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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전해주고픈 말

다리 위에 선 너에게

by EugeneChoi 2025. 5. 11.

왜 거기에 서 있어.

오늘 해가 보이지 않네.
날씨도 추워, 그렇지?

표정이 안 좋네.
오늘 힘들었나 봐.

마음이 짙은 회색인가. 하늘 같이 말야.
얼른 구름이 지나갔으면 좋겠네.
너의 마음속을 가득 채운 비구름도.

그거 알아?
저 구름이 있기에 햇빛이 더 그립고
찬 겨울이 있기에 봄이 더 따뜻해.
반복되는 계절처럼, 우리 마음에도 봄이 찾아오고 겨울도 찾아와.
잠깐 겨울에 머무르고 있다면,
'아 내가 잠깐 겨울에 머무르고 있구나'
생각하고 겨울을 잘 나면 돼.

다람쥐는 잠을 자면서,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려 겨울을 나.
하지만 사람들은 겨울을 나는 방법을 잘 몰라.
특히, 불쑥 마음에 찾아오는 겨울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거든.
겨울이 오면 죽어버리는 한해살이 풀처럼 느끼곤 해.
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긴 겨울도 끝이 나고
마침내 봄이 오면 가지 끝마다 새순이 올라오고 다람쥐가 잔디 위를 뛰어다녀.

겨울이 오면 민들레를 떠올려.
바위틈에서도 어떻게든 자라나는 민들레.
민들레는 겨울에 죽을 것 같지만 사실 죽지 않아.
꽃가지와 잎이 시들어도 뿌리는 겨울 내내 땅속에서 자라. 
그리고 봄이 오면 다시 꽃을 피워.

민들레는 우리가 이겨내지 못할 '겨울'을,
지나가는 하나의 계절로 받아들이는 거야.
민들레처럼, 우리도 그렇게 받아들이면 돼.

삶은 그런 거야.
그냥 사는 거야.
겨울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면서,
봄이 오면 꽃을 구경하면서,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그냥 사는 거야.

너무 큰 시련이 찾아왔다면
그건 평소보다 조금 더 긴 겨울이라고 생각해.

일본어로 "時間薬"라는 말이 있어.
'시간이 약'이라는 의미의 단어야.

신기하지.
각자 다른 나라 다른 곳에서 다른 언어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시간이 가장 좋은 약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

겨울이 끝나고 찾아오는 봄을 느껴.
당신이 그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어.
그러니깐 그냥 살아.
죽지 마.

2024 / Memorial Park, Brighton, The UK

 

P.S.

어이가 없죠.
나는 그토록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 하면서
정작 나는 죽음 가까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게.

혹시 그런 게 아닐까요.
채무로 삶을 그만둔 사람이 정말 돈을 벌고 싶었듯이
폭력에 못 이겨 생을 마감한 사람이 폭력을 피하고 싶었듯이
나도 그런 게 아닐까요.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더 이상은 아프지 않고 싶다는 생각.

이 글은 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까요.
혹은,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인 걸까요.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르는 이 마음을 안고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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