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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25년

연차

by EugeneChoi 2025. 3. 10.

연차

연차를 썼다.
늘 그랬듯이 6시 20분에 잠에서 깨어나 머리를 감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활짝 열고 욕실화를 신었다.
화장실의 차가운 공기가 온기가 남아있는 내 몸을 식히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을 열다 만 채로 손잡이를 꼭 쥐고 있는 내 왼손.
그 손을 타고 손잡이의 차가운 기운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서서히 가동되는 화장실 환풍기의 소리가 커져간다.
수 초에 걸쳐서 커지는 그 소리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간절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본다.
두어 번의 깊은 한숨을 깊게 내쉰 후 나는 뒷걸음질로 화장실을 빠져나온 뒤, 문을 도로 닫았다.

'쉬고 싶다'

가장 먼저 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생각이었다.
쉬고 싶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어쩌면 그 다음 날들도, 이후의 모든 순간들을 쉬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삶을 쉬고 싶었다. 
끊임없이 써내려가는 문서를 저장하고 닫기 버튼을 눌러 종료하는 것처럼.
다음 날에 그 문서를 다시 불러오면
언제 쉬었냐는 듯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문서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삶을 종료하고 싶었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눈이 스르륵 감기고 숨이 깊어졌다.

 

*
눈을 뜨니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오전을 알리는 푸른 빛이 창을 통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로 향했다.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한 번 크게 마른 세수를 한 뒤 휴대폰을 들었다.

[몸이 아파서 오늘은 출근을 못 할 것 같습니다]

메신저로 팀원들에게 메시지를 남긴 뒤 매트리스 위로 몸을 던졌다.
눈을 감고 천천히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을 느꼈다.
상념의 목적들이 사라지고 행동의 이유들을 잃었다.
그렇게 내 모든 감각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잠에 들었다.

 

*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보았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다.

'일어나서 처음 먹는 끼니가 저녁이라니'

생각하고는 냉장고를 열었다.
수정누나와 그녀의 어머니가 내게 준 반찬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쳐지지 않은 전 반죽이 스탠리스 반찬통에 가득 담겨 있었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탓이었는지 수분이 생겨 뚜껑 틈새로 물이 흘러나와 냉장고 바닥에 고여 있었다.
더 두었다가는 청소하기가 까다로울 것 같아 오늘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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