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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iary/안녕 헤이즐

헤이즐 #22 (두 번째 마지막)

by EugeneChoi 2023. 10. 15.

안녕 헤이즐


#이별

그녀와 헤어졌다.
처음 이별했던 날처럼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맨 처음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그녀였다.
"너가 유학 떠날 때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

말문이 턱 막혔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어떻게 상처 주지 않으며 말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나는 먼저 우리가 연애하면서 느꼈던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찻잔에 차를 따르듯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만

사실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출국 전날 밤에 잠에 들지 않고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어쨌든 나는 그녀에게 '혼자 있어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그만 만나자는 의미였다.

그러자 그녀는 알겠다고 말한 뒤 지난 2년 동안 그녀가 느꼈던 모든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현이와 은애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성 친구들의 관계,
그녀의 외모에 대해 적었던 나의 글 이야기
휴대폰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최근 나의 태도까지.

근데 그녀는 화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행동해 준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자신이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면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전부 내 잘못이 맞다.

 

#눈물

괜찮을 줄 알았지, 울지 않을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리는 울고 말았다.

불을 전부 끈 채 침대 위에 누워있었기에 서로의 우는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실컷 울고 난 뒤에 섹스를 했다.
젤을 발랐어도 평소 때보다 건조했다.

결국 우리는 그만두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또 안고 한참을 울었다.

"2년 동안 나올 눈물이 다 나온 것 같아"
그녀가 말했다.

 

#공항버스

우리는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 제1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버스를 타자마자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차 안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뒤 내 눈에 들어왔던 건 비 내리는 창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었다.

 

#식당

12시 15분 비행기, 우리는 8시 50분에 도착했다.
기숙사 퇴실 전 맘스터치에서 받아놨던 싸이버거를 아침에 먹었지만 
역시 아침부터 햄버거는 무리였는지, 잠을 자지 못해서인지 우리는 속이 좋지 못한 채 배고픈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한식을 먹으러 갔다.
'해물된장찌개+고등어구이 정식'과 공깃밥 하나.

그리고 우리는 3층 출국장보다 위층인 4층으로 올라가 카페를 갔다.
나는 자몽티 그녀는 벌꿀라떼.

사실 우리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 눈물을 참지 못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녀는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게 미안하다며
사실 나를 보내는 출국날에 밝게 웃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다.

처음의 이별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녀는 이번 이별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걱정을 좀 덜 수 있어서.

#출국

우리는 공항에서 항상 손을 잡고 다녔다.
그녀는 내가 출국한 뒤 병점으로 돌아가 수진 선배와 식사를 하기로 했단다.

다행이다, 혼자가 아니어서.

잠을 자지 못해서 기억이 듬성듬성이다.
최대한 기억해 내자. 그게 내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래봤자 비공개 글이겠지만.

 

#마지막

나는 보딩패스를 들어가기 전에 그녀와 포옹했다.

"우리 뽀뽀할까?"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으로 입을 맞춘 뒤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런데 몇 초 후 갑자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뒤 봐봐, 안녕 잘 가"

그녀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 안녕, 잘 가"
나는 대답을 한 뒤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이다.

2021년 10월 17일부터 2023년 10월 14일.

대략 728일 정도인가.
아, 중간에 한 번 헤어졌으니.. 그 기간을 빼야 하는데 날짜를 모르겠다.
그럼 약 700일이라고 해두자.

우리의 긴 서사는 이렇게 끝이 났다.

물론 1년 뒤 내가 입국하고 나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상처를 입는 건 그녀이기에.

"2년 동안 고마웠어, 행복했어"

"나도 2년 동안 좋았어
나도 많이 배웠어"

그녀는 나와 지내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 흘려보내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와 지내며 요리와 설거지, 영화나 여행 등 문화생활을 통해 삶의 다른 페이지를 본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1년 전 모습과 비교했을 때 많이 성장해 있었다.
한 편으로는 대단하면서 한 편으로는 내가 정말 나쁜 남자친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따뜻하진 못했던 남자친구.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주지 그랬냐-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는 확실히 맞지 않는 결이 있었다.

헤어짐에 후회는 없다.

마지막에 밝게 웃어 보였던 그녀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무겁진 않았다.
하지만 아마 집에 가서는 또 실컷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든 나든.

아, 갑자기 엄마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여자는 자신보다 연상인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그래야 남자에게 사랑받으며 살 수 있다고.

후. 다이어리는 이쯤 할까.

울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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