은 선을 타고
이 지붕에서 저쪽 지붕으로 잘도 달리며 내려간다.
어떤 선은 정거장인가 보다.
빛나는 하얀 물방울 구슬 케이블카가 올망졸망 멈추어 서 있다.
작고 귀여운 물방울들.
이것 또한 하얀 금낭화 꽃이 매달린것 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어린아이 마음인냥 마냥 즐겁다.
이 낡은 지붕끝 처마 안쪽에는
늦가을에 엮어져 매달린 다 말라가는 씨레기들이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아 흔들거리며 차가운 겨울비를 애써 피하고 있다.
뻥 뚫리고 깨어진 슬레이트 지붕을 덮어 놓은 누런 장판지를 타고
줄줄 내려오는 빗줄기들이
모래 자갈 위로 쏟아져 부딛치며 내는 소리도
참 듣기에 경쾌하니 자연음악으로 괜찮다.
활짝 문 열린 그냥 서 있기에도 많이 힘든 화장실.
지금 이 곳이 아니면
이렇게 편히 앉아
바라 볼 수도 느껴 볼 수도 없는
한 그림 화폭 속 104 마을의 진풍경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 재미난 지붕들의 장면
비오는 날의 수채화이다.
2013. 12. 9 겨울비 오는 날
관음
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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