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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한 조각

옛집

by EugeneChoi 2025. 3. 29.

길모퉁이를 지나
외딴 산동네를 홀로 찾아가선
천천히 거닐어 봅니다

걷고 걷고 또 걸어
어느새 향기가 익숙한 절집에 멈춰 섰습니다

이곳에는 여전히
나리꽃이 붉고, 아카시아 향이 짙고,
귀뚜리가 짝을 찾고, 소쩍새가 울고,
흩어지는 향연기가 있고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차가운 겨울이 있습니다

나는 법당 앞에 서서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어머니,
나는 당신이 한때 앉아있던 터에 서서
바람이 지워낼 발자국만 남겨봅니다
눈 감으면 들리는 당신 목소리에
살며시 내 목소리 포개어 봅니다

이곳에는 더이상 나리꽃은 없습니다
벗 없는 아카시아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습니다
짝을 찾는 귀뚜리도, 밤을 우는 소쩍새도,
하늘 어딘가로 향하는 향연기도,
포근한 당신의 목소리도 없습니다

외로운 산동네 집집마다
짧은 겨울해가 남기고 간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웁니다


202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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