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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달빛 한 조각

어머니께

by EugeneChoi 2025. 2. 14.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 보고 싶어요.

그보다요.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줄곧 강아지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하셨잖아요.
강아지 없이 삼 형제와 넷이서 사는 날이 언제 올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잖아요.

근데요
그렇게 들으면서도 참 이상하다 싶었어요.
허리가 아프다 다리가 찌른다 하셔도
언제나 강아지들 깨끗이 목욕시켜 주고
시끄럽다 더럽다 지저분하다 하셔도
아롱이 다롱이 안아주시고 예뻐해 주셨잖아요.

사실은 강아지들 많이 사랑하셨지요?
뭉치 칠순이 칠복이 칠칠이 설공이 아공이
사오정 일순이 대보름 준이 사미타 이월이 
로또 아롱이 다롱이 짱아 
대통이 방통이 꼴통이
몽실이 복실이 정실이 
짧은 27년을 살아온 제가 보아도 예쁜 그 아이들을
어머니가 보셨을 때는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어요.

아직도 그때가 많이 기억나요
찬 겨울이 끝나가던 무렵
얼어버린 화분의 흙 속에서 솟아오르던 녹차빛 나리꽃 줄기가요.
어머니를 일주일마다 찾아가던 그때
매주 볼때마다 몰라보게 쑥쑥 크더니 결국
붉은 나리꽃 만개했을 그때가요

나리꽃이 참 예쁘구나
새들도 강아지들도 한참을 보면서 구경하겠구나
너희들도 꽃처럼 아름답게 살아가거라
아름답고 잘나도 항상 겸손하거라

진실하고 너그럽게
부드럽고 겸손하게
천년미소 향기롭게
만년공덕 극락왕생
어머니 모훈 기억하며 남은 짧은 여생 살아갈게요.
영국에서 미소짓는 법을 또 배워왔지 뭐예요.
이 미소를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많은 친구들이 좋아해주었던 이 미소를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네요.
그래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공수래 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 또 살아갈게요.

어머니
어머니 찾아가고 헤어질 때면
아픈 두 다리땜에 일어서지 못하시고
차가운 장판 위에 그저 앉아서
두 팔 벌려 따뜻한 미소 지어 보이셨지요
그 미소가 무척 그립습니다.

보고 싶을 때마다 찾아갈 수 있었던 어머니는
이제 기억 속에서 꺼내봐야 하는 슬픈 추억이 되었네요.
기억력이 좋지 않은 둘째는
벌써 어머니 얼굴이 흐릿해져가고 있어요.

어머니
항상 철없는 어린아이였던 저는
한겨울 이불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어머니 품에 그저 안겨
어머니 아닌 엄마 두 글자 불러보고 싶어요.

참새 때까치 까마귀도
어머니 계시는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날아가는데
왜 저희는 그곳 닿지 못할까요
내 마음 높은 하늘 고운 바람에 아무리 날리어 보내도
가까이조차 닿을 수 없는 걸까요.
혹은 받으셨지만 답장이 어려우신 걸까요.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청순하고 해맑았던 어머니의 마음
당신의 모습이 마냥 그립습니다.

어머니. 저도 곧 갈게요.
조금만 심심하세요.
이 둘째아들이 어머니 웃게 만들 거예요.
어머니 웃는 모습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많이 사랑해요.
두팔로 꼬옥 껴안고 싶어요.

2024.12.07. 대설절에
둘째 아들 인니, 유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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