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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창작/어머니의 가족

우리 아버지 (2011.12.15.)

by EugeneChoi 2024. 11. 27.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이런 분이셨습니다.
   어려서 시골 고향 마을 작은 분교에 다닐 때 였지요.
   저는 5학년 제 남동생은 1학년 이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할아버지 모시고
   가족 모두 저녁 밥을 먹고 있을 때 였습니다.

   제 남동생이 하는 말.

   자기네 반 친구 누구가 오늘 학교에 왔는데
   얼굴이 누렇게 떠서 황달이 걸렸다구요.

   못 먹어서 그런 거라고.
   엄마는 화전 일구다 아빠가 지게 작대기로 때리는 걸 맞아서
   정신이 나가 버렸다고. 그래서 밥을 잘 못 먹는다고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동생이 하는 말을 들으시고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어머니도 눈시울이 뜨거워 지시며
   국물만 몇 숟가락째 계속 뜨시는 것 같았습니다.

   호롱불 남폿불 초롱불에 광솔 피우고
   집북데기 집겨 불 놓아 모기 쫓고

   송기떡 취떡에 산머루 다래
   갖은 산나물 뜯으러 어울려 다니며 

   삼찌고 물레 잦고 베틀 소리 밤 깊어 가는 산골 마을
   성씨 집성촌이 주를 이루는 곳이라

   뛰엄 뛰엄 있는 집들이라도
   누구네가 어떠한지는 거의 다 서로가 잘 알고들 있지요.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게와 가마니를 가지고
   뒷밭으로 가시더니 
   월동 식량으로 묻어둔 감자를 꺼내서
   가마니에 가득히 담으셨습니다.

   지게에 무겁게 짊어 지시고는
   남동생 친구네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아버지의 그 뒷 모습을
   말없이 지켜 보고만 계셨습니다.

   한참 후

   저녁 때가 되어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 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해주시는 말씀.
   감자를 한가마니 짊어지고
   저 멀리 윗마을 외딴집 남동생 친구집으로 가셨답니다.
   가서 보니 방에 불도 때지 못해
   남동생 친구의 어린 동생들은 추워서 떨고 있고
   문은 정신줄 놓은 엄마가 다 뜯어서
   바람 휑휑 들어 오고
   벽에는 엄마가 똥칠을 다 해서
   냄새 나고 더럽게 되어 있고
   엄마가 그렇게 되었으니 밥도 해 줄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감자도 많이 삶아서 먹게 해 놓고
   문도 바르고 벽에 똥도 다 닦아 내고
   방에 불도 뜨겁게 때 놓고
   어린 동생들도 대충 씻겨 놓고 오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모두 편히 저녁 밥을 잘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로부터 너무도 고마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혈육의 정이란 것이 저런 것이로구나.
   내 귀한 아들 녀석의 친구이기에
   주저함도 망서림도 없이 다가 가
   따뜻이 인정 베풀어
주신 내 아버지의 아들 사랑.

   말없이 묵묵히 온 몸으로
   감명 깊게 실천으로 보여 주신 산 교육인이셨습니다.

   참으로 좋은 내 아버지셨습니다.
   오랜 세월 속에 내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그 때의 감동 물결은 지금도 살아 뜨겁게
   내 마음을 달구곤 합니다.
   아버지 
   내 아버지
   사랑합니다.
   너무 너무 사랑합니다.
 
   2011.12.15 신묘년 대설 중간 절기.  바람 세게 부는 날에
   큰딸 맏이 숙희(淑熙)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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