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날이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해는 좀 더 오래 우리를 비춘다.
이젠 출근길에도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6년 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친구 선욱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그 친구는 무려 1년짜리 휴직을 준비하는 중이다.
꽤나 회사생활이 고달팠나 보다.
그 친구와 술잔을 부딪히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 상사 얘기, 삶의 가치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등등.
이런 주제에는 당연히 철학과 인간관계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다.
나는 입을 많이 열지 않았다.
자고로 위로라 함은 두 귀를 쫑긋 세워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
결코 많은 조언을 해주는 것이 위로가 아니다.
대개로 인간들은 그걸 원한다.
나는 그가 내 생각을 물을 때만 대답을 해줬다.
그리고 주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생존을 목표로도 유리하지. 안 그래?
그 상사는 회사에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질 않아. 그로 인해 피해받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 사람이 퇴사하면 열정 있는 사람들이 들어올 테고 우리 후배들이 편해질 텐데..."
선욱이는 대부분의 주젯거리가 회사와 상사였는데 나는 들을 때마다 질문을 던졌다.
"상사라는 분이 회사 밖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
그건 맹점인데?"
혹은 자신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싶어. 나는 더욱더 성장하고 발전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 너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무엇보다 그 '잘함'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일까?
그건 아마 주변 사람들과 회사가 정해준 거겠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자기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인간들이 만들어낸 기준에서 벗어나야 해. 예를 들면 회사의 직급이나 우리가 말하는 언어 같은 거지.
선욱이 너가 그랬잖아. 삶은 생각할수록 어렵고 잘 모르겠다고.
원래 삶이 그래. 선과 악, 옳고 그름, 사랑, 단어.. 인간들이 만든 모든 것들이 그래.
원래는 없었던 것들이거든. 그래서 모호하고 기준이 애매한 거야.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준을 가상으로 만들어 냈고 그걸 지키도록 하는 거지.
사람들은 각자 경험을 통해 그것을 해석하기에 그것만큼 모호한 게 없어.
인간들은 태어나서부터 놀이터, 학교, 직장 등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에서 살아가지.
그게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야. 자연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기준에서 벗어나야 해."
그 외에도, 비교는 불행의 지름길이라던지
한국 사회는 너무 심한 경쟁 사회이고 오지랖이 심한 민족이라는 이야기,
스무 살까지의 교육기간 동안 부동산과 노조에 대한 교육을 안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일하고 있는 반도체 회사는 제조업이기에 당연히 인력을 갈아 넣는 게 맞다는 이야기,
그것이 IT업계와는 크게 다른 제조업의 한계라는 이야기,
회사 상사의 월급루팡 짓은 너의 상처가 아닌 회사의 상처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에 더해 철학과 인간관계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점점 내 말에 수긍했고 나를 보고 "현자가 여기 있었다"며 크게 웃었다.
나는 단지 남들과 비교를 멈춘 지 오래며 나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내 친구 선욱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생각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내가 바라보고 느낀 세상, 생각하고 정리한 내용들이 있다.
그 내용들이 니체 혹은 쇼펜하우어와 같은 독일의 철학자들이 한 말과 일치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이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르더라도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적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과거에 존재했고 여전히 이 세상에도 많이 있겠구나- 싶은 마음뿐이다.
P.S.
- 어두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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