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
카메라를 들고 서울에 있는 본가를 다녀왔다.
강아지 사진은 평소와 달리 대비를 높여 보정해 보았다.
#강아지들
고향 집에는 강아지가 많다.
셔터를 꽤 많이 눌렀다.
어린 축에 끼는 몽실이는 언제나 웃상이다.
복실이도 사람을 좋아한다.
대통이는 사람을 무서워한다.
한 발자국 다가가면 세 발자국 도망간다.
윤달이도 마찬가지다.
화장실에서 태어나 사람 손을 타지 않았던 아이들은 사람을 무서워한다.
달님이와 닮은 별님이.
난 특히 달님이를 좋아했었는데, 달님이가 죽은 뒤 외모가 엇비슷한 별님이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머리가 똑똑하기로 유명한 푸들, 로또.
털을 깎은 뒤로 이상하게 못생겨진 덕실이다.
원래는 예쁘게 생겼는데. 오늘따라 더 이상하다.
아롱이 오빠 다롱이.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최고령자 이월이.
동년배였던 준이와 아지가 떠난 뒤, 현재 같은 세대의 친구들은 남아있지 않다.
이름과 전혀 다르게 생긴 곰돌이.
반쪽 세상만을 바라보는 중이다.
#풍경
여긴 서울이 맞다.
산동네라 모기가 많다.
우리는 아직 모기향을 피운다.
몇 달 전, 집에 왔을 땐 나리꽃이 한 뼘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 훌쩍 자라 있다.
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주변의 것들을 감시하는 CCTV.
우리는 아직 연탄을 쓴다.
겨울이면 저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른다.
대야에 가득 찬 빗물에 곤충 한 마리가 빠져 죽어있다.
야간 비행에서 이곳으로 불시착한 모양인가 보다.
어머니가 공부하시는 법당과 묘법연화경.
달마 액자는 언제부터 생긴 걸까.
스님이 공부하시는 묘법연화경.
양초에 불이 붙어있지 않다.
양초를 계속 피워 둘 만큼 형편이 좋지는 못하다.
나는 라이터로 향을 하나 피우고 반배를 올린다.
이어서 삼배를 한 뒤 다시 반배를 올린다.
오늘은 서울에 비가 잠깐 왔었다.
마당에 버려진 프라이팬의 절반 정도를 잠기게 할 정도의 비였다.
덕분에 금방 피워 둔 모기향이 물에 잠겨버렸다.
젖어버린 슬리퍼도 비스듬히 세워둔다.
물에 잠긴 모기향을 자세히 찍어보았다.
반 이상 물에 잠겼음에도 끊어지지 않는 모기향이 신기하다.
다롱이와 아롱이.
남매인데도 크기 차이가 제법 난다.
아롱이는 엄마를 무척 좋아한다.
비가 그치고 난 뒤 노란 햇살이 뒤문을 비집고 들어온다.
"해 떴어요."
"호랑이가 장가를 가겠구만."
"호랑이가 장가를 가면.. 새끼가 생기겠네요. 이 산이 위험해지겠는데요."
"여름 날씨는 자주 이래. 그래도 다행이다, 너 운전해야 하는데 비가 그쳐서."
#당뇨
우리 어머니는 당뇨와 함께 살아온 지 제법 오래되었다.
"발이 너무 아파"
발톱을 깎다가 실수로 네 번째 발가락의 발톱 밑 살을 깎아버려서 피가 많이 났다고 하셨다.
헌데 그때는 4월 초, 지금은 6월 10일이다.
아직도 발가락에 피가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스마트폰 검색과 어머니의 발가락을 자세히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네 번째 발가락에 감각도 없는 걸 보니 피부가 썩은 게 맞는 듯하다.
지금 이 발가락을 절단하지 않으면 나중에 발목을 절단할 수도 있다.
다음 주에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을 가야겠다.
#아버지
"아빠가 올해 몇 살이지? 사주에는 60대에 안 죽으면 80까지 산다고 되어 있는데"
엄마가 물었다.
"아빠가 저를 50에 낳았으니까.. 지금 76이네요. 세월이 벌써 그렇게.."
시간은 참 빠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옥 같은 시간도 결국 흐르고 어느새 아버지라는 사람도 80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어머니와 장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오려나"
"아무도 안 오지 않을까요. 우리 삼 형제 빼고."
"그렇겠지. 주변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러게 잘 좀 하지.
스님이나 가서 염불 해주시려나"
"스님이 오세요?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건 또 그러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장례 지원 해준다니깐 그 정도는 가능하겠네요."
"그거야 네가 회사 다닐 동안만이잖아"
"쉽게 그만두지는 않을 거니깐... 근데 어머니도 아빠 장례식에 오실 거예요?"
"글쎄. 내가 가면 아빠 귀신 놀라 쓰러지겠다(웃음)"
"그러게요. 관 뚜껑 열고 나와서 복수하는 거 아닌지 몰라요"
"그것도 웃겨. 자기가 무슨 복수를 해. 내가 했으면 했지, 안 그러냐"
아빠는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연락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연락할 용기도 없다.
그냥 새삼스럽게 궁금해질 뿐이다.
#어머니
어머니는 콩나물에 소금과 깨, 참기름으로 간을 두르셨다.
나는 밥을 두 그릇과 빵을 준비했다.
어렸을 때부터 상한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내 입맛은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그 콩나물 반찬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다.
그릇에 남아 있는 깨들을 입으로 쓸어 담으시면서 어머니는 말했다.
"이 깨들을 다 잡아먹어야지.
유진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곳이 어딘지 알아? 바로 이 사바세계야.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잡아먹어야 하거든.
그리고 또 어디가 제일 고통스러운 곳이게?"
"아귀요?"
누군가를 잡아먹지 못하면 내가 살지 못하는 세계.
이미 예전부터 어머니에게서 들어왔던 말이고 나 스스로도 이해하고 있었다.
근데 오늘따라 그 말이 더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그냥, 순간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을 생각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지구상에서 외부의 에너지원을 섭취하지 않는 생물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P.S.
- 서울에는 비가 왔습니다.
- 비바람이 꽤나 시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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