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그랬어. 왜 우리들 때렸어.
일부러 그랬어?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미웠어?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우리를 올바르게 키우고 싶었던 거였어?
그래도 때리면 안되잖아.
말로 하면 되잖아.
말로 해서 우리가 말을 듣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잖아.
#재회
육 년 만인가.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아버지를 만났다.
2019년, 군대에서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기로 다짐한 날로부터, 약 육 년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대로였다.
생각도 그대로고 얼굴도 그대로고 건강도 그대로였다.
"못 알아볼 뻔했다"
나를 육 년 만에 본 아버지의 첫마디였다.
#여전히
여전히 아버지는 어머니를 미워하신다.
"김숙희 말은 걸러 들어라."
"그거 정상적인 여자가 아니야."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우리는 서로가 기억하는 옛날이 너무나도 다르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직 어머니가 살아있는 줄 아신다.
나는 일부러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께 알리지 않았다.
#들어주기로
이제는 그냥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한다.
용서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이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78세의 아버지를 그냥 자식으로서 대하기로 한다.
가족 일은 정치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상대방을 해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상대방을 이해하려 한다.
누군가를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악의를 품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악의가 아닌 사랑인 경우도 있고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이 아닌 답답함으로 내비치기도 한다.
참 어렵다.
풀어내지 못하도록 복잡해져 버린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가 참 어렵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버린 이 사회가 참 쓰라리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그냥 하나의 생명으로서 이 지구를 살아갈 수 있었다면
내 삶은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었을까.
#부모
부모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아무리 제 자식에게 몹쓸 짓을 하여도
그래도 핏줄이라고 자식들은 부모를 챙긴다.
죽도록 맞던 날이 선연히 기억나면서도
쇠파이프에 나무몽둥이에 관절이 다쳐 팔을 움직이지 못했음에도
온 몸이 노란 멍, 파란 멍, 거뭇한 멍으로 도배됐음어도
머리에 혹이 나고 몸에 흉터가 지고 피흐르는 상처 가득했음에도
그 어린 나이에 수백 수천 대 머리를 가격당했음에도
먹지 못한 음식을 토해냈고, 그 토해낸 음식을 다시 먹도록 강요당했음에도
불신과 혼란 속, 의지할 곳 하나 없어 스스로에게 의지했던 유소시가 있음에도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음에도
매 해 겨울이 어미 찾는 울부짖음으로 채워졌음에도
그래도 자식들은 제 부모라고
부모가 참 그립고 애닯고 슬프다.
참 안쓰럽다.
이렇게 혼자 남겨진 아버지가 안쓰럽고
여전히 어머니를 미워하는 아버지가 불쌍하고
아버지의 형제, 어머니, 가족들을 따라가지 못한 아버지의 삶이 슬프다.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슬픔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 유산을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가 않는다.
누군가 이런 내 삶을 이해해주길 바랐지만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슬픔에 사로잡힌 채로
애달픈 어린 시절에 갇힌 채로
불쌍한 내 부모님의 일생에 속박된 채로
그렇게 살다가
조용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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